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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Apr 15. 2024

뮤텔 주교 앞 구마실 신부의 보고서②

[신축항쟁 뒷이야기-13] 濟州島辛丑年敎難史 (부록) 발췌

김옥희 저 <濟州島辛丑年敎難史> 부록(번역)에서 발췌. (본 번역에서 전후 의미 전달이 모호한 부분도 있지만, 번역 원문의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겼음)   
具마실 신부가 서울에 있는 조선교구장인 뮤텔 주교에게 보낸 보고서의 불어 원문.

매일 목사(牧使)는 폭도들과 함께 행동하라는 편지를 받았으며, 날마다 위협과 협박의 편지들이 성내(城內)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음력 4월 6일경에 중요한 그리스챤 신자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성내에 내렸으며 그들을 폭도들에게 보내라는 명령도 내렸던 것입니다.      


대정(大靜)의 군수(郡守)¹⁴가 성내에 들어왔던 것이었고 목사관(牧使館)에서 유숙(留宿)하였습니다.     

7일 무렵에는 그리스챤들에게 쌀과 나무 등 무엇이든지 제공 공급하라는 것을 폭도들이 성내(城內) 사람들에게 금지시켰습니다.     


같은 날 저녁에 성내의 폭도들의 두목은 신자들이나 우리들과 함께 교류하였던 사람들을 찾는 작업을 폭도들에게 실시하였습니다.   

  

8일에는 어떤 이교도(異敎徒)의 하나가 동문(東門) 곁에 해가 뻗친 화약고의 지붕에 불을 던졌습니다. 이 불은 오랫동안 큰불을 내었고, 세 사람의 그리스챤들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악질의 나쁜 사람이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한 신자는 이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면서 이 사실에 대한 이교인(異敎人)들을 고소했습니다. 부인들은 관덕정 광장에 와 성내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서운 소동을 일으키면서 이 그리스챤을 죽이려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다른 그리스챤들은 부인들과 몇몇 사람들이 죽이기를 원하는 이 신자를 구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나는 바로 그때 도착하였으며, 내게 알렸던 그 신자를 견책하였으나 군중들은 점점 더 사나워졌으며 거의 마술사들과 흡사하였습니다. 나는 그를 구하기보다는 그 군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 신자를 목사(牧使)의 집에 데리고 가서 그에게 곤장을 치도록 했습니다. 그가 충분히 벌을 받았을 때 군중들은 해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결코 부르짖지 않은 맹렬하고 거친 한 파당(派黨)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이 파당의 두목인 김남학(金南鶴))¹⁵이라고 이름하는 자가 앞으로 나오면서 말하기를 “백성들은 한 개인이 벌을 받기를 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문(城門)을 열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위험한 것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고 가버렸습니다. 한순간 뒤에 사람들은 나에게 알리기를 우리 예비자 한 사람이 아직도 관덕정에서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잡혀있다고 하기에 가보았습니다. 그는 체포되지는 않았으나 “성문을 열라”고 청하는 울부짖는 군중들에게 강제로 대답을 강요당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군중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만일 음력 이달 15일까지 구원병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나는 스스로 성문(城門)을 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남학(金南鶴) 폭도의 두목은 이 날짜는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서 부인들에게 더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청하기를 음력 이달 11일까지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한다, 안 한다는 대답을 하지 않고 승낙했습니다.     


우리들은 음력 4월 10일에 있었고 나는 9일에 사람들을 조용하게 무마시키기 위해 대정(大靜) 목사(牧使)에게 잘 할 수 있는 그의 가능성을 간청하였습니다. 나는 자주 그곳의 목사를 보러 갔고, 폭도들의 배후에서 위태롭게 되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챤들과 함께 어떠한 만남이나 접촉도 원하지 않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해안에서 중앙으로 모든 희망을 돌렸습니다. 높은 성곽에서 우리들은 기선의 지나감과 도착함을 보았습니다만 그것은 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그 시간이 길었는지요! 밤낮으로 우리들은 식사를 할 시간도 없이 때로는 뛰었고 때로는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서울에서는 어떤 구원도 오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쌀이 떨어졌다고 불평하였습니다. 나는 쌀 상인들에게 혹시 그들이 좋은 쌀이 있는 데를 알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상인들은 나누기를 승낙했습니다. 나는 우리들이 구원을 받은 후에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이자로써 갚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목사(牧使)가 그들에게 공적으로 그와 같은 것을 할 것을 공포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그들은 승낙했습니다.      

구마실 신부

나는 목사에게 그것을 알렸는데 목사는 깨끗하게 거절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쌀이나 돈을 백성에게 구할 수 있도록 서울에서 한 변화를 나에게 제공하도록 청했고 그에게 모든 구실을 말했으나 목사는 깨끗하게 거절했습니다.      


10일 나는 나의 모든 가능성을 다하여 훗날 모든 불행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대정(大靜)의 목사는 그가 성문(城門)을 열지 않도록 책임지겠다고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10일 밤중에 사람들은 목사(牧使)와 군수(郡守)들이 우리들의 가장 훌륭한 군인 다섯 사람의 머리를 청하는 폭도들의 청(請)에 똑바로 응해야 해결된다는 것을 말하려 우리들의 가장 훌륭한 총사(摠師)에게 왔습니다.     

