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이야기의 뒷모습, 공포의 에로티즘
뜨거운 옛이야기의 이면에 자리한 성과 죽음
"엄마, 동굴에 뱀 들어간다! 미사일로 쏴버려!"
초등학교 6학년 동급생 친구들이 들려주던 '야한' 이야기의 엔딩 대사이다. '동굴'이 무엇이며, '뱀'이 무엇인지, '미사일'은 또한 무엇인지 독자 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2차 성징의 사춘기 즈음부터 우리는 '야한 세계'에 입성하게 된다. 자의거나 타의거나 여하간 그 야릇한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다. 포털사이트의 1면은 온통 '섹시함' 투성이다. 언론보도의 문구들은 야릇하기만 하다. 연예계의 셀러브리티 중에서도 여성 스타들이 나오는 보도는 낯 뜨거운 문장으로 가득하다. 아무리 보도사진이라지만 언론사 사진들은 '플레이보이'의 그것이나, '몰카'의 그것과도 어떤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야릇한 것에 눈길이 가고 귀가 쫑긋한 것인가? 과연 '섹시하다'는 것은 올바른 칭찬인가? 섹시함의 이면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우리의 오랜 옛이야기들 역시 지금 못지않게 야릇하고 야하다. 심지어 야함에 폭력성까지 함께 믹스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이야기들의 '야한' 면모 이면을 보면 무언가 심상치가 않다. 우선 이야기들부터 보자. 아, 잠깐. 이 글은 만 18세 이상만 읽으시기를 권한다. 본래 우리의 구전문학은 야하고 폭력적이다. 선정적인 면모도 보인다. 때문에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불편하기도 하다. 하여 조금은 '검열'을 하고 '삭제'한 부분도 있음을 감안하시기를 바란다. 그렇더라도 '성인'분들만 이 글을 읽어주시기를 권한다.
<대합에 놀란 까마귀>
넷날에 산골 가마구 하구 해벤 가마구하구 혼세를 무어서(혼사를 맺어서) 사둔이 됐드랬는데 해벤 가마구가 산골 사둔네 집이를 갔더니 산골 가마구는 사둔 왓다구 이 집 데 집 돌아다니멘 달갤을 많이 채다가 대접했다. 해벤 가마구는 달갤을 맛있게 먹구 집이루 돌아와서 산골 사둔이 오문 자기두 잘 대접해 주어야갔다 하구 있었다. 그러구 있넌데 마침 산골 가마구가 왔다. 해벤 가마구는 반가워 하멘 여기 더기 다니멘 대합 조개를 많이 잡아다가 산골 가마구한데 주었다. 산골 가마구는 조개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먹디 못하구 보구만 있더랬는데 조개가 입을 쩍 벌리기 시작해서 그때야 산골 가마구는 주뎅이를 대밯이 입이 벌어딘데 대구 칵 띡어 봤다. 대합은 깜짝 놀래여 입을 깍 물었다. 가마구는 주둥이를 뺄라두 뺄 수레 없어서 그냥 산골루 와서 팡구에다 퉁퉁 쪼아서 갸우 갸우 입을 뱄다. 그리군 어떤 집 재통 바주가리(변소를 가리기 위해 처놓은 울타리)에 올라앉아서 입을 닦구 있었다. 그러다가 그 집 체네레 재통에서 오좀을 싸는 것을보구 대합 조개가 입을 벌리구 있으느꺼니 아이쿠 해벤 대합조개 여기두 있다 하구 다라났다구 한다.
1938년 평안남도 채록, 임석재, <임석재전집>3, 평민사, 1988, 200~201면.
동물을 통해 육담을 전하고 있는 <대합에 놀란 까마귀>는 성을 대하는 사람의 일면을 잘 드러낸다. 실제의 까마귀가 저러한 반응을 보일리는 없는 것이다. 대합 조개가 상징하는 바와, 아직 '먹어본 적 없는' 까마귀. 그리고 입을 벌린 조개와 들이밀고 '먹어대는' 부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감각을 통해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처녀인데 배설행위를 하는 모습을 그리고 처녀의 생식기를 처음 본 까마귀가 놀라 달아났다는 반응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 반응을 조금 생각해보면 마냥 흥미진진한 육담으로 그치고 말 것은 아니다. 다른 이야기를 좀더 보자.
