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으로서 육아를 수행할 때 가장 고민스럽고 어려운 부분이 바로 회사 생활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할지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생활에는 내가 맡은 업무처리부터 부서이동, 승진 그리고 이직과 같은 경력관리와 술자리나 회식과 같은 사람관리가 모두 포함이 된다. 회사는 가족의 금전적인 수입기반임과 동시에 투입시간 측면에서 육아와의 경쟁관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갈등과 선택의 고민을 하게 만드는 대상이다. 내가 맡은 일을 기한 내에 끝내기 위해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승진을 위해 상사와의 술자리는 물론 성과를 내기 위한 초과근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또한 부서의 일원으로서 회식이나 저녁 모임을 참석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모든 상황에서 육아의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다. 남편 입장에서는 육아보다 회사 생활에 집중해야 승진을 빠르게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녀를 키우기 위한 경제적인 기반을 조금이라도 더 마련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정당성 부여 또는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쉽게 얘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와 지금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 일지에 고민해 본다면 다른 결론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육아와 회사생활을 어떻게 병행할 지에 대해 고민할 때 명심해야 할 점은 전편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남편의 육아 참여는 단순히 아내나 자녀를 위한 희생이 아닌 남편 본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육아 대신 회사 생활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남편 본인의 행복을 위한 길인지와 회사 생활에 집중함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승진이나 연봉 인상 또는 더 좋은 경력은 지금 놓치더라도 나중에 또 기회를 만들고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 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고 일어서고 걸음마를 내딛고 옹알이하고 말을 하는 이 모든 성장의 과정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빠와 같이 놀고 얘기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아이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아이가 만 두 살 정도가 되면서부터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커지는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충분히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아이가 만 두 살 정도가 되면 행동이나 말로 본인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부모와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이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주위의 지인들이 아이가 만 두 살에서 네 살 무렵일 때가 부모가 자녀를 키우며 가장 행복한 때라는 얘기를 많이들 한다. 아마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외모도 변하고 생각이나 의식도 성숙해지면서 부모입장에서 이이가 엄마와 아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껌딱지’처럼 붙어서 재롱과 귀여움을 피우던 때가 그리워지기 때문인 것 같다. 자녀가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사랑과 애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녀의 성장 시기별로 부모가 느끼는 행복의 종류와 크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행복으로 바뀌겠지만 지금의 행복은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지금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중요시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육아와 회사생활을 병행하는 데 있어서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육아와 회사생활 모두를 잘 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의 기준과 중심을 잡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내가 겪은 회사 생활을 돌이켜보면 육아를 중심에 놓고 회사 생활을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결론적으로는 옮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본인의 경력과 진로에 대해 나름의 계획과 목표가 있겠지만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항상 상황이 바뀌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판단기준도 변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과 기회들도 변하기 마련이다. 육아에 있어서는 내가 무엇을 포기하는지가 명확하고 확실한 반면, 회사 생활에서는 내가 포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도 확실하지도 않기 때문에 육아 대신 회사 생활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확실한 행복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행복을 선택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아이와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아내에게 육아의 많은 부분을 맡긴 남편이 자녀와 아내와의 관계를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육아와 회사생활을 적당히 잘 병행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무수히 마주하게 되고 그때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본인이 무엇을 우선시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육아와 회사생활 중에 무엇을 우선시할지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결심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다음 날 내가 다니는 회사의 연말 조직개편이 있었다. 우리 회사는 매년 조직개편 때 항상 큰 폭의 인사이동이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본인이 이동할 조직을 직접 알아보고 협의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속한 조직도 변화가 있어서 당시 팀장이었던 나도 옮겨갈 조직을 알아봐야 했는데 전날 아내가 출산을 하고 더욱이 쌍둥이가 태어난 상태에서 이곳저곳 연락을 해서 이동할 곳을 알아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갓 태어난 쌍둥이를 키울 생각을 했을 때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부서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하에서 본사에서 이동할 곳을 알아보는 대신 직책을 내려놓고 지사로 가는 결정을 했다. 그러한 선택이 내 경력관리과 승진 가능성 측면에서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옳은 선택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을 한다. 본사에 비해 지사가 출퇴근이 규칙적이고 직책을 내려놓음으로써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가 훨씬 감소했기 때문에 육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너무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사조직으로 이동 후 본사로의 이동 기회도 있었고 다른 회사로의 이직의 기회도 있었지만 승진과 더 높은 연봉을 위해 쌍둥이와의 시간을 희생한다면 나중에 후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한 기회들도 모두 거절하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같이 놀면서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느꼈던 행복한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모든 선택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러야만 내가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진정한 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기를 바란다.
자녀가 나이가 들수록 부모가 느끼는 행복은 어떻게 변할지를 내 나름대로 도식화해 보았다. 자녀로부터 얻는 행복의 총량(Happiness) = 행복을 느끼는 시간(Time) x 행복의 강도(Satisfaction)라고 단순하게 개념화한다면 결론적으로 자녀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시간(T)과 행복의 강도(S)가 모두 줄어들기 때문에 행복의 총량(H)도 감소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행복을 느끼는 시간(T)을 살펴보면 자녀가 나이가 들면서 입학, 취직, 결혼 등을 거치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이에 따라 부모가 행복을 느끼는 시간(T)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행복의 강도(S)도 아기일 때는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에 온 집안이 놀람과 큰 기쁨을 느끼는데 반해 자녀가 성장한 이후에는 이 전과 같은 수준으로 부모 마음이 기쁘거나 즐거운 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느끼는 행복의 강도도 감소하게 된다. 물론 대학 합격, 취업성공, 결혼 등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가 큰 행복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이벤트가 일생에 몇 번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평균적인 행복의 강도(S)가 자녀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줄어든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앞서 얘기한 대로 자녀가 나이가 들면서 부모로부터 독립(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것도 독립의 과정이다)을 하면서 자녀로 인한 부모의 행복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자녀가 성장함에 따른 부모가 느끼는 행복의 변화>
물론 자녀로 인한 부모의 행복이 다시 큰 폭으로 커지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자녀가 출산을 해서 손주가 생겼을 때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행복은 당연히 자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만 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주체가 자녀가 아닌 손주라는 점에서 위의 도식에서 표현되는 행복의 총량(H)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 도식화한 행복의 그래프이지만 이를 통해 나의 행복을 위해 집중해야 할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 각자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