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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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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개학식 행사로 교직원과 학생 전원이 운동장에 모였다. 교장 선생님 훈화의 차례였지만 해탈은 나타나지 않았다. 교감이 교무부장인 거머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교감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교장 선생님이 훈화 말씀을 준비하느라 조금 늦는다며 2학기 학사 일정을 전달했다. 모두가 교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 때였다.


“사람이다!”


누군가 송전탑을 가리켰다.


“사람이 철탑에 올라갔다.”


아이들 몇이 철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고함이 들렸다.


“해탈이다. 해탈이 철탑에 있다.”


이제는 운동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철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철탑 중간쯤에 사람이 매달려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그가 교장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교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남자가 다시 철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손만 뻗으면 고압선이 닿을 높이까지 올라간 그가 학교 쪽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쳤지만, 운동장에서는 거리가 멀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조마조마하게 그의 움직임을 숨죽여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슬아슬한 모습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을 챙기는 선생은 없었다. 아이들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천 선생은 주저앉아 “교장 선생님, 안 돼요.”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이 철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기만이 그들을 따라 뛰었다. 공산도 하모를 힐끗 쳐다보더니 기만을 쫓아 뛰었다.


그러나 하모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철탑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던 까닭이다.


“안 돼! 이 바보 같은 자식아, 안 된다고!”


하모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철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뛰어가면서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는 해탈을 떠올렸다. 그가 철탑에 올라갈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하모는 아이들이 소리친 것처럼 철탑 위 사내가 해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기를 바랐다. 뼈가 으스러지고 피가 솟구쳐 안 선생을 모멸한 죄의 대가를 치르기를 바랐다. 그는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철탑에 매달린 사람은 하모가 떠올린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하모가 철탑 아래에 닿아 막 고개를 든 바로 그때, 철탑 위에 매달린 사람 몸에 불이 붙었다. 그가 비명을 질렀다. 그를 바라보던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활활 타오르던 불덩어리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꿈틀거리다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어 갔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운동장에 들이닥쳤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야외 교실을 지나 철탑을 향해 뛰었다. 그들과는 반대로 교감과 방 일병이 본관 건물을 향해 정신없이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철탑에서 떨어진 사람은 안순동이었다. 하모는 겁에 질려 버렸다. 저주를 퍼부은 자가 눈앞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하모는 또다시 절규했다.


‘오, 말도 안 돼.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한편 누구도 예상 못 한 또 하나의 사건이 비슷한 시각, 같은 학교에서 벌어졌다. 안 선생의 자살만큼 처참한 사건이 교장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안 선생이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 교장실로 달려갔던 교감과 방 일병이 목격한 교장실의 광경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그들이 교장실 문을 열었을 때, 교장은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온몸이 발가벗겨져 의자에 묶여 있었는데 머리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양 정강이는 무릎부터 전부 으스러져 있었다. 교장은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야만 한다고 했다.


교장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안순동이었다. 사건이 수습되고 학교는 일상으로 되돌아갔지만, 교장은 뇌진탕 후유증과 다리 수술로 정상적인 학교 업무를 볼 수가 없었다. 결국은 교감이 교장 대리로 학교 업무를 대행하였다.

야외 교실에서 송전탑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폐쇄되었고, 시든 잎이 떨어져 이리저리 구르며 교정의 상처를 덮어 나갔다.


하루는 공산이 하모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최강욱 그 녀석 정말 알 수 없는 놈이야.”


공산의 말에 하모가 물었다.


“왜? 강욱이한테 뭔 일 있어? 요즘 통 학교에 안 나오던데.”


“안 선생 사건으로 육성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가 얘기해 줬거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모는 공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공산이 하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끼리는 괜찮아.”


회의에서는 깜짝 놀랄 일들이 있었다. 철탑 사건 이후, 안 선생이 남긴 일기장을 토대로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그는 일기에서 자신을 자살로 내몬 사람이 자신의 삼촌, 즉 교장인 것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교장의 친형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도 바로 교장이라고 주장하였다.


단순한 학원 비리가 아닌, 사학 재단의 이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순간이었다.


안 선생은 교장과 연관된 수많은 비리를 폭로하였다. 그러나 교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안 선생은 가해자이고 자신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모두가 죽은 자의 하소연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교장의 비리는 수사에 착수조차 못 하고 땅속에 묻힐 뻔하였다.


그것을 파헤쳐 바로잡은 사람이 바로 최강욱의 아버지 최 검사였다. 사실 학교 육성회에는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공산의 어머니도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드러내지 않고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도운 유력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의 명예를 위한답시고 모든 것을 덮으려고만 하였다. 이번 사고는 자살이 아니라 - 비리를 저지른 교사가 교장에게 발각되자, 철탑으로 올라가 교장에게 누명을 씌우려 협박하던 중에 고압선을 잘못 건드려 감전사한 - 단순 사고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매우 그럴듯하여 하모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모두가 학교의 위신과 명예만을 걱정했다. 파헤치기보다 덮으려고만 하였다. 그걸 최 검사가 뒤집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도 사건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돌연 태도를 바꾸어 수사를 강행시켰다. 공산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고 그는 학생들 입장에 서서 매듭지을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대답했다. 공산의 추측은 간단했다. 최강욱이 아버지를 설득한 것이다.


하모는 혼란스러웠다. 최강욱이 대체 왜 그랬을까? 아버지 후광으로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최강욱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더구나 그는 안 선생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교장은 업무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최 검사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안 선생이 억울함을 호소한 사기 및 협박은 죄목에도 없었다. 교장은 도덕적 책임 운운하며 제법 그럴듯하게 사태를 포장하여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교감이 교장으로 승진하였다. 물론 이사장 자리는 여전히 해탈의 차지였다. 변한 것이 없었고 사건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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