<여자와 게>
넷날에 어니 여자레 길을 가다가 오종이 매리워서 갈밭에서 오종을 싸구 있느라느꺼니 그 오종이 갈궈이에 구넝으루 술술 들어갔다. 더운 물이 들어오느꺼니 갈궈이는 무슨 일인가 하구 나와서 보느꺼니 여자에 공알이 있어서 갈궈이는 그걸 깍 물었다. 그러느꺼니 낸은 깜짝 놀래서 갈궈이레 공알을 물어서 아프대는 소리를 너머 급해서 공게 공게 하멘 과텠다. 그때 한 남자가 그곳으루 지내다가 낸이 과티는 소리를 듣구 구해 줄라구 거기 가서 입으루 궈이 발을 깍 물었다. 그랬더니 갈궈이는 다른 엄지발루 이 사람에 헷댁일 깍 물었다. 이 사람두 아파서 헤에헤에 하구 있었다구 한다.
1938년 평안북도 채록, 임석재, <임석재전집>2, 평민사, 1989, 208~209면
여기에서도 등장하는 것은 방뇨행위이다. 배설이라는 불쾌하면서도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화소. 오줌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 이론 대상이다. 불쾌하지만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그것. 이것이 탈은폐시키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
노상방뇨 중인 여성. 그 여인의 오줌은 게구멍으로 흘러들어간다. '뜨거운' 오줌물이 들이차니 놀란 게가 바깥으로 나온다. 나와보니 여성의 생식기가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있는 '그것'이 괘씸하여 게는 덥썩 집게로 문다. 여인의 신음은 야릇하기 그지없다. 여성이 내는 소리에 반응을 보이며 다가온 존재는 남성인데 이야기에 따라 중이 설정되기도 한다. 금욕생활을 해야 마땅한 종교인을 설화 속 캐릭터로 바꾸는 민중심리. 근데 이 남자가 여자를 구하려는 행위가 더욱 기괴하다. 게발을 물다니? 그러자 게는 남성의 혀를 집게로 콱 집는다. 남성도 고통에 신음하게 된다. 해당 육담은 전승형에서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남녀가 내뱉는 신음과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사건 속의 게와 게의 집게. 여기에는 조르주 바따유의 성적 개념인 에로티즘(영어로는 에로티시즘)의 필터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는데 이 작업은 잠시 미루어두고 다음 옛이야기를 보자.
보X 종류
치붙은 보X는 서서 하기 돟구, 내리붙은 보X는 뒤루 하기 돟구, 민펭한 보X는 앉아 헤야 맛이 나구, 털복숭아 보X는 바루 해야 신이 나구, 뚜껑보X는 어드르카문 돟은구 하문, 뚜껑보X를 첨 하넌 사람은 그 네자레 고네루 알구 당황하는 법인데 그런 보X를 만났을 때는 배꼽을 꼬옥 눌르문 뚜껑이 발랑 제께데서 나온다.
1932년 평안북도 채록, 임석재, <임석재전집>2, 평민사, 1989, 244면
우리 민중설화에는 남녀의 생식기에 대한 '거침없는' 이야기들이 상당하다. 지금 여기에는 X로 검열처리를 해두었지만 채록본에는 있는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성행위, 섹스에 대한 민중의, 특히 남성중심적인, 다분히 남성시각에서의 의식이 깃들어 있는데, 여성 전승자에 의한 남성생식기의 이야기도 다르지는 않다.
<변강쇠전>의 대목처럼, 판소리 사설처럼, 요즘의 힙합 랩 못지않은 라임과 플로우가 그야말로 에로틱하다!
달래나보지 강
넷날에 뉘레 친덩에 왔다가 시집으루 돌아가넌데 오래비레 데불구 갔다. 가다가 큰 강이 있어서 강이 깊어서 오뉘레 옷을 벗구서 건넜다. 오래비는 앞에 가넌 뉘에 벗은 몸을 보구 이상한 맘이 동했다. 오래비는 이거 안되갔다 하구서 자기으 그거를 돌루 탕 테서 피를 흘리구 죽었다. 뉘는 강을 건느구서 오래비 오넌 거를 볼라구 뒤돌아보느꺼니 오래비레 그렇게 돼서 아이구 달래나보디나 한마디 하멘 울었다. 그 후보탄 이 강을 달래나보디 강이라구 부르게 됐다구 한다.
