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박*자. 80년대초 이 분의 실수로 산모가 위태로웠다. 일종의 의료사고인 것이었다. 두 아기도 위태로웠는지 소화아동병원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 남편의 성을 따서 함께 지은 산부인과는 이제 터만 남아있다. 나에게 '*박'은 기후현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첫울음을 터뜨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원장님의 소식은 알길이 없다. 북아현동 148-1. 그곳의 본래 위치이다. 의원은 강남으로 이주하여 계속 진료를 보시는 듯 하다. 두 아이가 중 한 아이가 살아남았으니 바로 나다. 4족 보행은 보행기와 함께 점차 2족 보행이 되었을 것이고, 걸음마를 마치고 두 다리로 걷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리에 문제가 있어서 용산 미8군 부대내 의사에게 면담을 하니, 크면서 나아질 것이기에 보조장치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단다.
여하간 아이는 무사히, 무탈히 두 다리로 걷게 되었다. 엄마는 '산보(散步)'라는 말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열 살 이후의 일이다. 고교1학년부터 무턱대고 걷기 시작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후로 나의 보행거리는 어쩌면 무수히 둘레 4만km의 지구를 돌았는지도 모르고, 38만3천~40만 km의 거리에 있다는 달까지는 아닐지라도 사람이 평생 걷는다는 12만km의 대부분을 이미 걸어왔는지 모른다. 외조부의 걸음도 멈추었고, 외조모의 걸음도 멈추었으며, 모친의 걸음도 멈추었지만, 외손과 아들의 걸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살아숨쉬는 동안 상당히 오랜 기간을 걷고 또 걷지 않겠는가. 자전거를 타며 페달을 밟아도, 걷는 것이고, 자동차를 타면서는 걷지는 않겠지만, 역시 페달을 밟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하고,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며, 정부와 의사들이 대립을 유지하는 2024년에도 나의 걸음은 포레스트 검프의 스탭처럼 이어지고 있다. 어쩌다 사부님과 동학들과 일상 중에 걷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걷는 것이 소망이자 꿈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걷는 것이 곧 '벌이'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걷는 것이 '형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걷는 것이 '운동'일 수도 있다. 나에게 걸음은 '몸부림'이 아닐까? 세상에 대한 존재의 몸부림. 그것의 이동. 나의 몸만 걷는 것인가? 아니다. 보이지 않고, 감각되지 않는 넋도 함께 걷는다. 두 다리와 발이 지면을 옮기는 동안에 두뇌는 생각을 옮긴다. 눈에서 장면이 옮겨지고 귀에서 소리가 옮겨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머리는 감각과 사고를 옮기는 것이다.
이제는 아파트가 되고, 편의점 상가가 들어선 곳에서 나는 바깥구경을 처음으로 했다. 그리고 나고자란 곳에서 여전히 40년 넘도록 벗어나지 않고 걸어다닌다. 한양 성저십리 바깥에서 자판을 누르는 지금도 나는 돌아갈 좌표가 다만 그곳이다.
서사는 주인공이 집을 나서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걸어가는 동안 다양한 풍경을 스치고, 바람과 비와 눈을 스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이름없고 얼굴없는 무수한 군중의 하나 아니던가. 보이지 않는 티끌로 분산되기까지 걸어 이동하는 운명을 지닌 것은 다른 동물들과도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머리를 움직이며 걷는 조류부터 지느러미 형태의 발을 지닌 거대한 파충류 바다거북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생명체가 군집을 이루며 걷고 또 걷는 지표면. 족적을 남긴 땅에는 그만큼 수많은 사연이 쌓이고 지워지고 쌓이고 허물어진다.
누군가는 런닝머신에서 제자리 걸음을 할테고, 누군가는 한 걸음에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하간 우리는 누구든 걷고 또 걷는다. 앞으로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더이상 걸을 수 없는 지역에 다다르기도 한다. 벽을 마주하기도 하는 것이다. 장벽 앞에서 걸음은 그만 멈추어지고 만다. 운명의 장벽. 그것은 시커먼 암흑의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어서도 걷겠다는 척탄병처럼 또 다시 일어나 걸음을 이어간다. 사후 명계에 이르는 곳도 대체로 '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처럼 표현되는 것이 고전서사 속의 '저승'이다. 우리는 죽은 다음에도 또 걸어가야 하는지 모른다. 아직은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언덕을 오르내리거나, 산을 타거나, 우리는 그 험난한 걸음걸이의 여정을 이어간다. 걸음걸이의 모습에 따라 자아를 식별할 수도 있고, 그 앞모습과 뒷모습과 옆모습에서 무언가를 포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멈추더라도 이내 다시 걸음을 이어가야만 한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인 까닭이다. 나는 그렇게 4족보행도 해보고, 2족보행도 해보았지만, 인큐베이터까지만 함께 했을 아우는 나와 함께 걸어본 적이 없다. 그 존재는 4족보행도 해본적이 없다. 엄마의 뱃속에서 '발길질'을 한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내내 누워있다가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니 나는 용진이와도 함께 걷는다. 우리는 양수 안에서 얼굴을 마주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네 번 계절이 바뀌고는 새로운 동생이 태어났고, 나는 새로 태어난 아우와 함께 걸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 형제는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동생은 얼마전 태어난 딸의 4족 보행과 2족 보행을 지켜보고 역시 함께 걸어갈 것이다.
어떤 모빌리티의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는 우리 몸뚱이의 걸음을 이어가야만 숨쉴 수 있다. 몸의 모빌리티가 아니고서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첨단 디지털의 무엇이 다가오는 미래 사회라 하더라도 우리는 걷고 또 걸어야만 한다. 운동 선수의 걸음이 아닌, 경쟁의 걸음이 아닌, 고독의 걸음을 말이다. 싯타르타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선포 이후에 홀로 걸어야 했을 것이다. 다리와 발과 발가락만 옮겨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옮겨지고, 마음이 옮겨진다. 40년 넘게 이동해왔다. 이제 또 어디로 걸음을 옮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