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위에 자녀 계획이 없이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들이 많아지고 있다. 결혼생활에서 자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부부에게 육아라는 일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결혼하면 당연히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도그마 같은 당위성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대신 출산과 육아가 부부의 행복에 어떤 의미가 있고 현실에서 그런 행복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과 성찰의 대상으로 남편의 가치관과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지난 3년간 육아를 하면서 느낀 내 나름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물론 나의 얘기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자녀 계획을 고민하거나 육아를 시작하는 남편들에게 육아에 있어서 행복의 의미와 관련해 같이 나누어 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 선진국 중 최하위 임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2022년 합계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8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인데 인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합계출산율이 2.1명이고,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합계출산율이 1.58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출산율 1명 이하인 유일한 국가라는 통계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2025년에는 0.52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치도 나오고 있다고 하니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우리나라는 인구감소로 인해 소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출산율 감소에는 계약직 증가로 인한 안정적 일자리의 감소,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 부동산가격 폭등, 사교육비 부담 증가, 정부의 보육 제도 미흡, 미혼 인구 증가 등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자녀를 갖는다는 것이 공식처럼 당연히 여겨졌지만, 지금은 결혼과 출산이 개인의 인생에서 당연한 통과의례가 아닌 선택의 시대가 되었고 그 선택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가 되었다. 자녀를 갖는다는 것이 한 개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개인의 행복 관점에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아이를 가지면 내가 행복해질까? 우리 부부가 행복해질까?’
내가 늦은 나이에 결혼한 터라 결혼을 준비하면서 아내와는 아이가 없이 사는 것도 염두에 두자는 얘기를 하곤 했었다. 아내와의 연애 중에는 아이는 당연히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왔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각각 40대 중반과 초반인 우리 부부의 나이, 앞으로 남은 경제활동 가능 시기, 현재 보유 자산 등을 생각했을 때 어쩌면 아이 없이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겠구나 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결혼 후 신혼 초에도 자녀 계획이 없었던 우리 부부의 생각이 바뀌게 된 건 결혼 후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당시 아내와 나는 서로의 직장이 걸어서 10분 거리로 근처였던 터라 연애 때부터도 종종 점심을 같이 하고 결혼 후에는 출퇴근도 같이 했었다. 결혼 후 6개월 되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출근하기 위해 걸어가면서 아내가 점심시간에 근처에 있는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다. 결혼 준비할 때 아내가 혼인 신고는 1년은 같이 살아보고 하고 싶다고 해서 나도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었는데 갑작스러운 아내의 얘기에 의아하기도 하고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 남자랑 6개월 같이 살아보니 남은 인생 같이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해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결혼 후 5년이 지난 지금은 가끔씩 속아서 결혼한 것 같다며 눈을 흘길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그때 빨리 혼인신고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혼인신고를 한 날 아내와 같이 퇴근하고 집까지 걸어가는 중에 아내가 조심스럽게 아기를 가져볼까 하고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깜짝 놀랐었다. 결혼 전에는 자녀를 원했던 내가 결혼하면서 오히려 여러 현실적인 여건 등으로 자녀를 갖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에 둘만의 인생 계획만 생각하고 있었고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믿고 있던 터라 아내의 얘기는 정말 뜻밖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정말 자녀를 갖는 게 맞을지, 자녀를 가지면 겪게 될 경제적 부담 포함해서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등등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복잡해져서 대답 대신 아내에게 아기를 갖자고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내는 결혼 준비하면서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게 생각한 것은 맞지만 아예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보니 싱글일 때보다 여러 가지로 안정감을 느끼면서 아기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를 했다. 일단 아기를 갖는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아내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 결혼 전 아기를 바랐던 내가 다른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아기를 갖는 것에 대해 좋다고 얘기를 했다. 이후 우리 부부는 아기를 갖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아픔도 있었지만 2년 후 남녀 이란성쌍둥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 아기들이 없었으면 아내와 나의 인생과 부부생활이 어땠을까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쌍둥이 아가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아기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우리 일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결혼 전 싱글일 때 가장 공감이 안 되는 얘기 중의 하나가 사람은 애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라는 것이었다. 똑같이 직장 생활하고 사회 생활하는데 왜 꼭 애를 낳고 키워야만 어른이 된다는 건지, 자녀를 키우는 것을 통해 어떤 면이 달라진다는 건지, 어른의 정의가 무엇인 건지 이해도 안 되고 공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제 3년 남짓 아이를 키우고 보니 적어도 아기를 키우기 전 나와 지금의 나와의 차이를 통해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기를 키우게 되면서 느끼는 첫 번째 변화는 타인에 대한 공감의 확대이다. 나는 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나타나는 부분 중의 하나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자녀를 키우게 되면 그 공감 수준이 대폭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관계 중에서 남녀 간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관계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인데 그만큼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있어 자식이 아닌 부모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써 그만큼 타인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머리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애정,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생의 파노라마들이 이제는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에 담긴 사랑과 감동이 어떤 것인지, 걸음마를 떼고 말하기 시작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어떤 것인지, 자식이 잘 되거나 자랑하고 싶은 순간 부모의 기쁨과 대견스러움은 어떤 것인지, 자식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목숨마저 내놓고자 하는 부모의 헌신과 희생이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지, 자식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부모 마음의 아픔과 미안함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녀를 잃은 부모의 참담함과 비통함은 얼마나 큰 것인지 등 내 주위의 사람들의 모습 또는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과 그 속에서 부모가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에 대해 비로소 온몸으로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을지, 얼마나 힘드셨을지, 우리가 커오는 동안 우리 부모님이 어떠한 고민과 생각을 하셨을지 등에 대해서 먼저 떠올리고 생각하게 되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새롭게 가질 수 있게 된다. 