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이 만든 사진.
경기도 이천에서 주식이 하늘로 치솟은 S 회사에 근무 중인 제자가 아파트 정문에서 나를 내려줬다. 나는 여수에서 미어캣이 되어 순천 쪽을 바라보고 있을 여자 친구에게 어서 가보라며 손짓했다. 가던 길 멈추고 길가에 차가 멈췄다. 오른손에 상자를 든 녀석이 나에게 뛰어왔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러더니 또 깜박 증상이 도져 무언가를 놓쳤나 보다. 내 앞에 선 녀석은 두 손으로 상자를 건넸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봤던 정 홍삼이었다. 이번엔 진짜로 간다며 인사하고 차로 가던 녀석이 나를 돌아보며 손을 입에 모아 외쳤다.
“쌤! 늙지 마세요. 이거슨 협박입니다.”
협박이라니. 순리를 거스르며 어떻게 나만 늙지 않겠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녀석의 자동차는 ‘저는 이만 집으로 갑니다.’라며 비상 깜빡이를 흔들며 갔다. 제2의 박지성을 꿈꾸던 녀석은 고등학교 3년을 나와 함께했다. 그때 내가 자주 그랬단다. 훈계(잔소리라고들 한다.)가 끝나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내일도 이러면 단체 기합이다. 이거슨 협박이니깐 좀 잘하자!’라고. 담임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학급 아이들과 축구공을 찾아 운동장으로 뛰어가던 녀석이 벌써 5년 차 직장인이라니. 뒤통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흐뭇하고 든든했다. 어느새 청년이 된 녀석은 입으로만 협박을 잘하던 나에게 실천하기 힘든 주문을 던졌다.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도 이루지 못했는데. 혹시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금융 치료를 받으면 가능할까?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나는 혼자 웃고 말았다.
그러다 글을 통해 나는 다시 협박을 받았다. 출간 늪에 빠진 작가가 나를 아니 우리를 그 늪으로 오라고 손을 내밀었다. 아름다운 선순환이 ‘읽고 쓰고 투고’라며 태어난 김에 출판사에 투고하지 않은 자 유죄란다. 그가 흐물거리는 내 손을 잡아챘다. 그리곤 나에게 정보를 책 속에 몽땅 담았다고 말했다. 다독을 통해 알게 된 것과 글을 쓰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들을 『태어난 김에, 책 쓰 기』에 쏟아낸 거다.
그는 사랑과 월급은 아내에게 첫 문장은 독자에게 바치는 정성까지 갖췄다. 직장과 육아를 겸하면서도 하루에 3시간 이상을 투자했으며 1년에 한 권씩. 벌써 3번째 책을 출간했다. 이젠 교보문고 본점 베스트셀러 선반에 책이 전시되길 희망한다는 그의 글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독서와 번뜩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부지런함이 묻어있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심지어 죠리퐁 한 봉지에 담긴 낱알 개수만큼 읽고 쓰다 보면 ‘글로 소득’이 따라올 거라는 문단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올해 들어 ‘친구들은 주식으로 반찬값 이상을 벌었다고 난린데. 주식에 주자도 모르는 나는…’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인가 싶어서였다.
책을 덮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졌다. 그가 조곤조곤 말하는 대로 실천하려니 너저분하게 펼쳐진 것들이 걸렸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하루 종일 의자에서 뒹구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거실 벽에 가득 찬 한껏 뽐내고 있는 텔레비전을 어째야 하나 싶어 쳐다봤다. 이럴 땐 청소가 약이다. 시험 전날이면 책상 정리 후 공부하려다 그냥 잠들곤 했던 오래된 버릇이 기어 나왔다. 책장과 책상 정리를 했다. 나머지 청소는 로봇 청소기가 있으니깐. 나는 새 출발을 다짐하는 타락자처럼 조심스럽게 노트북을 켰다. 의자를 당겨 바른 자세로 앉았다. 하지만, 손가락은 갈 곳을 잃었고 머릿속과 가슴엔 찬바람이 불었다. 노트북 화면에 커서만 깜박거렸다. 아차! 작가는 ‘각 잡고 책상에 앉아봐야 시간만 흐른다’라면서 문득 글들이 떠오르면 손에 본드처럼 붙어있는 스마트폰이면 된다 했는데. 책에 쓰인 대로 흉내를 내보려다 집안만 깔끔해졌다.
나는 더 이상 늙지 않기와 읽고 쓰기를 열심히 하라는 귀엽고 다정한 협박을 받았다. 허벅지와 입이 무거웠던 제자의 협박이 간지러워 둘레길로 걷기를 나갔다. 유난히 하늘이 낮고 햇살은 따가웠다. 퇴직 후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애정을 보여주는 제자들 덕분에 양쪽 어깨가 솟아났다. 곧 하늘에 닿으려 했다. 재채기하며 걷는 내 뒤로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작가의 목소리도 들렸다. ‘태어난 김에 책을 한 권 써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삶이 바뀔 테니까.’ 그 목소리와 함께 걷는 꽃길이 유난히도 환하고 설렜다.
<『태어난 김에, 책 쓰 기』 류귀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