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 아빠."
딸이 동생이 사고를 쳤다고 알려준다. 세 번이나 부르면 뭔가 일이 생긴 거다. 베란다 화분을 깨뜨렸단다. 아들은 감자를 캐고 싶었다고 한다. 문제는, 베란다에 감자는 없다. 그런데 아들은 언젠가부터 화분 속 돌멩이를 감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화분을 깨뜨려 긴장한 듯 보이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안 다쳤어? 괜찮아? 그럼 됐어. 우리 아이가 안 다친 게 제일 중요해. 이건 치우면 돼."
그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식탁 위에 있던 고추장 병을 깨뜨렸던 누나와, 그 상황에 덩달아 긴장했던 내가 있었다. 그리고 불호령을 내리던 아버지도 있었다. 깨진 유리병 파편에 발에서 피가 나는 아이와 소중했던 고추장 사이에서, 아버지는 고추장의 편을 들었다.
그 기억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다행히 그 기억이 나에게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같은 부정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아이에게 그런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기억 덕분에 나는 이런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화분을 깨뜨린 아들에게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했다. 화분을 치우고 있는데도 아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빠, 이건 돌멩이가 아니라 감자야."
"아빠, 나 어제 이런 책 읽었어."
"아빠, 나 오늘 이거 하고 싶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계속 내 옆에 있었다. 아이가 미안했나 싶었다. 아니면 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화를 냈던 적이 있던가? 그랬기에 아이가 그 순간을 무마하려고 다른 말을 계속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아이에게 말했다.
"아들, 깨진 화분은 정말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실수잖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아빠는 아들이 다치지 않아서 정말 고마워. 그러니까 누나랑 가서 놀아도 돼. 아빠가 다 치우고 갈게."
그렇게 말하자, 아이는 누나 곁으로 가서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