우리 아기들이 태어났을 무렵 유난히 영유아학대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이전에 비해 해당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부모가 되면서 그런 뉴스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가 되기 전에는 그런 뉴스들을 접했을 때는 어떻게 부모가 저런 짓을 할까,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나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학대 대상 영유아에 대한 측은함을 느끼는 정도였다면 부모가 된 이후에는 그런 뉴스만 보아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분노와 피해자인 아기에 대한 슬픔으로 한동안 마음이 아프고 눈시울까지 글썽이기도 했다. 부모로서의 공감 수준이 커짐으로써 내 아기에 대한 사랑이 다른 아기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렇듯 부모가 된 나는 이전의 나와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측면에서 다른 사람이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육아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육아 전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단순히 육아는 아내의 일로 맡기고 본인은 직장과 사회생활에 집중하거나 단순히 아내의 육아와 가사의 일부 지원하거나 도와주는 수준에서는 진정한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변화의 수준은 육아 참여의 수준과 비례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또 다른 변화는 바로 아내와의 관계이다.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결혼을 했어도 연애 시절의 연장선상에서 일상생활을 할 뿐이었다. 단지 다른 점은 데이트가 끝나고 헤어질 필요가 없이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집안일을 서로 나누어하고, 양가의 대소사를 같이 챙겨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결혼으로 변화한 점들이 있고 그 변화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결혼생활의 중심은 나와 아내였고 주말이면 연애시절처럼 외식과 데이트를 즐기는 생활에는 큰 변화는 없었고 대화의 소재도 각자의 직장 얘기에, 친구 얘기에, TV프로나 최근 본 영화 얘기까지 결혼 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부터는 부부의 대화에 태아와 출산 준비 관련 얘기들, 그리고 친구들 애들 키우는 얘기들이 새롭게 추가되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임신과 함께 줄어드는 데이트 활동 대신 출산에 대한 얘기가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출산 후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대부분의 얘기가 육아에 대한 얘기로 채워지게 된다. 즉 아기가 태어나면 부부간의 관계, 대화 그리고 활동들은 육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부의 관계를 농담처럼 전우나 동지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육아를 같이 하면서 그 표현에 정말 공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파트너가 바로 아내이고 남편이 되는 것이다. 육아과정에서의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육체적인 힘듦을 덜어주고 도와주고 함께하는 조력자이기도 하고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의사결정의 순간들에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상담자이기도 하고, 울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순간 내 옆에서 그 감동들을 함께하는 동반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전의 서로를 묶어주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추억에 더해져서 육아를 함께하는 파트너로서의 신뢰와 고마움과 의지가 두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게 되는 것이다.
흔히 이혼을 하게 되는 부부 중 자녀가 없는 경우를 보면 아이가 없어서 이혼하게 되었을 거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하곤 한다. 이러한 얘기는 자녀의 존재가 부부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부부 관계가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아이가 있었다면 이혼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는 가정이 깔린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떠한 문제로 같이 사는 것이 고통인 부부가 아이의 존재 때문에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있더라도 가족의 중심은 부부가 되어야 하고 그 부부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어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가 결혼하고 살면서 다양한 상황과 갈등에 직면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잠시 잊히기도 한다. 이렇듯 감정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는 있지만 부부가 사랑에 빠지게 만든 서로의 매력과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이유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이나 상황이 달라졌을 뿐인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부부도 갈등의 순간을 잘 넘기고 나면 다시 이전의 사랑하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시련을 통해 더욱 단단한 부부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자녀라는 존재를 통해 기나긴 결혼생활에서 다양한 이유로 마주하게 되는 힘든 상황과 갈등의 순간에 부부가 서로의 끈을 놓지 않게 되고 육아를 통해 아내와 남편이 공동의 목표 하에 많은 것을 공유하고 유대감을 높임으로써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부부 관계도 확장되고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녀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로서의 관계는 깊어지지만 이전처럼 부부 두 사람만의 데이트, 외식 또는 여행 등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느끼는 시간은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양가 가족들과의 관계 변화를 얘기할 수 있다. 아이가 생기게 되면 양가 부모님들께서 너무나 기뻐하시고 행복해하신다. 부모님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효도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이런 얘기가 구식이고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이 느끼는 행복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아기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주말에 양가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 조카를 보고 싶은 형제들과 대화와 교류도 늘고, 명절 등 가족 모임이 TV 없이도 충분히 웃고 떠드는 행복한 시간이 되는 변화를 보면 아이의 존재가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과의 관계도 더 가깝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부모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맺음은 아이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바로 부모 이외의 다양한 관계 형성을 통해 아이의 사회성이 길러질 뿐만 아니라 언어 발달도 촉진되기 때문이다. 옛말에 아기가 태어나면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말이 있다. 물론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양가 가족들의 역할도 중요하다(아쉽게도 사회의 변화로 인해 예전처럼 육아에 있어서 이웃의 역할은 거의 없어졌다). 이렇듯 아이의 존재로 인한 부부 서로의 관계와 양가 가족들과의 관계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그 자체로도 위대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관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