1932년 평안북도 채록, 임석재, <임석재전집>2, 평민사, 1989, 327면
앞서의 이야기가 다분히 성적 흥분, 유쾌한 육담에 그치고 마는 것이라면 한국 전역, 특히 특정한 강을 두고 전해지는 위 육담은 지리적 근거물을 갖는 전설이다. 달래강, 달래고개 등의 지명 유래담으로 활용되거나 하는 달래나보지 설화는 전국 규모의 광포설화이다. 여기에는 앞서 미루었던 바따이유의 에로티즘이 제대로 나타난다. 바따이유는 짐승들의, 타생물군의 성교와 달리 인간의 성행위는 번식을 벗어난 것으로 확장되는데 그 이면에 '죽음'과 '죽음충동'이 자리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발견해내었다. 여기서 남동생은 근친금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대체로 이야기의 배경으로 설정되는 지형에는 언덕고개나 강이 나온다. 기후적 배경으로는 반드시 비가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비로 인해 흠뻑 젖은 친누이와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성적감각에 휩싸인 친남동생. 해당 전설은 근친금기를 말그대로 '목숨걸고' 지키고 수호한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는 인류의 성교와 혼인의 과정에서 근친금기가 자리하는 '역사'의 조각도 전설의 흔적처럼 남았다.
<처녀 병 고치기>
넷날에 소곰당시 하나이 소곰 팔레 어니 산골에 갔넌데 가느꺼니 넝감 노친네레 밭에서 김을 매구 있었다. 이 넝감 노친네레 소곰당시를 보더니만 “여보시 소곰당시 더기 데 우리 집에는 지금 가야 아무가이두 없구 우리 딸밖에 없으느꺼니 그집에 들어가디 말거나” 하구 말했다. 소곰당시는 예예 대답하구 갔넌데 이 소곰당시레 그 집에 체네 함자 있다넌 말에 구미가 당게서 제창(곧장) 그 집이루 찾아갔다. “쥔 있소?” 하느꺼니 체네레 나와서 아무가이두 없이요 했다. 그런데 이 소곰당시는 소곰짐을 벗어 놓구 집안으루 들어가서 “너 외삼춘 몰라 보네? 나 너에 외삼춘이다”구 했다. 그러느꺼니 체네레 예 외삼춘 오시오 하멘 반가와하멘 방안으루 들어가라구 했다. 이 너석은 방에 들어가서 “이자 내레 오다가 너에 아바지 오마니를 만났넌데 너에 아바지 오마니는 밭에서 김을 매멘서 맨제 들어가 있이라구 해서 내레 맨제 왔다” 이러구 말하구서 한참 체네를 테다보더니 “너 무순 병이 있구나” 하구 말했다. 체네는 아무 병두 없다구 하느꺼니 “너 모르는 소리. 너 밥 많이 먹으문 배가 담뿍 불르디?” “예 담뿍 불러요” “그리구 고개를 올라가문 숨이 차디 않든?” “예 숨이 차요” “또 해를 보문 눈이 쐬리쐬리 하디 않든?” “예 쐬리쐬리해요” “그거 봐라 그게 다 큰 병이 들어서 그렇다. 네 속에 고롬이 담뿍 들어서 그러는 거야. 내 그 고롬을 다 빼서 고테 주어야갔다. 그런데 침을 놔서 고테야 하갓넌데 동침을 맞갔네 가죽침을 맞갔네. 동침을 맞이문 아푸구 가죽침은 아프디 않다. 어니거 맞갔네?” 이렇게 말하느꺼니 체네레 가죽침을 맞갔다구 했다. 고롬 너 수건으루 눈을 가ㄹ우구 반뜨시 누어 있거라 하구서 체네가 하라는 대루 누우느꺼니 소곰당시는 체네 초매 끈을 풀구 바디를 버끼구 가죽침을 한 대 놔 주군 닐라서 어드레 속이 시언하디 하구 물었다. 체네는 예 시언해요. 체네는 조와라 하구 종지달을 잡아서 니팝을 해서 잘 대접했다. 소곰당시는 달고기에 니팝에 잘 대접받구선 기운이 동하느꺼니 “네레 이같이 외삼춘을 잘 대접했으느꺼니 침 한 대 더 놔 주갔다” 하구선 또 한 대 놔줬다. 그리군 종바리를 개오라구 하구선 거기서 나온 쌔한 국물을 종바리에 다 씰어 담아서 주멘 “오늘은 바빠서 너에 아바지 오마니 올 때까지 기두루구 있을 수 없어 난 가갔다. 좀 있다가 아바지 오마니 오거던 이걸 상에 놔서 들이라” 그러구 갔다. 이즉만 해서 아바지 오마니가 오느꺼니 체네는 외삼춘이 와서 가죽침을 놔서 병을 고테 주구 아바지한데 대접할 반찬이라구 이걸 주구 갔다구 하멘 종바리에 들은 국뭉르 내놨다. 아바지는 딸에 말을 듣구 또 종바리에 들은 국물을 보구 “에잇! 고놈에 쌔끼 가디 말라구 했넌데 기예(기어이)와서 우리 딸을” 하멘 씹했네 소리는 입안에서만 중얼대기만 했다구 한다.
