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기별냥 Sep 20. 2024

시한부가 되다.

 “전 괜찮아요.”


 자신을 보며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님을 보자 새봄이는 웃음을 보이며 위로를 건네었고 부모님은 끝이 빨갛고 부은 눈을 보면 누가 봐도 방금 전까지 울었던 모습인데 애써 미소 짓고 있는 새봄이를 안아준다.


 그 순간만큼은 어중간한 위로의 말보단 말없이 안아주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인가 새봄이는 배가 조금씩 아팠다.


 그저 고등학교 진학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을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지속되는 구토와 복통에 심지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생기자 병원에서 검사받았다.


  며칠 뒤 결과를 들으러 가는데 부모님만 들어오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의자에 앉았고 간호사의 실수였는지 제대로 닫히지 않던 문이 스르르 열리자 안에서 말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암입니다.”


 새어 나오는 말에 떨결에 검사 결과를 같이 듣게 되는데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더니 이내 쿵쾅쿵쾅 거리며 빠르게 뛰며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저게 지금 무슨 말이야..’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목이 턱 막혀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큰 충격에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새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나와 손끝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정신이 들었고 흐느끼며 울고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두려움이 몰려오더니 이 순간을 거부하고 싶은 몸부림에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가다 몇몇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아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의 말만 전하고 어디로 숨어야 할지 두리번거리다 비상계단이 눈에 들어오더니 그곳으로 들어가 계단에 앉아 고개 숙여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현실을 마주하기에 너무나 어린 나이였고,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인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도 없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멍하니 있다 웃음이 났다가 다시 우울해지고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몇 시지?’


 갑자기 문득 사라진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애써 눈물을 닦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고 조금씩 일어났다.


 그렇게 병원 안을 돌다 자신을 찾는 부모님과 만나게 되었고 애써 웃음으로 슬픔을 감추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추위가 물러나기도 전에 열일곱 살 새봄이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괜찮아질 수는 있지만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워낙 특이 케이스라 완치가 되려면 이식을 받는 게 가장 좋습니다. 아직은 통원치료가 가능하지만 여기서 조금이라도 악화된다면 바로 병원으로 와서 입원해야 합니다.”


 이식을 받으면 완치될 확률은 높아지지만 아직 조건이 맞는 장기가 없어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꾸준히 건강을 챙기고 있지만 마음의 병이 더 깊었는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이러한 사실을 새봄이가 알게 되면 실망한 나머지 희망을 잃고 치료를 거부하게 될까 이야기해 주지 않고 치료에만 전념하자고만 말해주었다.


 사실 부모님의 표정을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내색하지 않고 모른 척해주었다.


  ‘괜찮을 거야.. 아직 시간이 있으니..


 병을 얻게 되면서 사람들은 늘 새봄이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위로의 말들을 건네었다.


 하지만 불쌍하다측은하게 바라보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이유 있는 친절함이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스럽고 싫더니 속이 울렁거릴 만큼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위한 말이기에 화를 낼 수도 없어  되도록이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피해 다녔고 혹시나 피할 수 없을 땐 늘 예전 모습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


 시간이 지나면서 지친 새봄이는 말수가 줄었고 핸드폰만 보는 일이 많아졌다.


 나름 이겨내려 노력했지만 나아지지 않고 쓰러지는 일이 빈번해지더니 결국 입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래도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새봄이와 같이 아픈 사람들이니까 측은하게 여기지는 않겠거니 싶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며칠 지나 보니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린 나이인지라 환자들 사이에서도 불쌍한 아이였으니.


 “저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병을 겪게 하니...”


 “그러게나 말이야.”


 “8층에도 아픈 애가 있다더니만.


 “그 애는 어디가 아프길래?”


 “심장이 안 좋다 그렇던가? 병원에서도 손 쓸 상황이 아닌가 봐. 그래서 남은 시간 집에서 보내겠다며 퇴원한다고 그러더라.”


 “에휴, 딱해서 어째.


 “그래? 나는 다 나아서 퇴원한다 들었는데 잘못 들었나?”


 “뭐가 맞는 거야?”


 ‘좋겠다. 나도 다 나아서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상태로 병실 사람들이 말을 듣고는 조금씩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새봄이는 사람들이 있을 땐 주로 자는 척을 하였고 사람들이 자거나 없을 땐 창밖을 보거나 핸드폰 속 사진들을 보면서 친구들, 가족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보는 등 추억을 찾아보며 그리워하고 후회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SNS를 보면서 주변사람들은 미래로 나아가지만 자신은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 상대적 박탈감 마저 들기도 했다.


 쓸쓸한 병원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새봄이는 나뭇가지에 피어오르는 예쁜 꽃들과 바람에 살랑이며 춤을 추는 듯한 꽃잎들을 보니 하루하루 말라가는 자신과는 다른 처지에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저 꽃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이면..


 문득 예전에 봄이 되면 가족들과 꽃놀이로 나들이 가거나 캠핑을 갔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는 혼자 있고 싶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 무슨 가족여행이며 투덜거렸는데 그날따라 무척이나 후회되고 그리워졌다.


 내가 떠나면 우리 부모님 많이 힘드실 텐데.. 윽...’


 한 번씩 몰려오는 통증에 배를 움켜 주었지만 몸이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