한 사람이 나에게 피난에 대한 허락을 청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것을 하도록 동의했습니다. 두 시간 뒤에 나의 예비자는 피신하는 허락을 나에게 청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나는 가장 귀중한 것들을 안전하게 놓아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문제만(文濟滿) 신부에게 그것을 알렸습니다. 나는 또 요새로 얻었던 성곽 위에서 밤샘을 하면서 지키고 있는 신자들에게 알리려고 갔습니다. 내가 그 신자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서로서로 나에게 피신하기를 청했습니다. 그들은 소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들에게 모든 소란이 야기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켰습니다.      


한편 음력 4월 10일과 11일의 온밤 중에 8명의 부인들이 성내에 뛰어 들어와서 모든 성내(城內)의 부인들과 합세하여 손에 몽둥이를 들고 관덕정(觀德亭) 위에서 아침식사 후에 회합하게 했습니다. 

   

무서운 위기의 때였습니다. 그 여자들은 절대로 그리스챤들과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15일까지 연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 대정(大靜)과 성내(城內)의 두 목사(牧使)에게 아침에 물으러 갔습니다. 나는 이 새로운 계획에 승낙을 얻기 위하여 내가 불리워질 것을 예상했고, 나는 스스로 11시경에 그들에게 나의 호조(護照)를 돌리게 될 것이고, 나는 체포될 것입니다. 모든 부인들은 조금 일찍 관덕정(觀德亭) 위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묵주신공(黙珠神功)¹⁶을 바쳤습니다. 정오경에 목사는 나에게 그의 쪽지를 보냈으며 그는 나에게 백성들에게 몇 마디 좋은 말을 하기를 원한다고 청한다는 것을 나에게 말하였습니다.나는 군중들이 모여 회합하였던 그곳으로부터 목사에게 갈 것입니다. 모두들 나의 앞에서 부르짖었고 나는 몽둥이로 무장한 부인들과 두 사람이 울타리를 만든 가운데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나는 목사에게 똑바로 갔었고, 그에게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폭도들은 우리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힘이 센 다섯 사람의 머리를 청한다고 했으며, 제주 성내(城內)의 백성들은 폭도들에게 복종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 제주 성내(城內)가 자유롭게 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면 폭도들은 성내에 들어오지 않고 모든 것은 더 잘 풀릴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목사(牧使)는 나에게 그가 아프기 때문에 백성에게 말할 기운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스스로 백성들 곁에서 앞으로 나서면서 폭도들의 성내 두목에게 말했습니다. “만일에 당신들이 나의 말을 듣기를 원한다면 나는 말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입을 다물겠다. 당신들은 내 말을 듣기를 원하는가, 아닌가”     


“만일 당신의 말에 책임진다면 나는 당신의 말을 들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듣지 않겠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매우 좋다. 우리들은 들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주교(主敎)님 나는 나의 앞에 있는 군중들의 모양에 대하여 쓰기를 우너합니다. 20세에서 60세, 70세의 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의 하나와 또 다른 무서운 사람들이 웃으면서 다섯 사람 신자(信者)들의 <머리>를 청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말했습니다. 그들은 듣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잠깐동안 목사에게 가서 말하기를 청했습니다. 내가 목사에게 고통스럽게 몇 마디 말을 하자, 나는 군중들의 단말마적인 부르짖음과 무서운 움직임을 들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대답하기를 백성들은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있는 그의 두목이 그에게 나쁜 말을 하였다고 한 데 대하여 불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무슨 나쁘거나 혹은 악한 말을 했던간에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군중 가운데를 지나서 목사관(牧使館) 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나는 거기에서 김 신부(神父)의 교리교사(敎理敎師)인 박(朴)고스마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매를 맞고 숨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여러 번 “나를 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한 늙으수레¹⁷한 사람(회색수염을 가진 그리 크지 않고, 둥글고, 뚱뚱한 사람)이 그의 막대기를 들고 박자를 맞춰가며 사람들을 밀었습니다. 군중들은 그의 부르짖음과 그의 움직임에 따라서 움직였으며 그의 운동은 나를 박살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 몇몇 성내(城內)의 사람들이 황급하게 나를 밀고 나를 떠밀어 갔습니다. 목사와 순찰대의 도움으로 나는 한 방에 놓여졌습니다. 그들은 입구를 지키었고, 나는 그 안에서 뭇세 신부(神父)가 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시간 동안에 그리스챤들은 이러한 광경에 대경실색을 하였고, 도망하기는 아주 불가능했으며 성내의 주민들을 학살하기 위한 힘은 충분하였으나 박살과 묶인 채로 남게 되었습니다.     

대정군수(大靜郡守)와 제주 성내 목사(牧使)는 여기저기서 사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을 주었습니다. <계속>   


<옮긴이 註>

¹⁴군수(郡守)-대정현 군수(大靜縣 郡守) 채구석을 말함.

¹⁵김남학(金南鶴)-퇴기 만성춘(滿城春), 만성월(滿城月)과 함께 주동이 돼 민군의 입성을 위해 제주성문(濟州城門)을 연 사람으로, 후에 사람들은 그를 개문장두(開門狀頭)라 불렀음.

¹⁶묵주신공(黙珠神功)-묵주를 가지고 성모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 사도신경으로 시작하여 주의 기도와 영광송을 곁들이며, 성모송을 외워 나가는 기도이다.

¹⁷늙으수레-늙수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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