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공산, 일어나. 얘기 좀 하자.”
하모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공산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곤 하모와 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지금 몇 신데? 아침에 일어나서 하면 안 될까?”
“아니야. 지금 해야 해. 일어나 봐.”
하모가 억지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공산이 언짢은 표정을 감추며 마지못해 일어났다. 눈을 반쯤 감은 그에게 하모가 따지듯 물었다.
“너 말이지. 그때 말이야. 기말고사 때.”
“기말고사? 그게 언제 적 이야기야? 그 옛날 얘길 왜 지금 갑자기 꺼내는 거야?”
하모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다짜고짜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이 치사한 새끼. 너도 똑같은 놈이야. 네가 감히 거머리를 비난해?”
“조하모! 진정해. 넌 나보다 더한 놈이잖아. 선생들 눈치 보고 친구들 뒤에 숨어서 꼼짝도 안 한 놈이 바로 너라고.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아먹은 주제에.”
하모는 공산의 말에 눈이 돌아갔다.
“뭐? 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웃기지 마. 네가 바로 그 악마일 뿐이야. 천사의 가면을 쓴 악마라고. 최강욱이 없었으면, 네 어머니가 없었다면, 넌 그저 선생들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였다고. 알아? 이 자식아.”
하모는 공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가 얼굴을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
“악! 이 미친놈이.”
“왜, 맞아 보니 너도 아프냐? 네가 그렇게 안 선생을 때렸어. 그것도 부족해서 네가 안 선생을 죽이고 강욱이까지…, 이 나쁜 새끼.”
하모는 잠이 덜 깬 공산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발길질을 해댔다.
“아빠! 괜찮아? 정신 차려.”
써니의 목소리였다. 그가 하모의 어깨를 흔들었다.
“자면서 누구랑 그렇게 싸우는 거야?”
꿈이었다. 하모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자신을 달랬다.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참 무서운 생각을 긴 세월 동안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구나. 잊자. 나는 그를 비난할 자격이 없어. 그의 말처럼 나는 또 얼마나 깨끗했다고.’
하모는 몸을 일으키며 아들 써니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응. 아직 주무셔.”
그들 셋은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인 기만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울로 향했다. 공산은 기만이 떠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하모도 졸음이 쏟아져 자리에 누웠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이상한 꿈을 꾼 것이다.
공산은 늦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바쁜 일이 없다며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펜션에 남았다. 하모는 자책했다.
‘꿈속일지언정 이런 친구에게 주먹을 날렸다니…’
하모는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간밤에 공산은 곧 있을 스승의 날 행사를 신이 나서 자랑했는데, 1부는 전 학년 합동 공연으로 교사들을 위한 학생들의 자발적 공연이라며 아이들을 대견해했다.
2부는 사은의 밤 행사이다. 선생들의 자축 파티로 육성회 임원진과 지역 장학사 등 관계 기관의 높은 분들도 교사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자리를 빛내기 위해 참석한다고 했다.
물론 스승의 날 행사는 하모와는 상관이 없었다. 2부 행사만이라도 꼭 참석해야 한다고 공산이 떼를 썼지만, 하모는 애써 사양했다. 대신 행사가 끝나면 야외 교실에 앉아 두 사람만의 조촐한 파티를 갖기로 했다.
하모는 그를 키워준 학교가 그리울 따름이었다. 학교 곳곳에 붉은 덩굴장미가 활짝 핀 풍경이 눈에 선했다. 언덕 위 하얀 집을 멀리서부터 바라보며 천천히 교정에 이르는 계단을 올라, 운동장을 쏘다니다 등나무 야외 교실에 앉아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싶을 뿐이었다.
늦은 아침 식사 후에 공산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너한테만 따로 할 말이 있어서 올라가지 못했다.”
하모는 간밤 꿈 탓에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예 벼르고 내려왔구나. 심각한 얘기는 아니지?”
하모의 미소에도 공산은 웃지 않았다.
“글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회한 같은 거겠지. 아니 고백이 맞겠다. 들어줄 수 있겠어?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다.”
