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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주 Oct 19. 2024

‘나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방법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원에 가면 주어진 순서에 따라 기초를 쌓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선연습에서부터 원기둥, 구, 정육면체 등 기초도형 그리기까지 미술학원에 한 번쯤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학원에 다니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선긋기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과정이 과연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들이 떠다녔고, 무한한 의심과 함께 연필을 쥐고 있는 내 손은 영혼 없이 수십 장의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거칠고 짧게만 반복되었던 연필 선이 점점 부드러워지고 스스로 선의 길이와 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러한 변화가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거쳐온 과정이 마치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비법을 찾아가는 과정 같아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반사광과 그림자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지만 원기둥을 표본에 가깝게 그리는 것이 당연해졌을 때쯤 사과 그리기에 도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미대생들은 이러한 순서에 따라 그림을 배우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미술을 공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미술대학에서 마주한 첫 수업과제는 내 예상과 달리 멘붕 그 자체였다. ‘유화, 아크릴 사용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미술대학에서 과연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까?’ 사회에 나갔을 때 내가 배운 그림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니 마음이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 어차피 알려주지도 않고..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하고 싶은 것  아무거나 하자.’


 교수님은 캔버스 50호에 그릴 첫 작품을 위한 에스키스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주로 다뤄왔던 재료는 연필과 수채화가 90%였기에 유화 작품을 위한 에스키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미술관과 화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돌아보면 막연히 어딘가 가까운 곳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작품을 보는 방법도 모르고 새로운 미술 재료는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지던 상황에서 내가 처음 고른 재료는 오일파스텔이었다. 10년도 더 전이니, 그때는 오일파스텔이라는 재료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집에 있던 크레파스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한 재료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빠른 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하고 싶었고, 채도가 높은 진한 그림을 그리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크레파스와 오일파스텔을 함께 사용했는데, 경계가 분명한 깔끔한 그림을 그릴 때에는 크레파스를, 경계선을 허물고 싶을 때에는 오일파스텔을 주로 활용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정해진 과정에 따라 학습하는 데 익숙해지다 보면 나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백지상태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쉽기 마련이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서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의 순수함이 더 낫다는 말은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기본기를 닦는 과정과 한 분야를 익혀가는 데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나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고 싶었다. ‘나의 처음 방식을 유지하면서 기본기를 탄탄히 채워가면 남들과 차별화되면서도 잘 그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이 좋아서 생애 처음 미술학원에 등록한 어린이들과 뒤늦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온 취미반 수강생들을 위해 오랜 시간 연구했다. 자신만의 색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기본기를 쌓아가는 과정을 고민했고, 내가 그림을 배워온 과정을 거꾸로 돌아 가보며 아쉬웠던 점과 보완하고 싶은 점들을 모아 수업에 적용했다. ‘나만의 색’을 찾아가는 모든 이에게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작가 김한주만의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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