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에도 미역국 한 그릇 없이 바빴던 나날들
어릴 때 친정엄마를 떠나보냈다. 너무 일찍.
그리고 친정아버지마저 내 결혼식 한 달 전, 세상을 떠나셨다. 어린 나이에 부모 없는 삶을 받아들이며,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결혼 후, 큰며느리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 없이 시집일에 매달렸고,
시아버님 병간호에, 제사 준비에 정신없이 살았다.
친정 제사도 챙기지 못한 채 그렇게 바쁘게,
당연한 듯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나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책임을 다하며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남편이 떠난 후에도 시댁을 찾는 것은,
그 모든 세월을 의미 없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끝까지 내 몫을 다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아이들이 나의 삶을 보며 따뜻한 마음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배워가길 바라니까.
이제 나는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힘들었지만,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어느 날, 생일 아침에 익숙한 미역국 냄새가 풍겼다.
"엄마, 생일 축하해!"
아이들이 정성껏 끓여준 미역국을 한 숟갈 뜨는 순간,
나는 미소 지었다.
이제야 비로소 안다.
나는 시대를 잘못 만난 게 아니다.
그저, 어떤 시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을 뿐.
이제는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다.
억울함이 아니라, 자부심과 사랑의 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