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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Oct 23. 2024

재미없는 수목원

당진 삼선산 수목원

“최근 갔던 수목원 중 제일 재미없었던 곳이 어디었어?”

“응?” (이건 생각 중인데 들키고 싶지 않다는 뜻)

“나는 삼선산“

“응? 거기가 어디야?”

“그러니까! 그게 재미없었단 거야! 기획자가 기억도 못 하잖아!”


수목원이 잘못한 게 아니다. 8월 중순. 그냥 너무나도 더웠다. 대한민국이 절절 끓어오르던 그 여름의 한 중간에 우리는 땡볕 아래 서 있었다.


하지만 디테일이 좋았다. 수목원에 들어가자 처음 마주치는 '두꺼비 안내판'은 색달랐다. 2-3월에는 새끼 낳으러 이동하고, 5-6월에는 새끼 두꺼비가 이동하고. 친절한 안내판 덕분에 징그러운 두꺼비가 귀여워 보였다. 8월이라 다행이다. 마주치지 않아도 되니까.  



두꺼비 안내판



당진시에서 운영한다는 삼선산수목원은 문을 연지 10년이 안 된 비교적 신생수목원이다. 두꺼비 안내판을 지나자마자 만나게 된 습지원은 환상적으로 이뻤다. 아, 이래서 두꺼비 안내판이 있었구나. 이 습지에 여럿 살고 있겠지. 아마

바글바글하게? 습지는 푸르렀다. 여름만의 푸르름. 찬바람만 살짝 불기 시작해도 볼 수 없을 풍경이다. 연꽃이 폈을 때 더 예뻤을 텐데.. 그래도 지금 개구리밥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땡볕을 피할 곳이 없구나..



습지원, 여름이라 느낄 수 있는 푸르름이 좋았다



습지원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다. 오르는 길 여기 저기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은 노는 재미가, 어른들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겠지만, 오르막 길 덕분에 땀이 비오듯 나기 시작한다. 점점 더 오르게되자 이제 더 이상 못 가겠다는 소리가 절로 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쯤 방문자 센터를 마주쳤다! 뭐라도 마시자! 시원한 거!를 외치며 들어간 카페는 우릴 반갑게 맞아주지는 않았다. 5시가 10분도 채 남지 않았고, 카페는 5시에 닫는다시며 청소 중이셨다. 지금 당장 되는 시원한 음료 한 잔만 주세요(제발)를 외치고는 겨우 한 잔 받아들고는 더위를 살짝 식혔다. 5시.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다... 나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액티비티는 바로 <숲하늘길>이었다.




숲하늘길


땡볕을 가로질러 가는 출렁다리.


“천천히 걸어가봐!”

영상을 찍는 고투어의 주문이다. 천천히? 너무 더운데? 하지만 어쨌든 미션 완료. 에잇, 너두 당해봐라!! 하고는 나도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렀다. 고투어 사진이 한가득 찍혔다. 

출렁다리가 고난의 끝인가 했더니, 더 큰 산(정말 산)이 앞에 있었다!! 전망대로 오르는 비탈길. 길의 한쪽 끝에는 정체모를 길이 조성 중인지, 공사 중인지, 어쨌든 줄을 길게 쳐 놨다. 오르다 보니 안내문이 있었다. 오랜 비로 황톳길이 유실되어 보수 중이라는 것. 아! 요즘 그 유명한 어싱!! (그 후 나는 금강수목원에서 처음 어싱을 해봤다!). 


비탈의 각도는 심했고 땀은 비오듯 쏟아졌다. 전당대가 지척인데, 한 번 꺾어 더 올라가야 한다! 


"아니, 난 됐어. 사양할께. 더 이상은 못 가!!!"

그러나 고투어가 누군가. 나를 끌고 끌고 올라갔다. 


전망대 위에는 당진시 아이들의 꿈이 적힌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 완성-바리스타, 밥 먹고 잘 살아-수의사. 어른인 나의 꿈도 이렇게 쓰고 크고 자라나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내려오는 길에는 갑자기 볼거리가 많아졌다. 대형 어린이 물놀이터가 일단 눈길을 확 잡았고, 그 후 나타난 초대형 어린이 놀이터는 내가 들어가 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이 수목원은 절처히 어린이 중심적인 곳인가보다. 





“산책하기 좋았잖아.”

“산책은 아니지. 등산이지.”

“새로 만들어서 깨끗했고!“

“너무 더웠어..”

“그래, 너무 더웠어..”


그 날의 대화의 마무리. 그러나 항상 고생한 곳이 가장 깊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게다가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재미가 없었지, 어린이들에겐 천국이나 다름 없을 곳이었다. 


Tip. 삼선산물놀이장은 24년 7월 16일부터 8월 18일까지 운영되었다. 오픈 시간은 아침 10시였다. 내년에도 비슷한 날짜에 오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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