1927년 평안북도 채록, 임석재, <임석재전집>2, 평민사, 1989, 247~248면
<음남 음녀 버릇 고치다>
넷날에 한 낸이 있더랬넌데 이 낸은 서방질을 난당으루(거침없이) 하드랬넌데 밤이 돼서 샛서방이 울타리 박에서 “팽댕그르” 하멘 이 낸은 그 소리를 듣구 껭(변소) 낭간에 가넌 테 하구 밖으루 나와서 울타리 터딘 구넝으루 엉댕이를 내밀구 밖에 있넌 곤남준이(샛서방, 間夫)하구 재미를 보군 했다. 이러구 지내는데 하루는 어드런 사람이 글루루 지나가다가 이런 꼴을 보구 이런 못된 넌놈 봐라 하구 결이 나서 그 담날 그 시각보다 좀 이르게 글루루 가서 ‘팽댕그르’ 하구 소리했다. 그러느꺼니 낸이 이 소리를 듣구 얼런 뛔나와서 오늘은 일쯔가니 오셨수다레 하멘 앵둥이를 내밀었다. 이 사람은 개지구 있던 몽둥이루 낸에 볼기짝을 세과데 내리텠다. 낸은 난데없는 매를 맞구서 앞으루 꼬꾸라뎄넌데두 본서나가 알아가봐서 아뭇쏘리두 못하구 근낭 집안으루 기어들어갔다. 고담에 좀 지나서 곤남지니레 와서 팽댕그르 했다. 울타리 안에 허연 앵둥이레 보이느꺼니 이 녀석은 빳빳한 X을 울타리 구넝으루 딜이밀었다. 살작 미끈하게 들어갈 줄 알았넌데 난데없이 무슨 손이 나와서 좆을 꽉 웅궤쥐구 “이넘! 이따위 짓 어니 때부텀 했네 이넘 죽어봐라!” 하멘 과티멘 X을 잡아뺄라구 했다. 그러느꺼니 그 곤남진이레 혼이나서 다시는 이런 짓 안캈소 한번만 용사하시오 하멘 빌었다. 이 사람은 다딤을 딴딴히 받구서 가라했다구 한다.
1935년 평안북도 채록, 임석재, <임석재전집>2, 평민사, 1989, 263~264면
옛이야기 세계에서 '소금장수'는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고 수행한다. 늦은밤 지나가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주막 여주인이나 자매 등을 '범하는' 욕정가득한 남성으로 그려지며 이들 서사 속 여인들은 어떠한 저항이나 머뭇거림없이 소금장수와 '합일'을 이룬다. 위 이야기는 부모의 동의를 얻는 혼사담이 아니다. 요즘으로보면 성범죄에 해당할 사례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남녀의 욕정에 관한 민중의 상상이 위치한다는 점에서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한다.
우리네 육담에는 음남 음녀를 '혼꾸녕'내는 것들도 적지 않다. <사랑과 전쟁> 혹은 이혼, 간음, 바람을 소재로 하는 오늘날의 미디어 소재는 옛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성에 대한 민중의 윤리관이 위 이야기에 버릇고치기 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성은 잘못 다루면 '병'(신체적/정신적)이 되거나 '몹쓸버릇'이 되어 주변에 파장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성, 섹스에 대해-바따유의 에로티즘을 모르는-우리 민중들이 전하는 육담각편에는 선인들의 지혜와 정서가 담겨있다. 여전히 게는 남녀를 물고, 남동생은 죽으며, 음탕한 이들은 망신과 함께 혼쭐이 나고만다.
훠이, 훠이 애들은 가라! 이것은 '으른'들의 으르렁거리는 이야기가 나니~ 엣헴! 가만 근데 이건 무슨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