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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16. 2023

선생님도 아플 때가 있다.

쉿, 선생님이 사람 되는 중 

 선생님도 아플 때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직업은 계절마다 감기를 달고 산다. 감기가 유행인 환절기면 반 전체를 돌고 돌아 선생님에게 감기가 도착한다. 그보다 더 자주 겪는 것은 편도염이다. 하루 종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선생님을 우리 모두가 기억한다. 언제나 그 옆에는 조잘조잘할 말이 넘쳐나는 아이들이 함께다. 스트렙실로 아픈 목이 해결되지 않을 때면 이비인후과에 간다. 직업이 교사라서요. 한 마디면 의사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가끔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제발, 내 이야기를 들으라고! 꾹 참고 말한다. 쉿!


 아이들은 경청하는 경험이 부족하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우선 아이들은 세상의 중심이 자기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이제 109쪽의 비행기라는 시를 봅시다. 이 말이 끝나는 순간 일제히 시를 쳐다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그들은 비행기를 탔던 자신의 경험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그중 몇몇은 말한다. 나 아빠랑 7살 때 타봤는데, 근데 거기서... 그럼 저 멀리 앉은 아이가 말한다. 어, 나도. 그럼...


 선생님은 머리가 아프다. 목도 아프다. 그리고 귀도 아프다.


 대부분의 교실에서 선생님 바로 옆이나 뒤에는 스피커가 있다. 영상을 보여줄 때면 아이들은 말한다. 안 들려요, 소리 좀 키워주세요. 선생님은 속으로 울며 스피커 음량을 키운다. 교실에서 줄을 세워 조용해지기까지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 문을 열고 급식실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으로 가는데 갑자기 귀가 멍했다. 귀에서 삐- 소리가 울렸다. 처음 경험하는 이명이었다. 왠지 아이들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몸만 아프면 직업병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다. 요즘 많은 선생님들은 마음도 아프다.


 이대로 도로에 나갔는데 차에 치이면 참 좋겠다. 즉사면 아프지도 않겠지. 우연히 사고가 나면 좋겠다. 내 의지라고 비난받지도 않겠지.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고 도망갔다는 그런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몇 개월쯤 입원해서 쉴 수 있겠지. 학부모도, 아이들도, 동료들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을 거야. 


 손에 꼽을 수 없는 날 동안 이런 상상을 했다. 출근하는 길, 퇴근하는 길이었다.


 학교에서는 유치한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갑자기 교사를 관둬버리고 싶다. 그럼 모두가 당황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부끄러운 날도 있었다.


 잠을 자다가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점점 심해지는 날에는 낮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내가 마음이 약하고 여려서 그렇다고 자책했다. 물론 내가 마음이 돌같이 단단하고 강했다면 언제든 우뚝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많은 교사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 한 목소리를 낼 때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품었던 선생님이 적지 않다는 것이 무서웠다. 이 가슴 아픈 일에서 미운 나는 조금의 위안과 큰 두려움을 얻었다.


 집회에 성실히 참여하는 나를 본 친구가 말했다. 내가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를 그 선생님들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하나의 점이 되어 그 자리에 다녀오고 나면 축 가라앉아 우울해지는 것도 그래서라고. 그는 나에게 동일시하지 말고 일상을 살아가라고 한 조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내가 했던 그 생각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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