너밖에 없다는 공산의 말에 하모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내 하모는 고개를 끄덕였고 공산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열등감으로 가득 찬 아이였다. 선생들은 호석이보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 쓸데없는 장난에 정신이 팔려 성적이 안 나온다고 혀를 끌끌 찼지.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공부를 안 했겠니?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웃고 떠들고 장난을 쳤지만, 그들이 없는 곳에서는 나도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네가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1학년 1학기 때는 나도 호석이만큼 성적이 나왔거든. 그런데 그게 오래가지 못했어. 1학년 여름 방학 때였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매일 싸우는 거야. 나는 그때부터 조금씩 망가졌고, 결국 2학년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두 사람은 이혼했지. 기만이 어느 날 학교에 와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퉜다고 말할 때는 정말 가소로웠다. 내가 녀석에게 트집을 잡은 것도 다 그 까닭이었을 거야. 부모의 사랑싸움에 행복한 고민을 하는 녀석이 미워 보였거든. 그게 다가 아니다. 나는 폭력적인 선생들에게 강욱이처럼 맞설 용기도 없었어. 학생들을 차별하는 선생들을 보고도 모른 척했지. 나는 불의에 맞서 싸운 게 아니다. 나쁜 사람들을 응징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기만 했던 거다. 그러면서 강욱이를 시기하고 질투한 거지. 그렇지만 한 가지는 맹세할 수 있다. 난 정말 강욱이가 꾀병을 피우는 줄 알았다. 그 친구가 그렇게 아픈 줄은 전혀 몰랐어.”
하모는 공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자신 또한 강욱에게 한 행동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후회했던 것이다.
‘나 같은 놈 주제에 그를 따돌리다니. 나는 왜 그에게 얼마나 아픈지 묻지 않았을까?’
공산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안 선생에게 저지른 일도 그렇다. 아이들의 환호를 등에 업고 우쭐대는 마음이 커질수록 말이지, 남들이 없는 곳에서는 또 다른 나와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내가 진짜 나였거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멈춰야 한다는 걸. 안 선생은 학생을 깔보는 듯한 첫인상과는 다르게 잘못하면 바로 인정하고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더군. 그게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 마음속에는 아이들한테 대단하게 보여야 한다는 허세만이 가득 차오르는데.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안 돼, 계속해야 해. 흔들리지 마.’하며 나를 떠미는 또 다른 내가 미치도록 혐오스러웠어. 나는 그날도 오래도록 엎드려 고민했다. 잠을 잤던 게 아니야. 하느냐 마느냐를 벌벌 떨면서 고민한 거지. 심장이 방망이질을 치는데,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어. 결국 안 선생이 나를 불렀을 때, 만약에 그의 음성이 조금만 부드러웠다면 나는 거기서 멈췄을 거다. 그런데 말투가 말이지…”
하모는 머리가 아팠다. 누군가 머리통을 도끼로 내려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생각하던 공산의 모습과 공산이 말하는 공산 자신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한동안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던 공산이 다시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는 삼십여 년 전 이야기, 이제부터는 내 앞에 놓인 현재와 미래의 중요한 이야기다.”
하모는 덜컥 겁이 났다. 터널 속 같았던 학창 시절을 잊고 행복하게만 살아온 인생이었다. 결코 되돌아볼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어두운 과거였다.
“중요한 얘기? 너 이번에 날 너무 놀라게 하는 거 알아?”
하모는 걱정을 숨기며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공산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미안하다. 오랜만에 만나서 내 얘기만 늘어놓고. 그것도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만.”
“아니야. 친구끼리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그럼 계속 들어 볼까?”
공산이 꺼낸 중요한 이야기란 방 일병, 즉 방춘식 선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인생 역정은 놀랍기만 했다. 방 선생은 그들이 졸업한 후, 학교를 그만둬야 할 처지였다. 교련 과목이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폐과 담당 선생에게 전과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는 마침 자리가 비어 있던 사회 과목으로 부전공 신청을 했고, 연수를 마친 후 사회 선생으로 새로운 교직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교련 교사 시절부터 이사장인 해탈의 수족과 같았던 그는 그 이후로 승승장구하여 학생부장이 되었고, 이윽고 교감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가 마침내 신임 이사장인 공산의 발탁으로 교장이 된 것이다.
“그러면 지금 방 일병이 교장이라는 거야?”
“그래. 방 일병이 방 교장이 된 거야. 내가 학교 이사장으로 오면서 승진시킨 거지.”
