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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피 Sep 30. 2024

별 보러 가자

뮤지컬 - 시데레우스

나는 별을 좋아한다. 어릴 적 수많은 꿈들 중 나는 우주비행사, 천문학자 꿈꿔왔다. 이들은 누구보다 별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과로 진학했고 그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어렵고 범람하는 공부량은 금세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별은 나에게 크고 다른 의미를 가져다준다. 맑은 밤하늘에 내가 아는 별자리들을 찾을 때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해외를 여행 갈 때에 항상 항구 도시를 찾는 이유도 맑은 하늘에서 별을 보기 위함이 포함되는 것 같다.


천문학에 종사하는 분들은 연구결과나 보고서만 봐도 남다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보이저호 탐사선을 지구 방향으로 돌려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 칼 세이건은 수많은 반대 의견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보낸 우리의 우주선이 우리가 어떻게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설득하는 문장조차 별처럼 아름다웠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이렇게 덧붙였다.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바로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 종교,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모든 도덕 선생님들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인기 연예인들이,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알게 되며 나는 더 이상 천문학은 이과에 포함될 수 없다고 느꼈다. 이과, 문과, 천문학 3가지로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기에,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우주를 연구했던 학자는 수도 없이 많다. 그중 이과생들에겐 상수, 망원경으로 유명한 케플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작품이 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시데레우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자필 서적이다. 전체 이름은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라틴어로 ‘별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때는 천동설이 만연하던 16세기, 케플러는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집필한 서적 ‘우주의 신비’를 들고 여러 학자와 교수들을 찾아가 동반연구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시도들은 다 외면받고 그의 요청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도 닫게 된다. 우주의 모든 것이 완벽한 원형을 이룬다는 ‘우주의 신비’를 보고 입증할 증거가 없어 거절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입증하기 위해 케플러와 연구를 도와 같이 진행하게 된다. 거듭된 연구 속에 어느 날 그는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망원경을 접하게 된다. 멀리 있는 사물을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신비한 장난감을 케플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별을 들여다보기 위해 개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개조한 망원경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하고 지동설을 입증하게 된다. 입증한 지동설을 집필한 서적이 바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이다.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실화에 기반하여 각색된 창작 뮤지컬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점, 케플러와 그가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 점 등 여러 사실이 보였지만 그들의 동반 연구만큼은 창작이다.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가 서로 동반 연구의 결과물이라면?이라는 상상에서 창작되었기에 그 과정에서는 사실과 달리 각색된 장면들이 많다.

시데레우스의 무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들이 별을 찾는 과정, 연구하는 과정의 연출을 잘 나타냈다. 특히 망원경이 열리며 별을 찾아낸 연출은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가 마냥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다. 천동설을 확정적으로 믿고 있는 시대상에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실제로도 종교재판을 받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지구는 돈다고 말했던 사람 코페르니쿠스의 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에 큰 힘을 실었고, 재판장에 나가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에서 갈릴레오의 딸은 이렇게 말한다. ‘그저 인정 한 번이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 대체 왜, 무엇이 변한다고 목숨을 걸어야 하나요’ 하지만 갈릴레오는 ‘인정해도 그렇다 해도 망원경으로 하늘을 바라보기 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과학자들은 이 세상의 진실을 알기 위해 목숨을 걸며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썼다. 우리가 지금까지 편히 살아오며 여러 흥미와 취미를 가지는 것은 다 그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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