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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신선 Mar 15. 2024

고양이와 비둘기의 길

눈여겨보지 않는 '무엇'에 관한 단상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등 뒤에서 밀려왔다. 그것은 분명 사람'같은' 어떤 생명의 시선이라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휙, 뒤돌자 아니나 다를까 그 시선은 범과 호랑이의 조상, 고양이의 눈길이었다. 부엉이처럼 이름 모를 야옹이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쒹! 내쫓자 건물 담벼락에 있던 체조선수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가도로라는 건축물이 응달을 만들던 때 그 고가도로 아래는 "구구구-"거리는 생물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들에게 밥 주는 노인이 나타나는 아침이면 무리 지어 아스팔트로, 보도블록 위로 내려오곤 했다. 대체로 보랏빛, 회색빛, 어두운 색을 지녔던 그들은 학교 교실 옆에서 음산하고 음울한 소리를 내기도 하였고, 90년대 초반 고궁에 가면 산책 나온 이들이 튀밥을 던져주던 친근한 조류의 하나이기도 했다.


옛날에 골목마다 '도둑'고양이라 부르던, 근래에는 '길냥이'라 부르는 고양이들과, "먹이를 주지 마세요"의 대상이 되어, 문화재에 '새똥'이나 갈기는 유해한 존재처럼 되어버린 비둘기들을 보면, 어쩌면 그들은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물이자, 또 다른 우리들의 이면은 아닐까 한다.


여전히 길고양이들이 '도둑질'하는 것은 음식물쓰레기들이고, 비둘기들이 쪼아대는 것도 전봇대 옆의 노란 음식물봉투들이다. 그들은 구걸하며 존속하고 번식하며 경쟁한다. 때로 행인들로부터 몹쓸 짓을 당하거나 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재개발 예정지의 빈집들 위로 둘은 공생하듯 날고, 다닌다. 사족보행이거나, 비행체이거나, 털이거나 깃이거나 그들은 지구의 골목, 뒤편의 숨은 주인들이다. 어쩌다 길고양이들은 애처롭게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비둘기들 역시 딱히 여긴 이의 시선을 받아 둘은 사람들로부터 먹이를 받는다.  그러나 이는 무척 드문 일인 것이다.


누군가의 '애완'이거나 '반려'대상이 되어본 적 있는 동물들도 있을 것이지만 이들은 버림받음과 외면받음의 아이콘들일뿐이다. 새가슴을 안고는 바닥을 쪼아대다가  재빠르게 스치는 차량에 희생되고, 놀란 눈에 경직된 바람에 환한 불을 켜고 달려드는 자동차에 운을 달리하는 비둘기와 고양이들은 때로 보는 이들의 눈을 질끈 감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은 녹록지 않으며 위태롭고 위험천만한 야생의 본질을 지닌 곳이라는 것을 두 이물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고스란히 보여준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여 비둘기의 길과 고양이의 길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아닌 듯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두 발로 걷는 비둘기, 고양이처럼 존재를 이어가기도 하는 탓이다. 길고양이와 비둘기에게 보내는 무관심만큼이나 이들 사람들에게 보내는 인파의 무관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의 혈관을 나다니는 비둘기와 고양이는 비루스, 바이러스, 세균 취급을 받는 혈소판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어둠이 만든 상처로 빠져나가는 것을 응고시키기 위해 이 두 존재가 나서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대도 나도, 아마 셀러브리티, 셀럽과는, 유명인사와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스포트라이트 없는 곳에 야생의 눈으로도 옴니라이트를 비추는 존재가 있다. 그들은 이방인의 눈으로 오늘도 나를 마주한다.

길고양이와 비둘기만큼 우울하고 절망적인 생명 또한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 우울과 절망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인간의 유해한 봉지들을 두드린다. 그들이 터뜨린 쓰레기는 우리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존재에 먹이를 주는 이들이 있음이 판도라 상자에 끝까지 남아있던 그 '희망'이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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