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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규라는 태풍의 눈에 위치한 길복순

<길복순>(2023) 리뷰 및 분석#1

by 파도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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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복순> (2023)

킬러들의 회사인 엠케이에 속해있는 복순은 업계 최고의 실력자다.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다. 그녀는 두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아들을 죽여달라는 국회의원의 의뢰로 인해 균형이 무너지게 되고, 해당 의뢰를 의도적으로 실패한다. 해당 일에 대한 책임을 덮으려는 회사 대표 차민규의 선택에 불만을 가진 회사의 이사 차민희는 킬러들을 고용해 복순을 죽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 일을 계기로 복순은 이사를 죽이게 되고 대표와의 관계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길복순의 키워드는 단연 ’ 모순‘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동시에 실제로 영화 전반을 이끌어가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모순’은 등장인물의 행실에서 도드라진다.

원칙주의자 킬러이지만, 모든 원칙에 복순은 예외인 ‘민규’, 탑급 킬러인 동시에 엄마인 ’ 복순‘. 두 사람이 가진 모순을 암시하는 장면들도, 서로의 모순을 파고들며 전개하는 스토리도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모순을 유지한 복순과 그렇지 못한 민규의 결말도 모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던지는 듯하다.

논란으로 인한 혹평과 액션과 연출들의 호평이 뒤섞인 평가를 받는, 호불호가 극명히 나눠지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의 감독인 변성현 감독은 변태 같은 디테일로 덕후(?)들을 만드는 감독이기도 하다. 누아르로 치장했지만 멜로영화였던 불한당과 마찬가지로 길복순은 액션으로 치장한 멜로 영화다. 상징과 암시를 통해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점은 변성현 감독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색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차민규의 모순

민규의 모순은 복순의 실패가 의도적이었음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덮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첫 만남을 회상하는 신을 통해 복순을 향한 감정이 모순의 근원임을 알려준다. 차민규의 원칙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에게 변수를 만들어버린 복순은 차민규라는 태풍의 눈에 위치한다. 가장 안전한 동시에, 가장 모순적인 위치다.

민규는 원칙을 중시한다. 규칙과 원칙을 언급하는 민규의 대사들과 킬러들의 사회에 원칙을 제시하는 민규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혼잡한 복순의 큐브를 보며 ’ 규칙대로 하면 맞출 수 있다 ‘는 말과 함께, 항상 정확하게 맞춰진 형태를 유지하는 민규의 큐브는 형상화된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하는 민규의 책상 위 큐브를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다.

큐브는 민규의 마지막 또한 암시한다. 킬러들의 결투를 상징하는 ‘피 묻은 칼’을 받은 민규는 복순과의 결투를 준비한다. 복순의 모습이 등장하는 스크린과, 민규가 큐브를 어그러뜨리는 소리를 오버랩시키며, 결투의 결말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 보인 민규의 큐브는 첫 만남 때 복순이 가지고 있던 큐브와 같이 혼잡했고, 자신의 원칙을 복순을 위해 결국은 어그러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민규가 제시한 규칙의 의도

차민규의 규칙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자면, 그가 킬러들에게 제시한 3가지 규칙도 복순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규칙이 아니었을까 한다. 민규가 제시한 첫 번째 규칙인 ‘미성년자는 죽이지 않을 것’ 이 복순이 민규에게 제안한 규칙이었다. 그런 점에서 민규가 제시한 규칙은 시작부터 복순이 느껴진다.


민규에게 킬러들의 낭만시대였다는 그 무법시대에서 폭력을 즐기는 복순을 지키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룰을 만들면서 무직자, 아마추어나 다른 킬러들이 복순과 결투를 하면서 복순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걸 넘어 다른 회사의 킬러들로부터도 복순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복순과 희성을 포함한 킬러 다수가 결투를 한 이후의 상황이 한 예다. 만약 그 이유가 낭만시대의 ‘피 묻은 칼’이라는 킬러들의 암묵적인 메시지였다고 해도, 회사의 인력보다 우선시 여겨지진 않는다. 복순이 다른 회사의 킬러들을 죽인 상황이라면, 그들에겐 복순을 처리할 합리적인 이유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해당 회사들은 복순을 향한 칼을 뽑았을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다. 힘이 권력이 되는 수직적인 킬러들의 사회라면,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인 수순이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희성이 한 말을 통해 룰을 만든 궁극적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규칙은 힘 있는 사람들을 더 힘 있게 만들어준다 “”그 규칙이라는 것은 엠케이 독과점을 위한 수단이다 “ 등을 통해 엠케이가 힘을 키우는 데에 규칙이 하나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엠케이의 규모가 커지고, 동시에 복순의 존재감도 커지면서 킬러들의 사회에서 복순을 대하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더해서 룰이 없고, 아마추어와 무직자들이 활개 치던 시대에서 복순은 그들에게 최고의 포트폴리오감이었을 것이다. 미어캣이 사자를 사냥에 성공한다면 이름이 어떻게 유명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민규가 선택한 ‘규칙’은 그 모든 불확실한 상황들에서 복순을 지키기에 최고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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