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기계과 3반

인생 네 컷

by 김광희

잊을만하면 전화, 문자로 소식을 주는 졸업생이 새해 첫날 오후에 전화가 왔다.

"쌤! 쌤! 벌써 10년이에요. 10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입을 벌리고 '무슨?'이라고 물었다.

"제가 쌤 반이 된 지 10년이라고요."

애타는 연인 사이도 아니고 담임으로 만난 햇수를 말하며 저렇게까지 흥분하다니. 나는 밀고 올라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새해 첫날부터 우리 집 천장이 들썩거리도록 웃어젖혔다. 너무 즐겁고 행복하면 눈물이 난다고 하더니. 그날 녀석의 여자 친구 목소리까지 들은 후 나는 핸드폰에 눈물 몇 방울을 건넸다.


그해 기계과 3반 담임이던 나는 마을 입구를 지키는 든든한 장승같은 43명과 함께했다. 올해 첫날부터 나를 웃게 했던 녀석은 3학년 때 우리 반이 되었다. 학급 학생들 핸드폰 보관 가방 담당이던 녀석은 교무실 서랍장에 가방을 넣고 내게로 왔다. 중요한 열쇠를 내게 건네주며 한 마디씩 툭툭 던지며 나를 웃게 했다.

“쌤! 오늘은 화요일이니 화 조심하세요.”

때론 아직 여물 지도 않았을 주먹을 꽉 쥐며

“오늘 어떤 놈이 쌤을 힘들게 하면 반으로 연락 주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간간이 사탕이나 초콜릿 한 조각을 건네며

“커피 마실 때 달짝지근한 것도 한 개 드셔야죠. 쌤!”

내가 담임이라서 행복하다며 초등학생처럼 재잘대던 녀석 덕분에 나는 많이 웃었다.


나는 전화를 끊으며 기계과 3반 아이들을 떠올렸다. 여전히 내게 연락하는 녀석들과 졸업과 동시에 사라진 녀석들이 있다. 퇴직을 앞두고 연락처를 지웠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번호는 나에게 가끔씩이라도 연락하는 졸업생들이다. 하나둘 이름을 확인하며 메신저 사진을 살펴봤다. 여전히 졸업 사진이 배경 사진으로 남아있는 졸업생이 있었다. 운동을 하다 공부가 하고 싶어 1학년 때 전학 와 3학년 때 우리 반이 된 학생이었다. 오래전 나도 지워버린 졸업 사진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중학교 때까지 유도만 하던 녀석이 느닷없이 공부에 도전장을 내밀다니. 나는 그런 녀석이 기특해 넉살 좋은 부반장(핸드폰 보관 가방을 담당하는 녀석)과 엮어줬다. 말이 별로 없는 묵직한 운동선수와 넉살 좋은 녀석의 조합은 꽤 성공적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절친이 되었다. 느긋하면서 밝은 모습이 비슷한 둘은 꽤 적극적으로 담임인 나를 따랐다.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주어진 필기 면제 의무검정 기능사 시험을 앞둔 6월. 내가 팔꿈치를 다쳐 4주(9주 진단을 받은 개방골절. 어이구 사고뭉치!!) 입원을 했다. 혹시나 아이들이 여수에서 순천까지 올까 봐 병문안은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별의별 핑계를 대고 교대로 애들이 왔다. 물론 이 둘도 있었다.


지금보다 젊고 활발했던 때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던 나는 졸업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며칠 후 두 녀석과 저녁을 먹었다. S그룹과 K그룹에서 교대 근무 중인 둘이 1월 초부터 시간을 맞춘 날이란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면 나와 술 한잔하고 싶었다는 운동선수 출신 녀석에게 내가 한잔 따라주며 물었다. '아직도 배경사진이 고등학교 졸업사진이던데'. 녀석은 '가장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기 때문'이란다. 고기 한 점과 소주 한 잔을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나에게 인사하며 덩치만큼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보다 자격증 따는 시간이 오래 걸려 취업이 늦었지만, 그래도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소원이라던 술 한 잔을 같이 해주지 못한 내 눈가가 활활 타오르는 숯불과 형광등 불빛처럼 빨개졌다. 졸업식날 한 명 한 명에게 줬던 축하카드와 생활기록부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두 녀석 덕분에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넉살 좋은 S그룹에 다니는 부반장 손에 끌려 우리 셋은 무인 사진관을 갔다. 저녁 바람이 차가웠지만, 우린 행복함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달래며 카메라 앞에 섰다. 하나 둘 셋 찰칵. 추억과 즐거움에 휩싸인 사진관에 네 컷 사진 한 장을 붙여두고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린 헤어졌다.


집에 들어선 내가 컴컴한 거실 불을 켜는데 음침하게 기다리던 어둠이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둠이 내 오른쪽 허리를 스치며 외쳤다. "밝은 이곳을 떠날 테니 웃고만 살아. 이게 다 새해 첫날 맞이한 붉은 해와 실컷 웃게 해 준 아이들과 사랑 가득한 사람들 덕분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벗는데 전화가 왔다. 도교육청 글로벌 현장학습 프로그램으로 연수를 갔다가 호주 현지 회사에 뿌리를 내린 졸업생이다. 녀석은 담임쌤이 보고 싶다며 곧 귀국하니 나에게 시간을 내주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심장이 들썩거렸다.


새해 첫날부터 3월까지 달력에 빈칸이 별로 없다. 생각지도 않은 졸업생들과 친구들과의 약속이 빼곡하게 찼다. 두바이 여행도 무사히 다녀온 나에게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봄볕처럼 다가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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