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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반딧불이

22

by 판도


“아빠, 독채 예약 손님 오셨어.”


하모가 숯불을 피우고 있는데 아들 써니가 아빠를 부르러 왔다. 이름이 ‘선(善)’으로 한 글자인 고1 아들의 애칭이 바로 써니다. 여자 이름 같지만, 본인이 예쁘다고 해서 가족끼리만 부르고 있다.


“녀석들 드디어 왔구나. 세 분 다 오셨니?”


“아니. 한 분만 오셨는데?”


“그래? 누가 먼저 왔을까? 운전하기 힘들게 따로 오는 모양이네. 참, 인사는 드렸지?”


“응, 당연하지. 아저씨가 친구 공산이 왔다고 아빠한테 전하라고 했어. 그런데 아저씨가 날 보고 깜짝 놀라더라.”


“산이가 먼저 왔구나. 왜 써니를 보고 놀라셔?”


“고3 때 아빠 모습 보는 거 같대. 완전 붕어빵이래.”


“그럴 리가. 써니가 아빠보다는 훨씬 낫지.”


하모는 미소를 지으며 장갑을 벗고 그들이 묵을 독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 무역회사에 입사한 하모는 취직과 동시에 결혼하였고, 그 이듬해에 아들이 태어났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중국 지사로 발령받은 그는 북경에서 10년이 넘도록 근무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 시드니로 건너가서는 직접 작은 무역회사를 차렸다. 세 명의 가족은 북경과 시드니에서 함께 살면서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타국에서는 가족 간 사랑이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한 것임을 절절히 깨달았다.


호주는 일에 빠진 하모에게 한국에 갈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대신 그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우선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분에 가족과 함께 머무는 집이 곧 지상 낙원이었다. 사업차 찾게 되는 광활한 호주 대륙의 도시 곳곳도 그를 반겨 주었다. 주위에 그를 괴롭히는 이상한 사람도 없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보내면 되었다.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 시간이면 신이 나서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는 써니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였다. 그때마다 하모는 호주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아내와 함께 기뻐했다. 써니에게 학교는 집과 더불어 작은 천국이었다.


그렇게 호주에서 영주권에 이어 시민권을 받고 부모님까지 모셔 와 이민 1세대의 일가를 이룬 후, 하모는 늙으면 당연히 호주 땅에 묻힐 줄로만 알았다. 부모님이 여생은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고 성화를 하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그는 고민 끝에 길었던 타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풍광 좋은 이곳 양양에 마지막 터를 잡았다. 번잡스러운 서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펜션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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