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은, 사랑 2

금연은 찐사랑이죠^^

by 김광희

평소보다 빠르게 육교 오르막을 올랐더니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수를 내려다봤다. 서서히 색을 잃어가는 개나리, 살구꽃과 이제부터는 내 세상이라는 벚꽃이 서로 경쟁하듯이 고개를 쳐들었다. 어제 내린 비 덕분인지 고여 있는 호수 물도 반짝거렸다. 그 사이로 벌레들을 내쫓듯 손을 휘젓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코끝까지 내려간 안경을 올렸다. 햇살이 너무 강해 얼굴을 찡그린 채 한참을 바라봤다.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벚꽃 나무에 가려진 바로 옆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손을 휘젓던 그가 생수로 입을 헹궜다. 낯설지 않은 모습에 쓴소리가 하고 싶어 입이 실룩거렸다. 그가 휘젓고 있는 건 담배 연기일 거다. 나를 발견하지 못한 녀석은 생수통을 호수로 던지고 떠났다. 호흡이 수월해진 내가 다급하게 손나팔로 그를 불렀다. ‘학생! 학생!’ 코맹맹이가 된 내 목소리는 그곳까지 닿지 못했다.


퇴직 전 2년간 금연 교실을 담당할 때였다. 전교생 중 희망자와 담임선생님의 강요로 20명을 모았다. 기호식품이라고는 하지만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줄이 들이대며 금연 교육을 했다. 나는 ‘학생이라는 알을 깨고 사회인이 되면 더 힘들 테니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외쳤다. 두툼한 문화상품권을 흔들며 금연에 성공하면 부모님껜 커다란 기쁨이라고 달콤한 유혹도 던졌다. 이름만으로도 학생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학생부 선생님들과 진행했던 2년 동안 40명 중 단 1명. 일란성쌍둥이 중 부사관을 꿈꾸던 형만 성공했다. 두 손 번쩍 들어 문화상품권을 흔들던 녀석은 부사관에 무사히 합격까지 했다. 증거로 남겨둔 사진을 나는 수업 시간마다 마르고 닳도록 보여줬다. 학생들은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수업 끝 종이 울리면 우르르 그들만의 장소로 달려갔다.


애초에 시작을 말아야지. 담배는 입에 댄 순간부터 진공청소기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하루에 커피를 서너 잔씩 마시는 것 또한 중독이니 같이 노력해 보자 했다. 하지만 나도 아이들도 실패라는 쓴맛만 봤다.


참견러가 되어 아침부터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칼칼했다. 둘레길을 걷던 내 발길이 나도 모르게 스*앞에서 멈췄다. 작년 신장절제술 후 ‘엄마! 앞으로 빈속에 커피는…’이라며 말을 흐리던 딸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속없이 반항하며 떼쓰는 발을 끌고 나왔다. 겨우 커피 한 잔을 참지 못하다니. 8개월째 금연 중인 사위를 생각하며 커피 한 모금을 애원하는 내 입을 때렸다.


작년 건강검진 결과를 들은 후 서울, 경기도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닐 때. 사위가 20년 동안 피었다는 담배를 끊었다. 진료 후 두려움에 쌓여 넋이 나가있는 장모님과 아내 때문이었을 거다. 두 여자의 든든한 지킴이였던 사위는 금연 교육이 필요 없었다. 망설이지도 않고 내가 수술받기 전 담배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여전히 흡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또 입술이 들썩거린다.


지난주 토요일. 광양 배알도 별빛 야영장에서 딸 부부를 만났다. 능숙하게 구워준 고기를 먹고 있는데 사위가 내게 고백을 해왔다.

“사실은 지금도 가끔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금연 교육을 했었는데 그 마음을 모를까. 사위는 내가 수술을 마치고 나오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며 말을 흐렸다. 나도 호흡이 힘들어 걷기도 힘들었던 그 시간이 생각났다. 흡연자가 아니니 걷다 보면 좋아질 거라던 교수님 말씀도 기억한다. 퇴원 후 나는 꾸준한 걷기를 통해 폐활량을 되찾았다. ‘암’이라는 단어가 나에겐 서늘한 기운을 줬지만, 사위에게는 금연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줬다. 담배 냄새를 맡으면 여전히 코가 벌렁거린다는 사위 어깨를 나는 가만히 쓰다듬었다. 쑥스러움에 얼굴이 벌게진 사위가 바삐 움직였다. 하룻밤 야영에 마치 며칠이나 지내다 갈 것처럼 챙겨 온 아이스박스에서 뭔가를 빼냈다.

나는 딸과 사위가 준비한 먹거리에 배가 불러 트림을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빼낸 것을 보여줬다. 내가 어디에서라도 스스럼없이 꼭 사 먹는 호떡이었다.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다며 손사래 쳤지만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그 주인공이 호떡인데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달궈진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호떡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나와 함께 간 친구는 생애 처음인 캠핑에 호떡까지 먹는다며 소리를 질렀다.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우리는 젓가락만 들고 사위에게 달려들었다. 텐트 앞 장작불이 우리 마음처럼 활활 타올랐다. 저 뜨거운 불처럼 사위의 금연에 대한 의지도 계속 타오르길. 그러면 나는 그의 영원한 장작이 돼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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