“그렇지만 방 일병은 의외인데? 교장으로는 거머리가 더 낫지 않나?”
“나도 그러고 싶었지.”
“그런데 왜?”
공산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거머리는 폐인이 다 됐다. 퇴근길에 묻지 마 폭행을 당해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어. 원래 왼쪽 다리를 절었던 거는 알지? 오른쪽 다리마저 칼에 찔렸어. 그렇다고 걷지를 못하는 거는 아니고 거동이 그전보다 더 많이 불편해진 거지. 정상적인 교사 생활도 어렵고.”
“어떻게 그런 험한 일이. 아무 이유도 없이 당한 거야?”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그럼?”
“그게 참.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학교 다닐 때 거머리가 내신을 조작한다는 소문이 자자했잖아.”
“그렇지. 그래서 네 어머니가 거머리에게 직접 경고도 하셨다면서?”
“맞아. 그런데 소문이 아니었어. 부끄럽지만 나도 득을 봤고. 내 인생 가장 큰 오점이다.”
“… 그런데?”
하모는 공산의 이야기가 불편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수십 년 동안 끊어졌던 과거의 인연과 이런 대화를 나눌 줄은 몰랐다.
“내신 조작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한 졸업생 중 한 명이 보복을 한 거야.”
“아….”
하모는 묻지도, 듣지도 말아야 할 이야기에 휩싸여 버렸다. 공산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호주에서 돌아온 것마저 후회스러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졸업생이 처음부터 거머리를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더라고. 그래도 학교가 한바탕 시끄러웠지. 해탈이 잘 덮었지만….”
“산아, 그 사람 이야기는 그만하자. 한국에 돌아와서 너희들을 만난 게 좋은 일이 맞는지 너무 혼란스럽기만 하다.”
공산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도 그 사람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자.”
굳어 있던 그의 표정이 조금은 풀린 듯이 보였다. 아니, 표정이 굳었던 사람은 하모였을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내가 호주에서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시절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고해성사처럼 쏟아놓고 자기는 맘 편히 돌아가겠다고 달려온 건 아닐까.’
하모는 친구들에 대한 반가움이 사라지고 거북함이 가득 차올랐다. 빨리 말을 끝내기만을 바랐다. 학교에도 가기 싫어졌다.
“정말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었어. 방 교장에게 학교를 맡겼지만, 한시도 한눈을 판 적이 없거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가차 없이 질책하고 바로 해결하도록 했어. 물론 그 사람도 나와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고. 부딪치면 자기만 손해라는 걸 그 무서운 사람이 몰랐겠어? 게다가 내 아들이 지금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들?”
“그래, 사공성연이라고.”
“너와 성이 다르잖아?”
“그건 특별할 게 없어. 아내 성과 내 성을 합친 거니까. 아무튼 아들을 일부러 우리 학교에 지원하게 했던 거지.”
“설마 방 교장 잘하는지 감시하려고?”
“그렇지. 내가 아빠인 것을 비밀로 하고 입학시켰어. 이름만 보면 내 아들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참, 내가 이혼하고 혼자 살거든. 아들은 엄마와 살고 있고.”
그는 말을 이었다.
“편모슬하 아이로 아들의 신상 기록을 처리한 거지. 그런데 그걸로 결손 가정 아이로 아들이 차별까지 받다니 기가 막혀서. 그것도 아이 담임에게 말이지. 아무튼 아들이 입학해서 방 교장 곁에 있었던 거야. 물론 방 교장도 선생들도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사공성연 아버지가 학교 이사장인 것은 몰랐던 거고.”
“그렇게 감시를 철저히 했는데 왜 사고가 터진 거야?”
하모는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방 일병이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고 방심했지. 그 사람은 내가 있는 곳에서만 일하고, 내 앞에서만 착한 교장이었던 걸 내가 몰랐던 거야. 내가 눈치를 채고 직접 개입하고 보니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어. 설마 일 년 만에 그런 엄청난 일들이 전부 일어날 줄은.”
“방 교장은 안 되겠다. 계속 그 사람한테 학교를 맡길 작정이야?”
