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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향한 도시, 마추픽추

by 장성순

봄소풍 가듯 마추픽추를 가다 / 2월 27일

여행은 매일매일이 소풍이지만 특별히 기대되는 날이 있다. 그저 타박타박 걸어서 근교로 가는 소풍이 아니라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수학여행 같은 날. 마추픽추는 그런 곳이다. 출발하기 전, 여권을 챙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마추픽추가 특별한 곳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먼저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간다. 마추픽추행 전용열차를 타는 곳인데 역 대합실에는 '언제나 성수기'인 관광지 특유의 혼잡과 흥분이 느껴진다. 원주민 분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들도 있다. 기차 플랫폼에도 그런 직원이 서너 명 어설픈 공연을 한다.

전용열차인 페루레일은 옆면은 물론이고 천정에도 큰 창이 있어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보면서 갈 수 있다.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린다. 지나쳐가는 산들이 얼마나 높은지 천장 창문을 통해보면 하늘이 있어야 할 곳에 높직한 산봉우리가 걸려있곤 한다. 계곡에는 황토색 흙물이 쏟아지듯 흐른다. 아마도 마추픽추를 감돌며 흐르는 우르밤바 강일 것이다.




IMG_5256.JPG 페루 레일 내부, 창이 많아 놀이공원 열차를 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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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레일 외부모습과 플랫폼에서 보여주는 소박한 공연


차창 밖으로 우리네와 별로 다르지 않은 농가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설픈 살림집과 정성스레 가꾼 밭의 농작물들. 옥수수는 여물어가고 감자인 듯한 밭작물이 무성한 이파리를 키워가고 있다.

마추픽추의 이야기는 설화처럼 남아있고 그 주인공들은 어디론가 떠났지만, 그들의 또 다른 후예들은 그곳으로 돌아와 삶을 일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온기와 자연의 숨결이 함께 하고 있다.



IMG_5260.JPG 산 아래까지 내려온 구름은 이곳이 고산지대임을 알려준다


기차에서 내리면 상가들이 양쪽으로 줄지어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간다. 작은 상점들은 벽면과 어두컴컴한 안쪽까지 빼곡하게 전통 공예품을 전시해 놓았다. 관광객이 많아 줄지어 가는데, 그 틈에도 맘에 드는 물건을 찾아 낚아채는 유능한 쇼핑객도 꽤 있다. 골목길 끝에는 계곡이 나타나고 계곡 맞은편으로 가는 다리가 여러 개 보인다.

맞은편 계곡의 도로는 사람들이 많아 차도와 인도를 모두 점령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백 여미터는 됨직한 긴 줄을 이루고 서있다. '설마 저 줄 맨 뒤에 서야 하는 건 아니겠지?' 했으나 슬프게도 예상은 빗나갔다. 산꼭대기에 있는 마추픽추까지 가는 버스 탑승 줄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줄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는 것. 몇 대의 버스가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IMG_5281.JPG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설명조차 없는 잉카인 부조가 계곡 옆면에 새겨져 있다.


IMG_5285.JPG 계곡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드디어 마추픽추 정상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꼬불꼬불 감돌아 올라가는 산길은 우리나라 여느 산사 가는 길과 비슷하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좁은 산길 양편에는 활엽수가 우거져있다. 다만 나무 사이로 내려다보는 계곡의 깊이는 까마득하다. 올라가는 산의 높이가 짐작된다. 마추픽추의 해발고도는 2400미터나 된다.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집과 신전을 짓고 살아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IMG_5424.JPG 산중턱을 지그재그로 깎아 만든 버스 길이 보인다.

버스에서 내리면 마추픽추 입구다. 여권과 표를 확인한 후 입장하면 경사로를 걸어 올라간다. 관람객들이 너무 많아 앞사람 엉덩이에 머리가 부딪힐 지경이다. 그렇게 십여분 올라가면 평지가 나타나고, 유적지가 보일만한 곳을 찾아 평지 끝으로 달려간다.

저 아래 일월오봉도의 봉우리처럼 불쑥 솟아오른 산을 배경으로, 초록 풀밭 위에 마추픽추 유적이 말쑥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지런히 조립한 레고 블록처럼 단정한 모습으로 펼쳐진 이 오래된 도시, 네모 반듯하게 구획된 건물들, 산비탈에는 석축을 쌓아 경작지를 만들었다.

