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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17. 2023

2023년 여름 어느 날의 일기 두 번째

쉿, 선생님이 사람 되는 중

 웃기지 않냐고. 어제의 내가 고작 이런 오늘의 나를 선사했다는 게.


 요즘 하루하루 나의 나약함을 느껴. 그게 무슨 말이냐면,


 건강에, 가족에, 친구에, 애인에, 학생에, 업무에, 학부모에 나약하다고. 그러니까 결국 나약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는 거지. 매번 다채롭게 느끼는 게 포인트랄까? 심지어 중요한 건, 나의 삶에도 나약하다는 건데.


 어제 최유수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글에서 그러더라고. 나의 삶은 나보다 크다고. 그 말이 아주 조금 위안이 되더라. 고작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삶이지만, 초라한 기분인 지금의 내가 삶의 작은 조각일 뿐이라는 게 납득이 되더라고.


 오랜만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봤어. 슬픔 때문에 기쁨을 잊지 말라고 하대. 그렇지, 슬픔 한 바가지 속에 기쁨 몇 방울 떨어져 있는 게 인생일까? 그 말이 맞는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려나.


 생각해 보니 요즘 영화를 참 많이 보는데, 백만 엔 걸 스즈코도 봤어. 우울하기도 자유롭기도 한 영화인데, 맥락과 벗어난 생각이 들었어.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스즈코가 나는 부럽더라고. 자신의 결심에 따라 주거지를 옮길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어.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거니까. 그게 무서워서 나를 던지지 못하면 그야말로 재미없는 인생이 아닐까. 삶에서 어떤 재미를 추구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나는 스즈코 같은 용기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어.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를 이야기하잖아. 결론은 인생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운명, 신념, 이상은 모조리 만들어진 것이라, 거꾸로 말하면 반드시 해야 할 무언가도 없다는 이야기지. 나는 키치를 떠올리며 내가 가진 이상과 욕망은 무엇인지 생각해 봤어.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도 그때그때마다 순간의 나에게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은 했어.


 덧붙여 다짐했지. 관계든 상황이든 피하지 말고, 견디지도 말고, 한 몸이 으스러지게 부딪히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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