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
미국의 역사가들은 역대 대통령들 중 해리 트루먼을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라며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다. 왜일까? 트루먼은 1884년 조그마한 미주리 주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한 가난한 소작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세기의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가 정치인으로 부각이 되자 사람들은 ‘미주리 촌뜨기’라 불리기도 했다. 정치 활동 내내 끊임없는 비아냥거림과 경멸 그리고 철저한 냉대와 외면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됐다. 그리고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통쾌하게 깨부수고 부통령이 된 지 단지 82일째, 대통령 루스벨트가 뇌출혈로 세상을 뜨면서 '어부지리'(漁父之利)로 대통령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얼떨결에 4 선을 역임했던 전직 대통령 루스벨트의 급서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미주리 촌뜨기’ 트루먼에겐 최고의 권좌(權座)라는 그 자리가 얼마나 책임이 막중했을까? 준비되지 않았던 그에게는 숨 막힌 결단의 연속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미주리 촌뜨기’ 트루먼의 일거수 일거족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를 향한 그 이목이 얼마나 무거웠든지 그가 국민들에게 처절한 고백을 한다. “지금까지 기도를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없는 분 또 기도를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지금 저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한때는 하늘도 그의 편이 아닌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6•25전쟁 참전이라는 결정으로 지지율은 20%대로 뚝 떨어져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당시에는 꼽혔다.
그러나 퇴임 후 그의 위상은 대대적인 역전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비아냥과 경멸의 비호감이 아니라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이 전대미문의 역전의 비결은 무엇일까?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을 한 것이다. 포스트 트루먼 이후 많은 대통령들을 겪어 봄으로써 먼저 사람이 좋은 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특별히 결정적인 순간마다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지도자로 재평가됐다. 지금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유능한 대통령으로 간주된다.
특별히 그를 최고의 역대 대통령으로 꼽는 것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오벌 오피스(Oval Office)-대통령 집무실로 책상 위에 놓여 있었던 ‘The buck stops here!’란 패가 아닌가 싶다. 우리 말로 직역하자니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 곧,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그 반대말이 'Pass the buck'라는 말로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하고, 또 전가한다'라는 말이다. 실제로 트루먼은 결정을 망설이는 각료들이 있으면 그 패를 가리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자신을 가지고 추진하라”라고 격려했다 한다. 결국 그의 전매특허 좌우명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은 키 170㎝ 남짓한 ‘리틀 맨’을,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리틀 빅 맨(작은 거인)’으로 또 '미주리 촌뜨기'에 불과했던 그를 루스벨트와 링컨 들과 함께 일약 명예의 전당의 대열에 오르게 한 초석이 된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약간의 44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의 괴력과 마력에 빠지고 있다. 바로 '현대판 트루먼'의 등장에 열광적인 환호와 찬사를 보내고 있다. ‘The buck stops here!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신조는 '미주리 촌뜨기'에 불과했던 트루먼 대통령을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것 처럼 무명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하루아침에 '찰리 채플린에서 윈스턴 처칠로 변모하게 한 것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상이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그가 "일주일 전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하나로 만들고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침공 후 미국은 암살 위협을 받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보호하고자 망명을 제안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여기가 (내) 싸움터다. 나는 (도피용) 탈것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라며 거절했다. ‘전쟁 중 죽는 게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그가 답을 했다. “나도 다른 이들과 같다. 자기 목숨이나 자녀의 목숨을 잃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못된 사람”이다. 하지만 이내 “나는 대통령으로서 그런 일을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다른 국민처럼 총을 들고 군에 합류했을 것이라며 “어떤 경우인들 위험에 처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세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비결일까? 바로 한 나라의 지도층이 보여준 솔선수범과 촌철살인의 지도력에 있다. 그리고 그 지도력의 중심에는 'The buck stops here'라는 좌우명이 있다.
언젠가 대학교수들이 새해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반구저기(反求諸己)’를 선정했었다. 한마디로 “군자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소인은 남의 탓을 한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나라에서 총체적으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팽배했으면 대학교수들이 제발 부디 이제는 '벅 buck' 를 그만 떠넘기라는 말을 했을까? 그리고 보니 우리는 너무나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에 익숙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이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내로남불’이 등장했겠는가? 얼마나 한국 사회의 풍토가 너무나 자신한테 관대하고 남한테는 엄격했으면 또 한국에서 얼마나 내로남불의 이중성의 극치가 심했으면 남의 나라에서 이렇게 꼬집고 있을까?
그래도 어떡하겠나? 그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을. "우리네 정치인들과 대통령들 세계에서는 "잘못되면 무조건 누구누구라는 전직 대통령 탓”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다. 잘되면 다 내 탓이고 잘못되면 다 조상 탓이다. 어디 그뿐인가? 길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애꿎은 김서방 박서방의 탓, 밥 먹다 체해도 조상 탓, 로또가 안 돼도 누구누구 탓… 바야흐로 우리 한국인의 DNA에는 세상만사 잘못된 것은 모조리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민초(民草)들은 뭘 누구의 탓으로 돌릴만한 여유조차도 없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국민들은 기억력조차 아물아물해 저 버렸다. 떠난 구간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별로 관심이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소시민'들은 먹고살기가 바쁘다. 내일이면 뭔가 달라질까 할 뿐이다. 그러니 제발 이제 그만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라’라는 좌우명을 외치는 지도자를 보고 싶어 한다. 그게 너무 과한 욕심인가?
지난 18일 숨진 콜린 파월 전(前) 미국 국무장관(84)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군인이다. 그는 더물게 미국인들의 신뢰를 샀고, 흑인으로선 최초의 4성 장군, 합참의장, 국무장관이 됐다. 당연히 이 전설적인 인물의 죽음을 맞아, 그를 추모하는 여러 일화들이 미 언론에 소개된다. 그는 일이 잘못되면 항상 내 탓으로 돌리고 일이 잘되면 우리들의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가 좋아하는 미국의 시인 에드윈 마컴의 노래가 생각이 난다. “책임이 그대 문을 두드릴 때 기꺼이 맞으라/그를 기다리게 하면 떠나도 다시 올지니/일곱의 다른 책임과 함께.” 그렇다. 진정한 리더는 공은 아래로 넘기고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언젠가 영국 사회가 병들어 갈 때 신문사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인이었던 체슬턴(Chesterton)에게 질문했습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입니까?" 그의 대답은 한 마디였습니다. "내가 문제요." 그렇습니다. 나의 문제로 여길 때 해결은 시작됩니다. 1990년대 초, 당시 천주교 서울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자신의 승용차에 ‘내 탓이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이면서 “자기를 먼저 돌아볼 때”라는 사회적인 운동을 한 것은 기억한다. 그 스티커 40만 장이 금방 동날 정도로 사회적인 큰 호응과 반향을 얻었다는 사실도 기억을 하다. 무슨 뜻일까? 바로 사회 전반에서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다름 아니라 '메아 쿨파'(Mea Culpa•내 탓이오) 정신이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에 백인들 친구와 대화중에 가끔 '메아 쿨파’(Mea Culpa)라는 단어를 종종 접했다. 예를 들면 ‘I forgot to call you earlier because I was in the class, mea culpa.” 경우들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미국이 참 살기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싸우지도 다투지도 않고 멱살도 잡지 않고 고만고만 서로가 아웅다웅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바로 mea clupa 덕분이었다. 다시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런 세상이 하루 빨리 왔으면 참 좋겠다. 너무 과분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