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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May 29. 2024

인터스텔라

영화와 함께

인터스텔라가 개봉한지 벌써 십 년이나 되었네. 얼마 전 영화 주인공 머피같은 나의 초등학생 딸아이랑 같이 앉아 이걸 보다가 큰 울림이 있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영화 주제에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깊이 공감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프로그래밍 된 생존본능조차 거스르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무엇,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의심없이 서로를 완전히 믿도록 이끄는, 중력조차 거스를 강력한 힘을 가진 유일한 가치는 아마도 사랑이다.


왜 생존본능과 진화의 상관관계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사랑의 가치는 그저 감성적일 뿐이라 생각할까? 타고난 생존본능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혁신하고 발전하도록 해온 힘이라면, 그조차 거스르도록 만드는 사랑이라는 강력한 힘의 목소리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 어쩌면 더욱 과학적이지 않을까? 나는 이 질문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라 생각한다. 극중에서 NASA의 브랜트 박사가 머피 아빠 쿠퍼를 만나 제안한 플랜 A와 플랜 B는 사랑과 생존본능이라는 두 가치를 대변한다. A는 지구에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우주정거장으로 옮기는 것이고, 플랜 B는 수정란을 행성으로 보내 인류를 재건하는 계획이다. 브랜트 박사는 그 자신이 플랜 A의 실현가능성을 애초에 밝혀내지 못했다. 그는 사랑의 존재나 힘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딸까지 속여 자신이 생각하는 인류를 위한 대의를 실현하겠다는 목적으로 언제 살아돌아올 지 조차 알 수 없는 우주 한복판에 그녀를 보낸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위대한 무엇인가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이와의 끈끈한 연대, 아주 사소한 추억들보다 특별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 연대감과 추억이 결과적으로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머나먼 곳에 도달하도록 돕는 엄청난 동력이 되어준다면 말이다.


우연히 NASA를 찾아가게 된 아빠 쿠퍼와 머피처럼,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누군가를 인연인듯 만나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가고, 계획에 없던 삶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본다. 우리 삶에서는 도무지 해석하기 어려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걸 경쟁과 승리, 개인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 만 박사가 떨어진 황무지같은 행성의 모습일테다. 반대로 사랑을 믿고, 에드워드를 기다리는 에밀리아나 쿠퍼를 기다리는 머피가 자기 앞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필연적 메세지로 해석할 때, 우린 희망과 기대가 꺾이지 않은 채로 좀 더 오랜 시간 외롭지 않은 항해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존본능이 삶의 동력인 사람도 있고, 사랑이 우선인 사람도 있다. 그래도 사랑을 믿는 감독의 영화였다. 그는 자신의 형제와 마음을 모아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


내 딸에게도 언젠가 동생과의 대화, 어떤 풍경, 음악, 향기와 맛이 우리가 함께 지나온 추억을 소환해 멀리 떠나온 시공간을 이어줄 매개체가 되어줄 수 있을까? 상실의 시간이 오더라도 그걸 사탕처럼 꺼내먹으며 너무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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