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승
손자병법에서 부전승을 최고의 승리라고 말한다. 부전승은 말그대로 직접적인 전쟁과 전투를 하지 않고 승리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전쟁을 하면 비록 이기더라도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타격을 입게 된다. 그래서 피해가 전혀 없는 부전승을 할 수 있도록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서 전쟁을 피하도록 추천한다. 올림픽과 같은 운동 경기에서 인원수가 맞지 않을 때, 조추첨을 통해서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부전승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면 그만큼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주도 세 아이들의 치열한 경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큰 아들은 학교 숙제가 있어서 집에서 숙제를 한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학생이 집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말에 아빠는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건데...'
아빠는 속에 있는 말을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하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딸도 컨디션이 별로 안좋아서 집에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 만약 막내 아들도 집에서 쉬고 싶다고 말하면, 아빠 혼자서 동네 한바퀴를 뛰려고 했다. 하지만 막내 아들은 이번에도 아빠와 단 둘이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막둥이는 궂은 날씨와 가족들이 시간이 맞지 않았던 날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달리기 훈련에 빠지지 않았다. (막둥이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다.)
아빠와 막내 아들은 학교 운동장에 도착해서 천천히 트랙을 2바퀴 달리면서 몸을 풀었다. 400m를 달리기를 하기 전에 막내가 아빠에게 물었다.
"400m를 10분에 천천히 뛰어도 상금 $2를 받을 수 있어?"
형과 누나가 달리기 시합에 참여하지 않고 기권했기 때문에 막내는 천천히 달려도 부전승으로 1등 상금을 받게 되었다. 시합을 하기 전부터 결과는 정해졌다. 아빠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런게 부전승이야. 상대방이 기권을 하면 자동으로 이기는 상황이야"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에 천천히 달릴거라는 막내의 말을 듣고 아빠는 수긍하면서 '오늘은 천천히 조깅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출발선에서 달리기 시작했을 때, 막내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뛰었다. 아빠는 기록 갱신에 도전하며 열심히 달릴 것인지, 아니면 막내 아들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옆에서 달릴지 잠깐 고민을 했다.
5주 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큰 아들과 딸이 집에 있고 아빠와 막내 아들 둘이 달리기 훈련을 하면서 400m 달리기 시합을 했다. 그날도 아빠는 혼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한참 후에(29초 후에) 막둥이가 뒤이어서 결승선에 도착했다. 그날 막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막내 옆에서 속도를 맞춰 달리는 것으로 선택했다.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막내가 설렁설렁 뛰지 않았다. 아빠가 보기에는 막내가 최선을 다해서 뛰는것 같았다. 결승선에 도착해서 기록을 보니 1분 44초였다. 기록을 갱신하지는 못했지만, 본인 최고 기록과 비슷한 속도로 열심히 뛰었다.
1분 44초에 들어왔다고 아빠가 막내에게 알려주었을 때, 막내는 조금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아빠와 비슷하게 달려서 더 빨리 들어온 줄 알았어."
막내는 아빠가 평소처럼 달렸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아빠와 나란히 달렸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을까 기대를 했다.
만약 아빠가 조금 앞에서 달렸다면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더 충실하게 할 수 있었을것 같다. 막둥이를 너무 배려하느라 옆에서 나란히 뛰어서, 막내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것 같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400m를 뛰었다. 이번에는 아빠가 10~15m 정도 앞에서 뛰었다. 하지만 막내는 이미 힘이 빠진 상태여서 1분 48초에 결승선에 도착했다.
아빠는 바로 이어서 혼자 400m 달리기를 했다. 마음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몸은 더디게 움직였다. 적당한 속도로 400m를 두번 뛰면서 몸을 충분하게 풀었기 때문에 시간을 단축시킬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1분 25초에 결승선에 도착했다.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달렸던것 같다. 빨리 달리는게 참 쉽지 않다.
부전승으로 쉽게 1등을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막둥이가 많이 컸다고 아빠는 생각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하면 조금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래서 경쟁 상대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할 수도 있지만, 어제의 나 자신과 경쟁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성장을 한다면 1년이 지났을 때,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