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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15. 2023

선생님은 지금 기분이 안 좋아.

쉿, 선생님이 사람 되는 중

 나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유독 힘겨워했다.


 꼬마일 때, 삼촌이 나에게 옷을 선물해 준다며 백화점에 데려갔다.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당당하게 외치지 못했다.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왜 부끄러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이 싫다고 외치지도 못했다. 열심히 옷을 추천해 주었던 상점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입을 꾹 닫고 있는 나의 모습을 아직도 삼촌은 이야기한다. 얼마나 답답했을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러했던 것을 보면, 태생부터 그러한 성향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생이 된 후 5회기의 심리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정말 힘들었던 일이 맞나요?"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찾아간 상담실에서 그 말을 듣고 나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어 하는 이야기는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바로 내가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를 할 때면 활짝 웃는다는 것이었다. "하하." 상담사는 내가 웃음소리도 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슬프고 화나는 순간을 표출하지 못하고, 내 속을 썩이며 담아왔던 것이다.


 나와 함께하는 키워드는 '밝다.'였다. 밝은 사람이 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나, 상처받는 순간도 있었다. 밝은 게 습관인 사람, 참기만 하는 사람, 너무 착한 사람, 쓸데없이 많이 웃는 사람, 주관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그러했다.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되려면 사실이 섞여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말은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나의 웃음과 밝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게 아팠다. 그 이후로 남몰래 오랜 시간 우울감에 방황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푹 내려갔기 때문이다.


 애인과 종종 다투기도 했다. 애착유형 중 극 회피형에 속하는 나는 일상에서 생기는 서운함을 표현하기 어려워했다. 여기에서 애착유형이란 주로 양육자와 관계를 맺었던 방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타인과 애착이라는 강한 정서관계를 형성하는 유형을 말한다. 케케묵은 화를 한데 모아두었다 마구 퍼붓는 내가 스스로도 속상했지만, 수차례 반복되었다. 바르게 말하자면 나는 서운함을 표현할 수 없었다. 서운함을 그때그때 표출해 본 경험이 전무해서 표현 방법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사고 회로라는 것이 평생 해왔던 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나의 사고 회로는 '속상함이 느껴짐'을 홀로 도착한 방 안에서만 느끼도록 습관화되어 있었다.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묻고 공감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 전달법'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설명하기도 했다. 대강 '그만해. 지금 네가 이런 행동을 하니 나는 이런 기분이 들어.'라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갈등을 겪을 때면 나 전달법으로 사과하도록 유도했다. 대체로 아이들이 겪는 갈등이란 서로가 동의하지 않는 장난에서 시작하는 것이어서 예시를 충실히 따를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금세 나의 감정을 전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네가 그러니까 기분 나빠. 그러니까 하지 마." 그러나 아이들은 돌아서면 다시 같은 이유로 싸웠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아이들이 나 전달법의 효과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행동의 강력함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경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단 한 번도 교실에서 선생님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00아, 그렇게 말하니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네."


 선생님이 본인의 기분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는 순간, 아이들은 얼어붙는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선생님의 감정을 귀로 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정 표현의 강한 힘을 경험한다.



 

 그리고 선생님도 얼어붙는다. 난생처음 내뱉은 말에 소름이 돋는다. 선생님은 그 이후로도 수차례 그 말을 반복하며 익힌다. 드디어 교실 밖의 삶에서도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이전 07화 선생님도 아플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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