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2장 : 그렇게 아빠가 되어갑니다.

by 더블와이파파

어린 시절, 나는 참 내성적인 아이였다. 원래 타고난 성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강압적인 가정환경의 영향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표현이 서툴렀다. 학창 시절에도 손들어 발표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교실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선생님의 질문이 내게 향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가끔 아는 질문이 나올 때면 선생님이 나를 불러주기를 기대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을 선생님이 알아줄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다른 친구들이 칭찬받고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도 없는 박수를 치는 아이였다.


이런 내 성향을 닮아서일까. 첫째 딸도 표현이 서툴다. 주말 동안 딸의 사촌 동생이 우리 집에 왔던 적이 있었다. 딸에게는 친동생이 있지만 네 살 터울이라 함께 놀기엔 조금 거리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반면 사촌 동생은 또래라 그런지 딸은 사촌과 신이 나서 놀았다. 그러는 동안 친동생과는 거의 놀지 않았다. 물론 딸에게 그런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헤어질 시간이 되면 딸은 어김없이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다. 떠나보내기 싫고, 계속 놀고 싶다는 마음을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어제 그려놓은 그림이 없어졌어. 그거 찾을 때까지 동생이 가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순간 아이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어제 그림은 네가 정리를 안 해서 찾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잘 정리해 둬야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그림을 찾는다 해도 딸은 또 다른 핑계를 대었을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말을 아끼고, 아이가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기로 했다.


결국, 나는 조금 조급했다. 사촌 동생을 떠나보내야 했고, 울음 섞인 소란 끝에 강제 이별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동생이 떠난 뒤, 딸은 다시 친동생과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와서 놀아달라고, 안아달라고 했다. 그 순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던 내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내 내성적인 기질이 딸에게도 닮아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표현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같다. 표현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가 형성된다. 나는 이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나 자신을 바꾸고 싶다. 누군가가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 그건 내가 먼저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표현을 잘하는 사람. 그래서 더 잘 소통하고, 더 따뜻한 관계를 맺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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