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임신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남편의 본격적인 가사 전담이 시작되어야 한다. 임신 기간 동안 아내는 본인과 태아의 건강을 위해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안정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아내의 가사 부담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보통 가사는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 장보기, 쓰레기 버리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청소의 경우는 방 청소, 욕실 청소, 거실 청소, 부엌 청소, 가구 청소 등으로, 빨래는 세탁, 건조, 빨래 개기와 옷장 정리 등으로, 요리는 밥 짓기, 반찬 만들기, 간식 만들기 등으로, 설거지는 그릇 세척, 제자리 정리 등으로, 장보기는 음식재료 장보기, 일상용품 장보기로, 쓰레기 버리기는 음식물 쓰레기, 일반쓰레기, 재활용쓰레기 버리기로 세분화할 수 있다. 요즘에는 이러한 가사들이 청소는 로봇청소기, 설거지는 식기세척기,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 요리는 배달 음식과 레토르트식품, 장보기는 쇼핑 앱 이용을 통해 이전보다 사람의 노동과 시간 투입이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가사들을 편하게 해주는 각종 가전제품들과 대행 서비스들의 이용 여부는 가정마다 다를 수 있지만 여건과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임신 시기와는 상대도 안 되게 늘어나는 출산 후 가사를 생각한다면 임신 시기부터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임신 시기부터 가사는 남편이 전담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말은 실제 모든 가사를 전적으로 남편이 해야 한다라기보다는 가사는 남편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가사에 적극 참여하라는 의미이다. 물론 모든 가사를 남편이 수행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한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내의 가사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본인이 가사를 담당한다는 마인드 정립이 필요하다. 임신을 했다고 해서 아내가 모든 가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남편이 일하는 것을 바라만 보지는 않기 때문에 남편이 모든 가사를 담당한다는 마인드로 집안일을 한다면 그 과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배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앞서 얘기한 가사 중에 남편은 어떤 일들을 전담하는 것이 적절할까? 내 경험으로는 한 번에 몰아서 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더러운 것들을 처리해야 되는 일인 청소와 쓰레기 버리기는 모두 남편이 전담해서 하고, 빨래와 설거지는 남편이 주 담당자, 아내는 부 담당자로, 요리와 장보기는 요리를 재미있어하거나 잘하는 사람이 주 담당자 역할을 하면 적당할 것 같다. 여기서 주 담당과 부 담당의 구분이 애매할 수 있는데 주 담당자가 해당 일을 기본적으로 하지만 상황에 따라 부 담당자가 할 수도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아내가 요리를 담당한다면 남편은 임신 기간 중에 요리를 꼭 배워서 육아 기간에는 남편도 어느 정도의 요리(특히 이유식)를 담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남편들이 ‘아니 결국은 그 많은 가사를 나 혼자 다 하라는 얘기인가?’, ‘어떻게 나 혼자 그 일들을 다 할 수 있지?’, ‘임신을 해도 만삭 전에는 아내도 충분히 가사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얘기를 하겠다.
첫 번째는 만일 남편이 가사를 주로 담당학게 된다면 집안일을 누가 하느냐를 가지고 부부가 싸우거나 신경전을 벌일 일이 거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모든 일을 남편이 하는 상황은 절대 발생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아내도 일부 가사는 할 수밖에 없고 또 스스로 할 것이기 때문에 너무 억울해하지도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부부가 같이 살면서 어떻게 한 사람은 전혀 집안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 모든 일을 하면서 생활할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집에서 텔레비전과 신문만 보고 집안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남편도 있다고 하지만 지금 세대의 남편 중에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거의 모든 집안일을 전담한다고 해도 남편 눈에는 안 보일지 모르지만 아내도 나름대로 쉬지 않고 집안일과 출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사에서의 아내의 역할을 줄임으로써 임신 중의 아내가 혹시나 잘 못 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유산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임신 초기부터 조금이라도 몸이 피곤하거나 무리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임신 후반기에는 갈수록 아내가 몸 쓰는 것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남편이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출산 이후에는 가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육아 관련 일들이 시작이 된다. 아마도 그때는 육아에 비해서 가사가 참 편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남편입장에서 많은 가사를 직접 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가사 자체가 어렵거나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때까지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가사를 전담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일단 해보면 익숙해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경험이 없거나 부담스럽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이고 가사가 정말 힘든 일이라면 더더욱 아내보다 남편이 해야 한다. 남편입장에서 그보다 더 부담스러운 이유는 퇴근 후 술자리나 TV 보기, 게임하기, 주말 취미활동 등과 같이 그동안 누렸던(!) 개인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출산 후 육아에 참여할 때에도 남편을 계속 힘들게 하고 아내와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부분이다. 때론 보기에 복잡해 보이는 문제들이 해결책은 간단한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해결책 중의 하나가 포기해야 할 것은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집에서 TV도 보고 게임도 해야 하고, 평일에는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주말에는 축구, 야구, 등산 등 동호회 활동을 하거나 친구끼리 골프 치러 나가기도 하는 사람이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한 활동들이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경우에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생활들을 유지하면서 가사를 전담하거나 출산 후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초등학교 때 비가 오는 날 하교 길에 그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이리저리 쓰면서 어떻게든 비에 젖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옷이 젖는 것도 싫었고, 책과 공책이 들어있는 책가방이 젖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신발과 양말이 젖는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가랑비가 올 때는 우산을 잘 쓰면 거의 젖지 않고 집에 올 수 있었지만, 소나기가 오는 날이면 아무리 비가 오는 방향으로 우산을 고쳐 쓰고 걸음을 빨리 해도 옷과 신발이 비에 흠뻑 젖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소나기가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고 집에 왔던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든 비를 안 맞으려고 노력하다가 이윽고 흠뻑 비에 젖고 난 뒤부터는 오히려 비를 맞고 뛰고 걷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격언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하는데 가사를 전담하는 것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나름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결혼하기 전에 안 해본 취미가 없을 정도로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취미 부자였다. 마흔이 넘은 나이까지 미혼이었으니 그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어떤 때는 동호회 활동, 학원 수강, 친구들 모임 등으로 주말이 너무 바빠서 시간단위로 일정을 잡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취미를 많이 정리했는데, 그나마 남은 취미도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모두 중단하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모임 자체가 어렵게 된 이유도 있었지만 코로나시국이 아니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집안 한편에 놓여 있는 악기나 취미 장비들을 바라보면서 '저 정도 취미는 해도 되지 않을까?' 또는 종종 들리는 친구들 모임 소식을 들으면서 '이 모임 정도는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거나 '나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집안일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건강과 체력 유지를 위해 운동은 끊지 말고 계속해야 히지 않을까?'와 같은 갈등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나둘씩 다시 시작하다 보면 끝이 없을 거라는 생각과 가족에 집중하기로 한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라는 다짐으로 코로나 시국이 지나서도 평일에는 바로 집으로 퇴근하고, 주말에는 아내와 아기들을 돌보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생활을 4년 넘게 하고 있지만 처음 걱정했던 것만큼 인간관계가 단절되지도, 견디기 힘들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으면서 나름대로 안정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대신 내가 평생을 같이 할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저녁 술자리가 아닌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은 출퇴근이나 외근 시 자전거를 타는 생활운동으로 대체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활동은 아기들을 재우고 아내와 같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다. 물론 예전처럼 폭넓은 인간관계와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내가 지금 정말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고 그 외의 생활은 단순하게 하는 것도 괜찮은 일상이었다. 무엇보다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들을 희생하는 대신 아내와 태어날 또는 태어난 아기를 위해 노력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느끼는 행복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내 선택의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