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건 아닐 텐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밀어 넣은 음식까지 소화시킬 텐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흘러내린 머리칼이 왼쪽 눈을 찔렀던가?
눈 뜨고 감는 것도 귀찮아서
고개 돌려 볼 필요까지 있으려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데
내가 무얼 하고 있었지?
어둑해져 밤이 오는 것 같아서
까마귀 소리 들릴 리 없을 텐데?
까칠까칠 턱수염은
내가 면도를 안 했던가?
유독 짧은 손톱 하나는
누구의 이빨 자국인가?
책꽂이 빈자리 하나는
대체 누가 다녀간 흔적일까?
하기 싫은 걸까?
못 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이 냄새는
술 냄새일까 땀 냄새일까?
비겁한 건 아닐 텐데...
그래,
비가 와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