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생각하는 경찰
경찰관이라는 직업을 갖고 생활한 지 벌써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신임 경찰 때는 세상 모든 범죄를 모두 해결할 것처럼 달려들었다.
정의롭다고 생각하면 일단 돌격!
도주하는 음주운전 차량을 막겠다며 달려들다 치여서 위험할 뻔했고,
지나가는 시민에게 큰소리로 욕설하는 주취자에게 같이 욕하고 감정을 앞세워 즉결심판절차를 행하기도 했고,
뻔뻔한 범죄 현장에서는 앞, 뒤 없이 강제 제압 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아쉽다.', '위험했다.'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범죄자 검거보다는 나와 동료의 안전을 우선 했어야 했고,
주취자의 속마음을 좀 더 들여다봐야 했고,
형사 절차의 정당성을 깊이 들여다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신임 경찰관으로 처음 현장에 나섰을 때보다 다양한 사건 경험을 했다.
'현장에서 좀 더 덜 긴장한 채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여유 정도가 생겼다고 할까?'
경찰 동료 가운데는 위험한 현장에서 적극적 경찰 활동으로 순직하기도 하고 장애를 입기도 했다.
잠깐의 관심이 우리를 위로 하지만 곧 희미해진다.
어떤 동료는 경찰관의 신분을 망각한 채 범죄로부터 시민 보호를 실패하기도 했고, 본인 스스로 범죄 하기도 했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나는 경찰관으로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범죄 현장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며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강한 경찰관?
적당하게 나를 살피면서 책임 회피할 수 있는 정도의 일만 하는 소극 경찰관?
아니면 신체적, 행정적 위험이 가장 적을 것 같은 부서로 이동?
사실 답은 없다. 모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찰관도 사람임을 뜻한다.
범죄현장에서 다치는 경찰관을 국가에서 끝까지 책임져 주지 않는 이상, 현장에서 도망하는 경찰관은 계속 나타날 것이고,
적극 경찰 활동 중에 발생한 실수(절차적, 행정적, 물리적)를 '국가가 책임지겠다. 개인의 불이익은 불문으로 한다.'라는 명시적 법률이 없는 이상, 소극 경찰관(책임 회피 될 정도의 업무 수행 하는)은 우리 주위에 남아있을 것이다.
이런 부정적 현상이 합쳐지면 현장은 '모두가 떠나고 싶어 하는 곳'으로 남겨질 것이다.
경찰은 누가 뭐라 해도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의 안전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경찰관 이전에 사람이다.
가족에 대한 생각, 범죄 현장의 두려움, 책임 회피에 대한 대응 등을 생각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모순되지만 가족 때문에, 이웃 때문에, 동료 때문에 현장으로부터 도망하는 경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을 생각하고, 아이들의 웃음을 생각하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고, 인사하는 이웃, 등등
이러한 평화로운 일상을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해 나는 경찰에 투신한 것 아닌가?'
범죄와의 대결에 있어서 여러 가지 조건이 현장에 있는 경찰관에게 불리하다.
하지만 범죄로부터 가족, 이웃, 동료를 지킬 수 있는 것이 바로 현장 경찰관이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경찰관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경찰 제복을 입고 현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