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아마도 나의 오늘 같은 날을 보고 채플린이 한 말은 아닐까 싶다. 오늘은 정기적으로 할아버지의 신분으로 돌아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자와 손녀들과 놀아주기 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그런 너무나 대책 없는 순진한 마음으로 ‘할빠와 할마” (즉 아버지 역할과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줄임말) 역을 자진하였다.
아뿔싸! 너무 우리들의 노익장을 과시한 것이었다 (bite off more than one can chew). 5살, 4살 그리고 2 살짜리와 놀아주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멀리서 남들이 손자와 손녀들을 본다고 할 때에는 낭만적이고 도전해 볼 만한 일과처럼 보였는데 가까이서 내가 해보니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느낀다. 아이들의 성격과 입맛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건강하면서도 맛도 좋고 특별히 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식단을 내놓는 일은 할아버지 ‘백종원’ 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갑자기 저 멀리서 아이들과 식탁에서 씨름하던 아내 (할머니)가 “여보! 빨리 와봐요” 한다. 아내가 아이들이 과일을 먹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이것 보세요. 어떻게 한 배에서 나온 아이들도 이렇게 천차만별인지…” 할머니의 손사래가 터져 나왔다. 사실인즉 전날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들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그 너츠 과일이 무엇인지 귀띔을 해서 아보카도, 바나나, 블랙베리 그리고 색깔이 선명하고 붉은 사과를 준비를 했었다. 한 아이는 과일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내려놓고서 뛰어다닌다. 한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만 쏙 빼 먹고는 나머지 과일은 내팽개친다. 아내가 와서 보라고 한 아이는 내가 보기에도 뭔가 달랐다. 이 녀석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바나나와 사과를 단번에 순식간에 먹어 치운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블랙베리와 아보카도를 마치 스테이크를 써는 것 같은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정갈하고 멋스럽게 한 조각 한 조각을 음미하면서 먹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한 엄마의 배속에서 나온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다를까’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고개를 꺄우뚱 하는 아내에게 ‘마시멜로 효과’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다. 오래전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팀은 1970년대 초반 '지연된 만족 (delayed gratification)'을 연구하기 위해 유치원의 4~6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실험을 수행하였다. 실험은 아동을 한 명씩 방으로 데려간 뒤 마시멜로 한 개가 놓여 있는 접시를 보여준다. 이때 "선생님이 잠깐(15분) 나갔다가 돌아올 텐데, 그때까지 이걸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한 개를 더 줄게"라고 말하고, 이후 아동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부의 아동은 문이 닫히자마자 마시멜로를 먹었고, 일부는 15분을 기다려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았으며, 나머지 아동들은 몇 분간은 기다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었다. 이 실험이 화제가 된 것은 14 년 후 발표된 후속 연구 덕분이었다. 실험에 참여했던 아동들의 성취도를 추적한 결과, 유혹을 좀 더 오래 참을 수 있었던 아동들은 청소년기에 학업 성적과 SAT 성적이 우수했고 좌절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도 강했다는 것이다. 또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 버린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비만이나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마시멜로 실험’이란 우리들에게 ‘자기 통제 능력’ 또는 ‘자제력’이 훗날 아이들의 성공의 열쇠임을 깨닫게 해준 참으로 귀한 실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적인 상담사 "Dear Abby"또는 "Carolyn Hax"와 같은 상담 칼럼들도 보라. 대부분의 인간 사회의 갈등과 분쟁은 처한 어떤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그리고 충동적으로 인하여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 즉 자제력 부재에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아이들의 순간적인 학업 성적이 아이들의 훗날의 성공을 약속하는 게 아니라, 뚝심이라든가, 자제력이라는 성격들이 인생 전반에 걸친 성공의 지름길이다. "영리하다 똑똑하다” 가 아니라 "끈질기다” “집요하다” 가 우리들이 높게 사야 할 수식어임을 말한다. 이 사회의 근본 뿌리를 야금 야금 갉아먹고 있는 ‘즉석 보상심리 instant gratification’ ‘한탕주의’ 가 아니라 힘들지만 ‘지연되고’ 또 ‘연기된 보상 심리’ delayed gratification에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의 희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님들이라면 한 번쯤을 들어본 위인전에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철강왕 그리고 자선 사업의 대가 카네기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어린 카네기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는데 시장 한구석에 아주 먹음직한 빨간 앵두가 큰 바구니에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어린 카네기는 그 앵두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는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차마 어머니에게 앵두를 사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단지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앵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카네기를 앵두 파는 할아버지가 측은하게 보고 "얘야, 너 그렇게 앵두가 먹고 싶니? 그러면 네가 먹을 만큼 집어가렴" 하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린 카네기는 앵두를 집어가지 않고 입맛만 다시면서 앵두를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앵두 가게 할아버지가 또다시 "얘야, 망설이지 말고 가져갈 만큼 가져가. 괜찮아." 하였다. 그래도 카네기는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앵두 가게 할아버지가 큼지막한 손으로 앵두를 한 움큼이나 듬뿍 집어서 어린 카네기에게 주었다.
할아버지가 주시는 앵두를 자기의 작은 손으로 다 받을 수 없었던 카네기는 셔츠 자락을 벌려서 겨우 받아 가지고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후 어머니가 궁금해서 물었다. "얘, 카네기야. 너 왜 할아버지가 앵두 가져가라고 하실 때 안 가져가고, 할아버지가 집어줄 때까지 기다렸니?" 그때야 수줍은 얼굴로 어린 카네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내 손은 작지만 할아버지 손은 크잖아요." 이런 경우를 보고 하는 말이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다.
이러한 마음에 대해, 영성 학자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는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주나 능력이 있는 자 아닌 ‘깊은 자’를 사용하신다.” ‘깊은 자’가 무슨 뜻인가? 성경은 ‘깊은 자’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 9:25)
그렇다. 올림픽에서 달리기를 하는 육상 선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훈련과 연습을 합니까? 그들은 철저히 연습과 훈련을 합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지를 않습니다. 자고 싶은 잠을 다 자지를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경기 때에는 100g 단위의 몸무게도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먹는 것을 얼마나 엄격하게 절제를 하는지, 누군가가 선수들이 먹는 식단을 보고 ‘지옥의 식단’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 온 나라가 온통 즉석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니… 성경도 이 시대를 대변하듯이 딤후 3장은 말세가 되면 나타나는 징조 중에 유난히 ‘절제하지 못하며’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퇴근 후 시어머니의 즉석 ‘마시멜로 실험’ 강의를 들은 며느리들의 표정에서 명암이 엇갈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훈련과 연단을 받을지 생각하니 공연히 할빠와 할미의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며느리들에게 이 시아버지가 “웃자고 한 말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두번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 우주만물의 법칙이 아닌가. 이미 아이들의 ‘운명’을 점칠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표현처럼 철부지 없는 어른들 등살에 철든 아이들의 마음이 상할까 마음을 졸인다. 다음에 아이들이 오면 어떤 모습으로 과일을 먹을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