미국인 탐험가 하이럼 빙엄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정글과 온갖 넝쿨로 뒤덮여있었다'라는 표현 때문인지 나는 지금의 이 말쑥한 장면이 의외로 느껴진다. 그저 또 한 장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아래로 내려가 유적지를 돌아본다. 신전과 지배층의 집은 돌의 면을 반듯하게 잘라 맞춰 빈틈없이 아귀를 맞췄다. 쿠스코에서 본 12각 돌처럼 거대한 돌을 매끈하게 다듬어 쌓았다. 그에 비해 서민들의 집은 거칠게 대충 다듬은 돌을 쌓고 그 틈을 흙으로 메꾸었다. 그 시절 사용했던 수로에는 지금도 축축이 물이 흐르는 구간이 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돌무더기였는데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거친 돌의 표면을 더듬어보면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돌을 짜 넣어 만든 네모난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보고, 자연석 위에 쌓은 석축, 태양의 신전 바닥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자연석을 보고 있으면 그곳을 디디고 만지며 살았을 그때의 삶이 연상된다.

저기쯤 굵은 나무로 대들보를 얹고 짚을 엮어 지붕을 만들었겠지. 아침에 일어나면 이 창문으로 건너편 산을 바라보며 서늘한 공기를 맞았을 것이고 산중턱까지 내려와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았으리라. 그들이 땀 흘리며 일했던 계단식 밭들은 이제 잡초만 무성하다.


마추픽추는 '공중도시'라고 불린다. 그런데 수치상으로 보면 쿠스코는 해발고도 3400m, 마추픽추는 2400m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계곡이나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은 봉우리 같은 시각적인 이유만으로 그렇게 부른 것일까?

마추픽추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에는 햇살이 유난히 많이 내리고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태양을 숭배하는 잉카인들이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렇게 태양을 섬기며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던 이들은 어느 순간 어떤 이유에선가 사라져 버렸다. 마을은 버려지고 폐허가 되고 밀림의 숲으로 뒤덮여 수백 년의 잠에 들어버렸다.

IMG_5357.JPG 위에서 내려다 본 마추픽추는 미완성의 레고블럭 작품같다.



IMG_5404.JPG 한때 농작물이 무성했을 계단식 경작지. 지금은 잡초와 관광객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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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408-1.jpg 돌을 깎아 만든 창문을 통해서 본 풍경
IMG_5390.JPG 거대한 돌을 반듯하게 잘라 쌓았는데 빈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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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석에 돌담을 쌓아올림 / 태양의 신전 바닥에도 큰 자연석이 박혀있다.


잉카인의 개

이곳 개들은 낯선 이들 속에서도 으르렁거리거나 짖는 걸 본 적이 없다. 큰 개들이 많은데 마치 할아버지들이 마실 다니듯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린다. 목줄도 없고 주인도 없는듯하다. 어디든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드러누워 잠을 잔다.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있어

도 그 사이를 비집고 유유히 지나간다. 호텔 로비에서도 돌아다니고 공항 안에 들어와 드러누워있는 개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개들을 쫓아내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심상한 얼굴로 내버려 둔다.

시골개도 비슷하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시골길에 순하게 생긴 덩치 큰 개가 느긋하게 앉아 지나가는 차를 쳐다본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개도 있었는데 지나가던 차가 경적을 울리는데 놀라지도 않는다. 머리를 돌려 바라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나이 든 사람같다.

이곳의 인간과 개는 그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 규칙을 받아들이기로 다 함께 정한 듯하다. 동물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칙. 그들 사이의 규칙은 둔감한 인간들만 모른 채 살아왔고, 그러나 잉카인들은 그 비밀을 깨달은 자들이며 태양신을 향해 기도 올리던 그 시절부터 동물의 피를 희생제물로 바치던 그 순간마다 죽어가는 동물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동물의 의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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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등장하는 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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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 대부분은 목줄이 없다. 공항 로비에 편안히 자리잡은 견공

우르밤바 가는 길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가는 길에 우르밤바가 있다. 우르밤바의 도로는 우리 시골의 이차선 국도와 참 닮았다. 도로 옆에는 손질되지 않은 나무와 원색의 꽃들이 피어있다. 가끔씩 보이는 선인장류의 식물이 아니면 우리나라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친근감이 느껴진다. 길가에 심은 옥수수도 우리 시골 마을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이 시골길에 잉카 전통복장을 한 엄마와 패딩점퍼를 입은 어린 딸이 손을 잡고 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 맞잡은 손을 끌며 엄마가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데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익숙해서 언젠가 나도 저렇게 걸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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