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올바른 적을 상정하여

고질라 마이너스 원

by 아라베스크 Dec 25. 2024


 고지라는 태생이 수폭 실험으로 방사능에 노출된 기형 생물체이기에 본능적으로 인간을 적대하고 문명을 파괴하는 설정을 지닌다. 대부분의 괴수물 전통적 설정으로, 봉준호 감독 괴물의 괴물도 미군이 한강에 무단 방류한 포름알데히드로 기형화 된 괴수이고 자살한 인간을 맛본 탓에 인간을 노린다. 이런 탄생 배경은 인간들의 악의가 초래한 비극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고지라는 도쿄만에 가까운 태평양에서 탄생했기에 가까운 국가인 일본, 도쿄를 침공해 일본인들을 학살한다. 다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서 고질라가 시키시마와 첫 조우 때보다 더욱 피폭되어 강해진 건 1946년 크로스로드 작전으로, 비키니 환초에서 미군이 자행한 핵실험 때문인데 이를 토대로 영화 속 인과 흐름을 생각해 본다면 모든 건 미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란 책임 전가도 영화는 담고 있다. 더욱이 초반부 극 중 인물 스미코가 카미카제를 포기하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돌아온 시키시마에게 염치없는 놈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만약 카미카제 임무에 충실했더라면 일본 국가 양상은 달라졌을 거라 가정하는 논리로 비극의 원인을 잘못 이해하는 모습 또한 패전 책임을 일본 제국주의가 아닌 다른 곳에 전가하는 것으로 영화는 담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이런 몇몇의 차폐된 프레이밍은 당혹스러울 뿐이다. 애초 미군에게 대공습 폭격을 당한 건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으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 이 때문인지 영화에서 첫 고질라 등장이 대공습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던가, 고질라의 거대화가 대공습으로 인한 피폭 때문이라던가를 조금도 암시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전부터 근방 섬 주민들이 목격하고 전래했다는 것으로 대공습 이전부터 존재한 전설의 괴물이란 설정이 첨가되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매력적인 건 전후 시대란 시간적 배경임에도 전쟁을 잊고 현재의 재난에 집중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물들의 모습 때문이다. 괴수물을 재난 영화로 변모시킨 이전 시리즈 신 고질라의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철저한 군사적 고증과 지휘 체계 설정으로 고질라는 단순한 침공 괴물이 아닌 인류가 맞닥뜨린 재난의 상징물이 되었고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선 전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로도 활용된다. 시키시마는 전쟁 승리나 무분별한 애국보단 단지 사랑하는 부모님 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카미카제를 회피한다. 비행장 정비 반장이나 앞서 말한 스미코처럼 일부 인물들은 이런 시키시마의 유약함을 비난하지만 시키시마의 이런 가치관이 결국 고질라를 극복하는 주요 원천이 되기에 영화 속 언뜻 보이는 우익 사관들은 전쟁 트라우마를 강조하려는 장치 체계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올바른 적을 상정한다는 것이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가 드러난다. 모순된 문장처럼 보이겠지만 상대주의적 경쟁 사회에서 나의 적은 곧 나를 규정한다. 적에 따라 계획과 행동 가치가 설정되기 때문이다. 올바른 적을 상정.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서 일본 국민들이 고질라란 적을 상정했을 때 그들의 언어 활용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혐오스럽고 금기시되는 모습에서 탈피해 인류애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카미카제, 유키카제 그리고 신덴. 따라서 영화 속 모든 건 대한민국 국민에게 혼란스러울 뿐이다. 영화 속 허구에서 이들의 극우적 언어가 인류애적 변모로 침략의 언어란 이미지를 탈피한다면 현실 속 역사적 언어로서 현재에도 미래에도 긍정적으로 쓰일 가능성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사상의 자유는 사회의 실제적 예속 관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탱한다는 게 그 역설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시키시마가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자신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임하는 과정에서 카미카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건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내가 괴수물에 지나친 피해 의식을 투영하는 것일까? 그래도 이런 나도 희망을 갖는 건 시키시마가 죽지 않고, 그가 사랑한 사람들도 죽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난다는 점이다. 이런 결말이 의도든 우연이든 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고질라란 올바른 적을 상정할 의지와 힘이 그들에게 있었다면 우리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지만, 그런 이유로 고질라란 적을 바란다는 것도 어찌 보면 인간의 이기성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단지 이런 혼란함마저 의도한 것이 아니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