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챌린 Oct 31. 2024

불경기

22. 너도 나도 힘들어 죽겠네

불경기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었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은 어느 정도 유지 혹은 상승장으로 서서히 돌아서는 분위기였지만, 지방은 타격이 컸다. 원하는 가격에 팔리지 않는 물건들은 급매로 시세보다 많이 싸게 내놓아야 겨우 집을 보러 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사려는 사람이 있어야 팔 수 있는데, 지방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지방에서는 재테크용 부동산보다는 실 거주를 위한 아파트, 즉 주변에 녹지와 공원이 많고, 주요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초등학교를 품은 대단지 신축 아파트들 위주로만 겨우 거래가 되는 분위기였다. 


대출이자도 올랐다. 빌린 돈이 적은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대명씨는 꽤나 큰돈을 은행에서 빌려서 건물을 샀기 때문에 월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이자 상승은 큰 영향을 미쳤다. 0.01%의 이자 상승뿐이라도, 여러 개의 대출이 모여 이자 납입액은 스노우볼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나가는 생활비와 은행 대출 이자보다 월급과 월세의 합, 한 두 건식 팔리는 지방 부동산 양도차익으로 이익이 조금씩 더 많아졌다. 


덕분에 무리를 해서 유티드 도넛이 들어온 북촌 건물 주변에 자그마한 현대식 건물을 하나 더 매수했다. 이번에는 기존부터 한 회사가 사무실로 쓰고 있는 건물이었다. 현 시세보다 월세 가격이 많이 저렴했지만 10년, 20년 뒤 팔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불어나는 이자가 부담스러웠지만 가지고 있던 지방 아파트와 주택, 오피스텔과 분양권을  계속 팔고 일부 대출을 갚으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애증의 원룸건물까지 매매가 된다면 이제는 강의 남쪽으로 건물을 하나 사고 싶었다. 주택에 대한 재산세, 종부세 등이 너무 커졌고, 지방 부동산 가격이 계속 하락했기 때문에 얼른 처분하고 서울에 자산을 모아 두려는 생각이었다. 


인아씨는 아이들과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사고 싶었다. 서울 아파트값은 다시 한번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잠시 주춤했을 때 얼른 한 채 사서, 서울에 내 소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우리 이번에는 집 사면 안 되는 거야?”


“나도 사고 싶지. 근데 여기는 정말 비싼 거 알지. 마음에 드는 집 보면 건물 한 채 값일걸? 그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든 사업을 하든 하면 매월 들어오는 수익을 만들 수 있는데……. 당신 마음 아는데, 나도 강남에 내 집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부동산 가격도 많이 떨어졌고, 우리가 가진 것 팔고 이 동네에 집 사면, 그러면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매년 세금으로 나가는 돈만 해도 엄청난 거 알지? 그래서 현금도 일부 가지고 있어야 되고.


건물주가 되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아니 적어도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아도 된다고 믿었던 인아씨였는데 부동산 불경기에, 잘 먹고 잘 살려고 자리한 곳이 서울, 그것도 강남이었으니 아직 먹고살 걱정, 내 집 걱정을 하긴 해야 했다. 


투자한 건 몇 번 안 되지만 인아씨의 경매도 이제는 낙찰예상가가 시세와 별 차이가 없어져서 투자 메리트가 크지 않았고, 건물을 산 이후로는 번거로운 경매 투자에 대한 인아씨 마음도 떠나 있었기에 대명 씨 이야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 회사 퇴직할 때 먹고살 걱정은 없다고 했잖아.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했잖아. 칫!


“요즘은 부동산 투자로 예전처럼 돈 벌 수 있는 시기가 아니야. 나도 답답해.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 분위기야 나도 알지. 그래도 그냥 사람이라는 게 그렇잖아. 내 집에 사는 것과 남의 집에 사는 것 그 둘이 얼마나 다른지. 누구나 다 자기 집에 살고 싶잖아. 집을 꾸미거나 가구 같은 물건을 사는 것도 그냥 계속 뒤로 미루고 대충 살게 되는 것 같고...”


“내놓은 집들이 안 팔려. 1억씩 떨어진 곳도 있는데 너무 안 팔리네.”


“알겠어. 알겠다고.”



역전세로 고생 중입니다. 이번에 임차인이 나가는데 새로 들어올 사람 전세시세가 완전 바닥이라 제가 메꿔줘야 할 돈이 8천이네요. 화장실도 수리해 달라고 하고, 도배도 해달라고 하고, 중개비도 내야 되는데 1억 들어갈 것 같아요. 근데 가진 돈으로는 당장 부족하고, 새 임차인 날짜 맞추기 빠듯하네요


30대 초반 영끌족입니다. 실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한채. 선 투자 후 갈아타기 목적으로 투자한 집은 대출 많이 받았는데 지금 kb 시세는 많이 떨어졌어요. 금리는 두 배 가까이 오르고. 흑흑. 맞벌이 월급 받아서 대출 갚고 생활비 아껴가며 겨우 지내고 있습니다. 금리인하 언제 될까요?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도 연일 비슷한 이야기들이 올라왔다. 


서울에 건물을 사면, 서울 건물주가 되면 다 해결될 것 같던, 그래서 자연스레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으로의 생활은 아직 누리지 못했다. 건물주라는 꿈을 이루기는 했지만 건물주가 되어 누리고 싶었던 여유로운 삶은 대출 없는 건물주에게나 가능한 것일까? 


