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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14. 2023

선생님은 사랑이 서툴러.

쉿, 선생님이 사람 되는 중

 나는 멋모르고 아이들을 사랑했다. 아니, 좋아했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아이들을 잘 몰랐다. 그래놓고 내가 감히 아이들을 사랑했다 말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는 아이라는 존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매우 그렇다에 당당히 표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호감은 쌍방향이었다. 얼굴부터 눈코입까지 둥글게 생긴 나를 보면 어떤 어린이든 활짝 웃었다. 실습 시절에는 지나가던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우와, 예쁘다." 감탄하기도 했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 이야기다. 나는 아이들이라면 마냥 귀여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미소가 나왔고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이면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다. 난 아이 각각의 개체로서 존중하며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작고 귀여운 무언가를 상상하여 내 마음대로 사랑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성격도 감정도 제각각인 존재들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린이라는 틀에 넣어 사랑한다 말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자, 그런 관계나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한다. 이를 살펴볼 때 나는 아이들이라는 나만의 이상을 만들고, 그 이미지를 좋아했을 뿐이다. 이를 후회하듯 써 내려간 것은, 내가 좋아했던 아이들에게 사과해야 해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하나의 이미지에 묶어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는 그들을 가볍게 무시하는 가볍고 부끄러운 사고였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사랑한다. 내가 어린이들이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대강 묶어놓은 한 명 한 명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수업한다. 잘못한 것을 꾸짖는 자리가 아니라면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아이는 극히 드물다. 급식을 먹고 나오는 선생님을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공유한다. 선생님에게는 수많은 아이들 중 한 명이지만, 아이에게는 단 한 명의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역사 수업에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열 가지를 적도록 했다. 조명을 끄고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을 쓴 대본을 읽었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 한 가지씩을 지우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탄성 소리를 냈다. 마치 실제 일어난 일인 듯 가슴을 부여잡고 얼굴을 찌푸렸다. 마지막에서 세 번째 정도 남았을까. 이번에도 포기할 것을 고르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죄송해요." 대뜸 사과하는 아이들이 의아했다. 아이들은 울상이 되어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을 지워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이제 엄마, 아빠밖에 안 남았어요."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밀려왔지만 별일 아닌 듯 씩 웃었다. 부모님, 동생, 친구와 스마트폰까지 소중한 것이 참 많았을 텐데 선생님을 그 자리에 끼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런데 심지어 끝이 보이기까지 나를 지우지 않았다니 놀라웠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그런 관계다.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실내 관람이라 정신없이 아이들을 줄 세워 버스에 탑승하려는데, 밖에서 후드득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다. 우산이 없었던 우리는 머리에 손을 얹고 뛰기 시작했다. 버스 앞에 선 선생님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기억해서 안전히 탑승하도록 돕는 것이다. 내리는 비를 막을 새 없이 못 온 아이가 없는지 수를 확인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 옆에 서서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선생님 비 맞잖아요."


 지금까지 산 세월 동안 나는 나의 비 맞음을 감수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산이 되어준 적이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아픔을 찾아내어 내가 대신 그 아픔을 감내하듯이, 나는 어린이 한 명 한 명의 우산이 되어주려고 노력했을까.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으며, 나는 비로소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생님만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때로 선생님에게 감동과 행복을 준다. 물론 깨달음도 준다.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착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아이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말해주었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매번 말한다. "선생님은 너희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야. 너희가 무슨 행동을 하던 선생님은 너희 모두를 사랑해." 이제 여기에 덧붙여야 할 말이 있다. "그리고 너희 한 명 한 명을 사랑해. 선생님이 누군가 잘해서 칭찬하더라도, 누군가 잘못해서 혼을 내더라도. 우리 반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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