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수업이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되었지만, 안 선생 걱정에 하모는 공부가 되지 않았다. 야자 시간 내내 자리에 없던 공산이 10시가 다 되어 땀을 뻘뻘 흘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하모를 보며 그가 물었다.
“아직 안 갔어?”
“가야지. 그런데 어디 갔다 와? 가방은 그대로 있던데.”
“응. 운동장에서 좀 뛰었어. 철봉도 하고.”
“그래서 땀투성이구나. 뜬금없이 무슨 운동?”
“답답해서. 뛰고 나니 후련하고 좋네. 나가자.”
교문을 나서는데 공산이 담배를 입에 물며 하모를 멈춰 세웠다.
“잠깐만. 하모야, 저기 좀 봐.”
“어디?”
그가 맞은편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저 하늘 아래 산 말이야.”
“남산이잖아.”
“그래. 남산 꼭대기에 반짝거리는 것도 보이지?”
“그건 남산 타워고. 오늘 날씨가 좋아 잘 보이네.”
“참 이상해.”
“뭐가?”
“남산 말이지. 높지도 않은데 서울 한복판에 우뚝 서서,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처럼 보이거든. 반짝거리는 불빛은 마치 등대 같기도 하고, 하늘의 별 같기도 하고. 교문을 나설 때마다 보이는 저 산과 타워의 불빛이 어느 날부턴가 나한테 말을 거는 거 있지.”
하모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라고 하는데?”
“그게…. 유치한 장난은 그만 멈추라고.”
“그 얘기라면 강욱이와 내가 몇 번이고 했잖아. 넌 왜 친구 말을 안 들어?”
어처구니없어하며 하모가 쏘아붙이자, 공산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안해. 할 말이 없다. 나도 나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해. 너희 볼 낯도 없고. 또 담배를 입에 문 내 모습을 보니 거머리가 조회 시간에 한 이야기도 생각이 나고.”
하모는 그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알아차렸다. 그러나 후회를 한다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빨간 반딧불이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도 너는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어.”
공산은 하모를 한번 쳐다보더니 서둘러 담배를 발로 밟아 꺼버렸다.
“미안. 황록색으로 빛나는 반딧불이가 아니라 빨간 반딧불이라니. 담임이 말할 때는 헛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모습을 보니까 그게 아닌 거야. 나는 보통 아이가 아니고 돌연변이였던 거지. 그래서 안 선생님을 놀리고 마음 아프게 만들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까지 저지르고…”
하모는 결국 폭발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적당히 하라고. 지금 네 모습을 똑똑히 봐. 넌 뉘우치는 척하는 순간에도 담배를 피웠어. 그 변종 돌연변이 빨간 반딧불이가 바로 너라고.”
“그래, 맞아. 난 돌연변이 괴물이야. 나는 벌 받을 거야. 천벌을 받을 거야.”
하모는 답답했다. 공산의 말대로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하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벌을 받든 말든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하모는 흐느끼는 공산을 남겨 두고 허청거리며 언덕길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