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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15. 2023

선생님은 어른이구나.

쉿, 선생님이 사람 되는 중

 처음 발령이 나고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꽤 오래 고민했다. 결론은 젊은 교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거였다. 즉, 친구 같은 선생님을 꿈꿨다.


 생각처럼 친구 같은 선생님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은 예쁘고 착하다며 칭찬일색이었으나, 그 칭찬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다. 나는 아이들의 친구로서 교실에 간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따를 수 있는 교실의 어른으로 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대학생을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는 여전히 어린이였다. 언제나 어른스러운 아이라 칭해졌던 나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오만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어리다 여겼다. 스스로 강하다 생각했던 나는 새로운 상황이 닥치는 매 순간 무너졌다. 안쓰러운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친근한 누나 언니로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고백하자면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으로서의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랐다. 물론 지금은 후회한다.


 내가 그러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어른인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른과 어린이는 무엇이 다를까.


 첫째, 어른은 결정하고 책임질 줄 안다. 어린이는 그것을 모방하며 배워나간다.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원칙을 정한 후에는 엄격하게 그것을 적용해야 한다. 반드시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어른의 선이 존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사회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약속한 것도 지켜야 한다. 자신이 말한 원칙과 약속에 대해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이러한 어른의 모습을 보며 배운다.


 호기롭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내뱉은 선생님이 여기 있다.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칭찬의 시간을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바쁜 일상 속 한 달가량 약속을 잊어버린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물었다. "선생님, 왜 점심시간에 칭찬하는 거 안 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던 선생님은 그날 점심시간부터 칭찬의 시간을 다시 시작했다.


 둘째, 어른에게는 단호함이 있다. 어린이는 망설인다. 아이들은 친구, 가족, 선생님과 관계를 겪으며 망설인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친구에게 피해가 줄 수 있는 행동이야.', '그만.' 단호하게 끊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아이들에게 예쁨 받는 아이 같은 선생님이 아니라, 미움받더라도 잘못된 행동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 선생님이 필요하다. 한 해동안 마주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마냥 웃어주는 선생님은 아직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아이일 뿐이다.


 셋째, 어른으로서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회에서 누구나 지키는 질서를 알려줘야 한다. 아이의 감정을 보듬고 이해해 주는 것은 필요하다. "00 이의 기분이 그랬구나. 속상했겠다."와 같이. 그러나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집중하는 법, 자신의 자리를 깨끗하게 정돈하는 법, 식판에 밥을 담아주는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법, 줄을 맞추어 이동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동료 선생님이 말했다. "그것도 되게 중요한 거잖아요.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알아야 하니까요. 힘들더라도 가르쳐야 해요." 각자의 개성을 버리고 숨죽여 질서를 택하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함께 살아가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받을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 예절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원래 무던한 성격이라며 핑계를 댔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선생님으로서, 어른으로서 가르쳐야 할 것을 무심히 지나쳐온 것이 아닌지 창피해졌다.

 



 많은 후회를 거듭하며 선생님으로서의 상을 가다듬는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나를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책임질 줄 알고, 단호할 줄 알며, 가르칠 줄 아는 사람으로, 어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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