대명씨 역시 생각지 못한 이자 상승에 사실은 마음이 조급했다.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침착하려고 애쓰고 있었을 뿐. 건물을 산 건 잘한 게 맞다. 다만 유지를 위해서 어서 지방의 물건들을 팔아야 했고, 생기는 현금으로 대출도 갚고, 부동산 외에 재테크도 다시 고려해야 했다. 이만하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인생 호락호락하게 보면 안 되는 거였구나 깨닫는 중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불경기여도 대명씨는 언제나처럼 가족들이 잠든 야밤에 부동산 업무를 시작했다.  지방 부동산 분위기 파악을 위해 카페나 블로그 글도 찾아보고, 그 지역 투자자들이 남긴 글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대명씨가 투자한 물건들 근처로 최근 거래된 내역이 있나, 시세는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물론, 세입자가 나갈 날짜가 언제인지 미리 다시 한번 점검해서 매매가 안되면 다른 전세 세입자를 맞춰야 했으니, 부동산 중개사무소들에 미리 안부를 묻고 물건을 의뢰하는 예약문자도 보내 놓았다. 


드르르륵,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야밤에 누구지?’


-달밤에체조, 나 전세 세입자 입주 날짜랑 나가는 사람 날짜랑 일주일 정도 차이가 나는데 돈이 약간 부족하거든. 진짜 진짜 딱 일주일만 빌려줄 수 있을까? 나도 고민 많이 하다가 어렵게 부탁하는 거야. 친구끼리는 돈 거래하는 거 아닌데 진짜 미안하지만 그 정도로 너무 급해서. ㅜㅜ 일주일만 빌려주면 내가 3% 이자 쳐줄게. 


‘뭐야 뜬금없이. 돈을 빌려달라고?’


대명씨와 지방 임장을 같이 다니면서 친해진 동갑내기 부동산 투자자였다. 직업은 변호사. 그래서 온라인상 별명도 호사였다. 변호사의 ‘호사’이자, ‘호사스러운 생활’할 때의 그 ‘호사’. 대형로펌 변호사는 아니고 스타트업 법무팀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였다.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면 자주 보는 사람들끼리는 지금까지 어디에 어떻게 얼마를 투자했는지, 매월 소득이 얼만지 대충 알 수밖에 없는데,  월급도 빵빵하고 대명씨 못지않게 투자를 잘 해온 친구였기에 의아하긴 했다.  


-뭐야. 그렇게 급해? 얼마나 필요한데?


-돈 좀 있어? 살았다!!!! 나 6천 정도 필요해. 진짜 미안. 세입자 이사 나가고 들어오는 날짜가 이렇게 어긋날 줄 모르고 자금 운용을 너무 빠듯하게 계획해 놨어. 세입자 들어오면서 잔금 받으면 바로 갚을게. 이자는 3%라고 했으니 180만 원도 같이 보내겠음.


-뭐야, 일주일에 그런 고금리를 준다고? 이자는 됐고, 일주일 뒤에 바로 줄 수 있는 거야?


-잔금 받으면 바로 줘야지. 당연하지. 여기 내 집 전세계약서 보낸다. 봐봐.


메시지를 주고받다 답답해진 대명 씨는 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한 번도 돈 빌려주고 그런 적 없는데, 너니까 특별히 빌려준다. 잔금날 오전에 바로 갚아."


"오! 달밤에 체조! 니가 날 살렸다. 진짜 진짜 고마워! 그리고 확실하게 이자는 줄게. 그래야 너한테 면목이 서지.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진짜 니가 날 살렸어. 너무 고마워.


돈거래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요즘 부동산 시장 사정을 뻔히 잘 알기에, 기간이 일주일이었기에, 그리고  자기도 그런 일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럴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 6천을 호사의 통장으로 송금했다. 당연히 그런 일은 없게 해야겠지만.


정확히 일주일 뒤, 대명씨 통장에는 6천2백만 원이 들어왔다.


- 야 너 이자 됐다니까. 그리고 3%면 180인데 왜 200 보냈어?


- 네가 나 살렸잖아. 누가 알았겠어 내가 꼴랑 6천만원 없어서 얼마나 죽을 맛이었는지. 얘들이랑 한우라도 사먹어. 돈 거래는 역시 찜찜할 수 밖에 없는 건데 그래서 다른 사람 아니고 너한테 말한 거야. 내가 변호사 선후배도 있고, 가족들도 있는데 그래도 네가 제일 믿을 만하고 확실한 사람이더라고. 내 사정 이해하고 돈 얘기 꺼낼 수 있는. 암튼 기꺼이 도와줘서 괜히 더 미안하고 정말 정말 고마웠어.


-그렇게까지 신경 쓰고, 나도 고맙네. 다행히 여유자금 현금으로 가지고 있던 게 있었어. 곧 세금 내야 하거든.

 

-그러네 또 그런 시즌이 왔네. 암튼 니 덕분에 나도 숨통이 트였고, 세입자 잘 들어왔어. 진짜 고맙다!


‘정말 어렵긴 어려운 시절인가 보다. 호사까지 저 정도로 역전세 때문에 고생하면, 나도 몸을 좀 사려야겠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돈을 빌려주고 일주일 정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던 대명씨였다. 아무리 친하게 지낸다 해도 친구끼리는 돈 거래하면 안 된다는 건 세상의 진리인데 6천만 원이라는 돈을 빌려주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도 돈을 떼먹고 나를 사람도 아니고 변호사에다 직장도 확실한데 의심을 하려야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성격이나 투자 성향도 대명씨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이라  리스크가 큰 투자는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끝낼 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대명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서. 앞으로도 편하게 얼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이전 21화 유명한 임차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