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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l 19. 2024

자화상 2

비겁한 건 아닐 텐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밀어 넣은 음식까지 소화시킬 텐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흘러내린 머리칼이 왼쪽 눈을 찔렀던가?  

  

  눈 뜨고 감는 것도 귀찮아서

  고개 돌려 볼 필요까지 있으려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데

  내가 무얼 하고 있었지?     


  어둑해져 밤이 오는 것 같아서

  까마귀 소리 들릴 리 없을 텐데?

  까칠까칠 턱수염은

  내가 면도를 안 했던가?     


  유독 짧은 손톱 하나는

  누구의 이빨 자국인가?

  책꽂이 빈자리 하나는

  대체 누가 다녀간 흔적일까?     


  하기 싫은 걸까?

  못 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이 냄새는

  술 냄새일까 땀 냄새일까?     


  비겁한 건 아닐 텐데...    

 

  그래,

  비가 와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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