“내 얘기 들어봐. 우선 아들이 방 교장한테 직접적으로 차별을 당했어. 담임은 말할 것도 없고. 또 성연이 친구 중에 한 부모 가정 아이가 있어. 몽골에서 귀화한 후, 남편과 이혼한 어머니와 사는 결손 가정 아이지만 엄청나게 똑똑하고 밝은 아이인데, 그 아이조차 방 교장한테 당했어. 심지어 방 교장 아들한테도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했고. 그런데 요즘이 어떤 세상이야? 아이들이 당하고만 있겠어?”
공산의 이야기는 갈수록 놀라웠다. 하모는 또 물었다.
“방 교장 아들도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그래. 내 아들과 같은 반이야. 하여간 애들이 경찰에 신고를 한 거야. 그것도 방 교장이 신입 교사를 폭행하고 또 그 결손 가정 아이까지 때리는 모습을 내 아들 성연이가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어서 SNS에까지 올리고.”
도대체 이 녀석은 뭘 믿고 방춘식이라는 쓰레기 같은 놈에게 학교를 맡겼을까? 바보 같은 자식. 하모는 속으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인종 차별이 남아있는 호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모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방 교장은 만나 봤어?”
“물론이지. 그런데 동영상 건만 인정하는 거야. 비리가 넘치는데 다른 거는 절대 없다고 딱 잡아떼는 거 있지. 아이들 차별하고 자기 아들에게 시험지 유출한 거는 다 유언비어래. 절대 그런 적이 없대.”
“무섭다. 영화에나 나올 일 같아.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내가 그랬지. 당신이 차별한 사공성연이라는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당신을 못 믿어서 우리 학교에 입학시키고 내 아들인 것을 비밀로 했다고.”
하모는 점차 공산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뭐라고 해?”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깜짝 놀라더니, 바로 꼬리를 내리더라. 죄송하다고, 다 잘하려고 하다 생긴 일들이라고.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이사장님도 잘 알지 않느냐고. 말로 타일러서 될 일이면 내가 그렇게까지 했겠냐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지만 최선을 다한 것만은 알아 달라고. 그래서 그랬지. 당신 마음대로 사직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학교에서는 파면이고, 경찰 조사를 받고 벌도 받으라고. 그랬더니 뭐라는지 알아?”
“거기서 더 할 말이 있어?”
“자기 아들은 아무 짓도 안 했대. 아들까지 처벌받으면 자기도 가만히 있지 않겠대.”
“끔찍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 악질 교사가 교장까지 되었겠지만.”
“방 교장은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거든. 친아들이 아니니까. 사람 일은 정말 모르겠어.”
“뭐? 친아들이 아니라고? 그건 또 뭐야?”
“그 사람 재혼했다. 작년에 학교에서 난리가 났었거든. 방 교장이 교장실에서 재혼한 처의 아들을 때린 거야. 맞은 아이는 방 교장을 죽여버린다고 대들고. 더구나 애가 대들면서 자기 엄마한테 손찌검하지 말라고 했고.”
악연이었다. 공산과 방 교장 간의 끈질긴 악연, 방 교장의 아들과 공산의 아들로 이어지는 길고 긴 악연의 끈이었다. 공산이 말을 이었다.
방 교장은 마지막까지 공산을 괴롭혔다. 그는 사태가 악화하자 혼자 몰래 자기가 폭행한 - 몽골 출신 귀화 학생인 - 장평강의 어머니를 찾았다. 처음에는 사과했다. 돈이 필요하면 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사과는 자신에게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하라고 하였다. 그는 뜻대로 되지 않자, 그녀를 협박했다. 좋게 끝나지 않으면 두 모자가 한국에서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협박받은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여기까지였다. 공산이 알고 있고, 하모에게 해준 이야기는. 공산은 속이 후련한 듯 보였지만, 하모로서는 듣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였다. 가슴이 답답했다.
하모는 옛 시절의 학교를 떠올렸다. 세상은 신념만으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의욕이 앞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고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곧 모든 것을 망각하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무모하게 다시 덤벼들었다. 안타깝게도 공산이 처해 있는 오늘의 학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흐느끼는 공산의 어깨를 토닥이는 하모의 눈빛과 음성은 어느새 동굴 속의 그자를 닮아 있었다.
“마음 굳게 먹어. 사내자식이 울기는.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학교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방 교장도 별것 없다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