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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이 데운 과거의 추억

by 허당 써니 Mar 12. 2025

목욕탕에서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

목욕탕에 들어서자마자, 오후 4시의 적막함이 감돌았다. 열탕 41도, 온탕 38도, 냉탕 10도. 하지만 피곤에 절어 있는 나는 탕 안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기운 하나 없이, 손 하나 까딱하기도 싫어 때밀이 아줌마에게 몸을 맡기기로 했다.

“아줌마, 저 5분 후 때밀이 가능할까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어 빨리 씻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친 나를 더 지치게 했다.

“때를 밀려면 30분 정도 열탕에 앉아 계셔야 해요. 그래야 때들이 불어 밀기 쉽거든요. 손님, 피곤하시더라도 좀 앉아 계셔요.”

어쩔 수 없이 41도의 열탕에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속에서 어제의 술 냄새가 스멀스멀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1차만 가볍게 마시고 일찍 귀가하는 게 습관이 되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벤더 사람들과의 자리가 즐거웠던지, 예전처럼 필을 받아 3차까지 달렸다. 소맥으로 시작해 연태를 거쳐 사케로 마무리. 정신은 말짱했지만, 오늘 점심식사 후부터 온몸이 고갈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탕 안에서 물결이 움직인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겨울날, 우리 세 자매가 목욕을 하려면 엄마는 큰맘 먹고 준비를 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가마솥 두 개에 불을 지펴 물을 데우고, 부엌 안에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빨간 대야를 두 개 준비하셨다. 가마솥의 뜨거운 물과 찬물을 적절히 섞어 첫 번째 대야에 물이 담기자 엄마는 가장 먼저 언니를 부르셨다.

“연희야, 얼른 부엌으로 들어와라. 써니랑 미옥이는 20분 대기하고 있어. 엄마가 부르면 바로 와야 한다.”

공기놀이를 하던 언니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20분 후, 엄마는 나와 동생을 부르셨다. 언니가 먼저 앉았던 대야에서 동생과 나는 물장난을 하며 놀았다. 두 번째 대야로 옮겨진 언니를 엄마는 마무리해 주고, 내 때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거친 때밀이 수건이 살갗을 스치며 따가웠지만, 별다른 불평 없이 몸을 맡겼다. 마지막으로 동생 차례가 되자, 어김없이 울상이 되었다.

“엄마, 너무 간지러워요! 아파요! 물이 너무 더러워요!”

엄마는 결국 때밀이 수건을 내려놓고 동생을 다독였다. 어린 시절, 동생은 늘 예민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아이였다. 나는 묵묵한 둘째 딸이었다. 언니는 장녀라 신경 써야 했고, 동생은 늘 엄마의 관심을 받았다. 반면, 나는 별 불평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아이였다.

탕 안에서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엄마는 묵묵한 내가 편해서 나에게 표현을 많이 해주지 않으신 건가? 엄마 또한 표현이 풍부하지 않으신 분이셨다. 표현이 풍부한 분이셨다면 나도 더 많은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자랐을까?’


30분이 지나고 때밀이 아줌마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전신 마사지를 받으며 몸을 맡겼다. 한 시간 동안 아무 불평 없이 묵묵히 몸을 내어 맡긴 나를 보며 아줌마가 한마디 하셨다.

“손님, 참 편한 분이네요. 요즘 사람들은 힘이 세다, 약하다, 간지럽다며 말이 많은데, 손님 같은 분들만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 엄마가 다시 생각났다. ‘엄마도 내가 편해서 좋으셨을까? 때밀이 아줌마가 하신 말이 어린 시절의 엄마를 통해 나에게도 전해졌다면, 나는 더 표현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지 않았을까?’


요즘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묵묵하고 표현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직원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를 행복하게 만드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게 되면서, 나 자신이 변화했다. 만약 내 어린 시절을 그대로 품고 살았다면, 내 삶은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서도 의미를 찾으며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까지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지금의 나는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 같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찾는 만큼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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