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츠분 행사
저녁 식사 후 료칸 1층에서 민속놀이인 세츠분 행사가 있었다. 잡귀를 쫓기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해 주는 공연이란다. 우리의 지신밟기와 비슷한 풍속으로 보인다. 내가 어릴 적에는 시내에서도 정초에 골목을 돌아다니는 놀이꾼이 있었다. 골목 초입에서 신명 나는 농악 소리가 들리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대문을 열고 내다본다. 6~7명의 놀이꾼이 탈을 쓰고 농악을 울리며 다니는데 집집마다 들어가 마당에서 신나게 놀고 갔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옛 추억을 되짚어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곳에서는 시간 맞춰 조용히 료칸 로비로 들어와 공연을 시작한다. 먼저 사회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공연 소개를 하고 나서 단소보다 짤막한 관악기를 불며 흥을 돋운다. 음악에 맞추어 남녀 탈을 쓴 한 쌍이 큰 남근 모형을 들고나와 성행위 하는 흉내와 임신이 되었는지 남자가 여자의 배에 귀를 대는 단순한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한다. 원시적 남근 숭배 의식과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표현 방식은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어서 파란 탈과 붉은 탈을 쓴 오니(도깨비) 둘이 나와 방망이를 들고 큰 소리를 내며 춤을 춘다. 끝날 때쯤 땅콩과 부적을 던져주기도 하고 손에 쥐여 주기도 한다. 그들은 떠나면서 센겐공원에서 본 공연이 있을 예정이니 오라고 한다.
센겐공원의 위치를 물어보고 료칸을 나서니 앞 도로는 텅 비어있고 사방이 어둡다. 흐릿한 가로등에 의지하여 산길을 걸어가다 보니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좀 더 올라가자 편의점이나 식당, 기념품 가게, 호텔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속에 이런 동네가 형성되어 있다는 게 좀 놀랍다. 내가 묵는 료칸이 혼자 그렇게 뚝 떨어져 있는 게 의아했는데, 이 지옥 계곡 관광 촌의 초입에 있는 거였다. 좀 많이 떨어져 있긴 하지만….
공원에는 꽤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다. 대부분이 관광객들이다. 처음 공연은 료칸에서 본 것과 같은 남녀 한 쌍과 도깨비가 등장하는 공연이 재연되었다. 이어서 떡메치기 공연인데 네 명의 남자가 큰 나무망치 모양의 떡메를 들고 절구의 떡을 치면서 춤을 춘다. 공연이 끝나고나서 준비된 떡을 나눠주는데 선착순 100명이라는 소리에 줄서기를 포기했다. 다행히 생활력 강한 한국인 동포를 만나 떡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새알심 모양의 떡에 조청을 뿌렸다.
이들의 공연을 보면, 내용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우리의 민속놀이는, 신명 나게 놀면서 흥을 끌어 올리고 그 흥겨움이 구경꾼들에게 전달되어 놀이꾼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즐기는 것이다. 반면에 이들의 놀이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몇 개의 동작으로 절제되고 각을 맞춘 듯한 느낌이다. 관객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요즘 공연장에서 한국인들은 떼창을, 일본인들은 조용한 관람을 즐기는 게 이 때문인가 싶다.
2부 공연은 한 무리의 벌거벗은 남자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스모선수들 복장처럼 흰 천으로 앞을 가리고 허리에 흰 띠만 둘렀다. 남자들은 횃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공원 밖에서 열을 지어 달려왔다. 그들은 장대 위로 온천물을 던져 횃불을 끄거나 기마전을 하고 서로에게 김이 나는 온천물을 뿌리면서 한참을 뒤섞여 노는데 공연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의 물놀이 같다. 마지막으로 2m 정도 되는 거대한 남근 모형을 정(井)자형 나무 의자에 태워서 공연장을 돌면서 온천물을 끼얹어 주는데 공원은 온통 김으로 뿌옇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올 때처럼 열을 지어 달려 나가고 공연이 끝난다.
이 행사는 공연 내용보다 긴 기간에 걸쳐 유지되고 있다는 게 놀랍다. 노령사회라는 일본에서 100명 가까이 사람이 동원되는 이런 행사를 해마다 하는 게 대단하다. 어쩌면 단순한 형태의 공연이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간단한 가락과 동작이 반복되니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 이어질 수 있었나 보다 싶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전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계승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긴 시간 유지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향토 문화를 이어나갈 여지도 없이, 붕괴하고 있는 향촌 사회의 구조적 위기와 문화적 황폐화 현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서민들의 삶 속에 스며있던 놀이문화는 도시의 공연장이나 무대로 옮겨져 전문적이고 상업적인 공연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함께 어울려 떠들썩하던 정서는 사라진지 오래라 이들의 공연을 보며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