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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반딧불이

21

by 판도

안 선생은 그의 일기에 어지럽고 불안한 심리를 고스란히 남겼다. 학교와 동료 교사들을 원망했고 자신의 삼촌이자 교장인 해탈에게는 편지 형식의 일기를 통해 노골적으로 증오의 마음을 드러냈는데 그 내용의 일부가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내일이면 개학이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지만, 내게는 짧은 생애를 마무리 짓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당연히 허망한 끝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조각의 희망도 없는 시작의 반복보다는 절망의 고통을 끊어내는 것이 낫지 않은가.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지만 삼촌이라는 가면을 쓴 괴물만은, 스승이라는 탈을 쓴 짐승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나는 너를 죽이고 말 거다. 너를 죽이고 지옥에서 너를 만나더라도 숨지 않을 거다. 또다시 몇 번이고 너를 죽일 거다. 내게 휘둘렀던 그 몽둥이로 네 몸뚱이를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내려쳐 너를 죽일 거다. 죽이고 또 죽일 거다. 나는 절대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신께서도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너는 살아 있는 듯 죽어야 하고, 죽은 듯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게 네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기만아.

우리가 친구로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항상 내 앞에 있어 준 네게 감사해.

네가 내 앞에 앉아 환한 미소를 짓지 않았다면 나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했을 거야. 비록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이야.

오해는 하지 말아.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교장실에 있던 사람과 교무실에 있던 사람들이야. 야비하고 교활한 사람들이 나와 너희들 가까이에 있는 것이 나는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어. 그리고 너는 나에게 가르쳐 줬지. 참 교육이란 무엇인지, 올바른 스승이란 누구인지, 관심과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고마워.

올바르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비뚤어져 있던 나를 너는 깨우쳐 주었어. 내가 네 앞에서 사라졌다고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 저 하늘에서 네 미래를 응원할게.


나의 스승 같은 제자 공산아.

그래 권투는 열심히 하고 있니? 네 주먹 정말 맵더라. 그리고 번개처럼 빨랐어. 난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단다. 내가 너희 반 첫 수업에 들어가 보여 준 내 모습에 나 자신도 정말 실망스러웠어. 나는 너희들한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너희와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기에 친구 같은 선생님, 형 같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 생각이 너무 짧았던 거 같아. 세상을 너무 몰랐던 거 같아. 내가 하모에게 한 행동은 사실 다 친해지자고 한 행동이었는데 말이지. 물론 내 멋대로 별명을 만들어 부르고 사전으로 머리를 때린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잘못이야. 스승과 제자라는 때로는 엄격해야 할 관계를 내 멋대로 생각한 것 또한 나의 잘못이고. 친한 친구처럼 너희들을 대하자고 생각한 나의 잘못이지. 아니. 친하게 지내는 것이 맞았을 거야. 단지 나의 접근 방식이 잘못된 거지. 별명을 만들어 부르는 것도, 깨끗한 사전도,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했어야 했어. 또 책을 못 읽는 것을 빈정거리지도 말았어야 했어. 그래서 반장을 야단치고 나서 사실 나는 곧 후회했거든. 그런데 말이지. 내가 사과할 여유도 없이 너와 강욱이가 나타난 거야. 그때라도 솔직히 내 잘못을 시인하면 됐을 텐데. 나의 그 옹졸한 마음이 말이지. 그렇게 첫 수업에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싫더라. 기선을 빼앗길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만을 했어. 첫 수업부터 너희 담임 선생님에게 많이 혼났어. 수업 시간에 자리를 비우고 김 선생께 상의를 드렸거든.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그냥 마음 편하게 모든 걸 내려놓고 김 선생의 말을 들었으면 될 텐데 말이야. 그게 나를 더욱 화가 나게 만들더라. 그가 선생이고 나는 아직도 학생인 것 같은 거야.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는, 학교는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 그러고는 수업을 진행할수록 모든 것들이 나의 진심과는 전혀 다른 길로 치닫는 거 있지. 자꾸만 꼬이면서 나를 망가뜨리는 거야. 나는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어. 바로 그때 나를 찾아온 천사가 있었지. 나를 구원해 준 천사는 바로 기만이. 그 녀석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어. 그래서 다짐했지. 노력하자. 좋은 선생님이 되자. 너희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선생님들에게도 나쁘게 인식되지 않는 선생님이 되자고 생각했어. 그런데 왜 그게 쉽지 않았을까……


죽음으로 치닫는 그의 편지는 두서가 없었다. 후회와 반성과 불안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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