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리베츠 료칸
식사 후 역 앞으로 돌아와 예약한 료칸에서 나온 셔틀버스를 탔다. 다른 일행 없이 달랑 우리 둘을 태운 자그마한 밴은 금세 소읍을 벗어나 눈 쌓인 산길을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강원도의 겨울 풍경과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산세가 다르고 서 있는 나무들이 달라서인 것 같다. 마치 비슷하게 생겼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버스는 점점 깊은 산 속을 향해 들어가니 산은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길옆 낭떠러지 아래에 까마득히 보이는 눈 쌓인 계곡을 걱정스레 살피며 가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밀려온다. 오는 동안 집은 한 채도 보이지 않고 오가는 차도 별로 없는 적막한 도로다. 운전기사는 한마디 말이 없다.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불안감이 점점 더해간다. 달리는 차의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할 때쯤, 사진에서 잠깐 본 듯한 건물이 나타났다. 작은 마을 정도를 예상했으나 료칸은 인적조차 없는 길가에 혼자 서 있다. 료칸의 뒤편은 큰 산자락 아래에 면해있고 맞은 편에는 산속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눈이 쌓여 길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조용한 곳으로 온 듯하다.
료칸은 예상보다 규모가 작아 보였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프런트와 작은 로비가 있고 계단 옆에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료칸 안은 지나치게 따듯하고 노곤한 분위기다. 친절하고 긴 설명 후, 방으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는 3명이 탔는데도 좁게 느껴질 정도로 작다. 규모도 작은 3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이상하고 맨발로 타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3층의 좁은 복도에는 몽롱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오르골 소리처럼 단조롭고 졸리는 듯, 혹은 졸음을 유도하는 듯한 음악이 끊일 듯 느리게 이어지고 있다.
방은 생각보다 넓다. 커다란 검은 상이 방 한가운데 자리 잡고 빈백 소파 2개, 작은 응접세트, 그리고 미닫이 벽장이 있는 다다미방이다. 방 한쪽에는 폭이 1m가 안 되는 벽감이 있다. 벽감 안에는 표면을 거칠게 손질해서 아직 살아있는 듯한 나무를 기둥처럼 천장에 닿게 세워두고 작은 선반이 제단처럼 붙어 있다. 선반 위에는 작은 항아리가, 바닥에는 큰 항아리가 있다. 족자가 걸려있고 조명등까지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각별히 신경 쓴 인테리어인가 싶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느낌의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침, 저녁 식사는 방으로 가져다준다. 전채, 메인, 디저트로 세 차례에 걸쳐 나오는데 다양한 모양의 그릇에 소꿉장난처럼 두어 개의 음식이 예쁘게 놓여있다. 한참을 감상하고 품평하고 사진 찍은 후 한 개씩 먹는다. 몇 조각 되지 않는데도 이것저것 먹다 보면 배가 부르다. 그러나 우리 식으로 푸짐하게 먹고 난 후의 배부름과는 다르다.
다양한 모양의 그릇과 쟁반에 음식이 담겨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