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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an 08. 2024

슌옥(順玉)의 경력

리제수실긔-夜月의 한라산

사방은 적적하야 쥭은 듯 밤은 고요하고 산방굴사 야반의 종소래는 줄줄나리난 구진비 소래에 섞기여 죠고마한 초가집 안방에 누어잇는 슌옥의 귀에난 처량하게도 들닌다.     


슌옥은 무슨 생각이 그러케 만흔지 남들은 다 잠을 자는 졍밤즁까지 한잠도 일우지 못하고 연연한 약질에 번민인 듯 고민인 듯 그 수심에 싸인 얼골은 누가 보든지 즁병을 칠우고 겨우 일어난 사람 갓헛다. 스무사흘 새벽달은 창틈으로 빗츄어 벼개우에 고요하고 토벽에서 직직하는 실솔성¹은 간단업시 읍졸으며 꼭기요 나래를 턱턱 치난 닭의 울음은 날 밝기를 제촉하야 수심인 듯 번민인 듯 전전불매²하는 슌옥의 가삼을 자극한다.     


년긔³ 십오세 겨우된 슌욱은 아모리 팔모으로⁴ 뜨더보와도 활발한 긔상은 한점도 업는 것 갓햇다.      


슌욱은 항상 고대소설에 착미⁵하야 심청전 한 권을 밥맥을 때를 제하고난 어느 때던지 손에 놋치지 안이하고 보는 특성이 잇다.     


(아, 심청은 어린 가삼에도 망목⁶된 부친을 위하야 자긔 몸을 스사로 고양미 삼백 석에 팔니여 어두운 눈을 다시 밝게 하얏다. 그러니 이 세상 사람은 남자녀자 할 것 읍시 지성이면 감쳔이다. 나도 옵바의 억울한 일을 어서어서 하로밧비 신원을 하여야지 우리 옵바는 이십오 세 청년으로 도탄에 든 제쥬백셩을 위하야 악마갓흔 폭도를 소멸하고 음흉한 불난서 선교사 무리를 구츅⁷하야 립신양명⁸ 하기는 고사하고 간인의 음해를 입엇는지 불난서 선교사 무리들에 잡혀 쥭엇는지 한 번 가신 후로 오날까지 아모 소식이 업스니 참 억울하기가 가이 업다. 엄마니께서는 저러케 날마다 수심걱졍으로 눈물이 마를 사이가 업고 집은 넉넉치 못하야 겨우 지내난대 이 일을 엇지하면 선원⁹할꼬) 하고 날이 가면 갈사록 더욱 번민하얏다.   

  

살가치 빠른 새월은 물가치 흘너 어느듯 가을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또다시 가을이 와서 슌옥이 년긔난 삼십삼 세에 일으럿다. 일구월심¹⁰ 그의 수심은 깁흔잠 들기 전에난 잇치지 못하얏다.    

  

슌옥녀사는 정든 고국과 사랑하는 엄마니 실하에 떠나 산 설고 낫선 만리해외에 한 개 외로운 손이 되얏다. 슌옥녀사는 곳 그의 친척이 류숙하는 대판시 히가시구 가라호리¹¹ 좌도화 집을 차저서 쥬인을 졍하고 제봉업을 시작하얏다. 그러나 그 역시 원만한 점을 얻지 못하얏다.     


그의 당초 해외로 건너온 목적은 금젼을 모와서 옵바의 억울한 행적실긔를 져술하야 세상에 반포하고저 하얏섯스나 금전을 모힐 수가 업다 금전을 모힐 수 업는 이상에는 옵바의 실긔를 저술할 수 업다. 옵바의 실긔를 저슐하야 세상에 반포치 못한 순옥은 수심이 병이 되야 점점 난치지경에 일으럿다.     


대저¹² 병이란 것은 올 떼에는 소래업시 오되 갈 때에는 반다시 무형적으로 물너가지 안이하야 각종의 약으로 구츅하여도 상당한 시일을 허비하며 적지 안흔 금전을 소모할 뿐 안이라 심지어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고 마는 것이다.    

  

이 즁병에 걸닌 슌욱은 생래 초면인 만리타국에서 홀홀단신 고독한 몸으로 생할이 곤란한 즁에 설상가상으로 난치지증이 되야 긔거동작¹³이 자유롭지 못하야 해음읍난¹⁴ 눈물은 시름읍시¹⁵ 나려 고국 부모형제를 생각할 때에 쇠약한 졍신은 각금 념나국¹⁶을 꿈꾸엿슬 때가 한두 번이 안이다. 여간¹⁷ 가졍방약¹⁸으로 치료는 하여 보왓스나 죠금도 효력이 업서 점점 위즁하야 실네 동작도 불능이다.

    

이 비경에 빠진 슌옥은 간신히 동구¹⁹ 구장(마쓰이상)을 방문하고 자긔 병세와 생활상태를 일일히 애원하얏다. 마쓰이상은 인류애의 동정으로 무료치료권을 교부하야 적십자병원으로 지도하엿다. 무료권을 바든 슌옥은 메일 삼십정²⁰ 거리나 되는 병원에 단여서 복약한 지 일 개월 만에 전치 되얏다.    

 

몸이 전치된 슌옥은 옵바 일에 더욱 정신이 솔니여²¹ 간간히 숙증²²이 발할 때는 실진²³한 사람 갓다. 옵바의 신원활 생각이 뇌수까지 박힌 슌욱은 금년에 일으러 그의 죵질 십일세 된 응백으로 그의 옵바의 계후²⁴까지 하얏다.     


대저 녀자는 그의 남편을 위하야 희로애락을 한가지 하야 남편이 불행히 즁병에 걸니거나 사망할시난 혹 단지²⁵도 하고 죵사²⁶도 하난 일은 간간히 잇지도만은 이슌옥녀사는 반평생을 두고 그의 옵바 신원할 생각이 한시도 쉬지 안이하고 한갈갓치²⁷ 오날까지 일으러 간혹 자긔 처소에서 목욕제계하고 정한수를 밧들어 천지에 암축²⁸하난 일도 잇다.     


<옮긴이 註>

¹실솔성(蟋蟀聲)-귀뚜라미 울음소리

²전전불매(輾轉不寐)-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

³년긔 (年紀)-대강의 나이

⁴팔모(八角)으로-여러모로

⁵착미(着味)-취미를 붙임

⁶망목(亡目)-盲·눈이 멀다

⁷구축(驅逐)-몰아서 내쫓음

⁸립신양명(立身揚名)-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침

⁹선원-신원(伸冤·원통한 일을 풂)의 오자로 보임

¹⁰일구월심(日久月深)-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

¹¹가라호리(空堀)-특히 월정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오사카 동네이름

¹²대저(大抵)-대체로 보아서

¹³긔거동작(起居動作)-일상적인 생활에서의 몸의 움직임

¹⁴해음읍난-‘하염없는’의 옛말

¹⁵시름읍시-아무 생각없이

¹⁶념나국(閻羅國)-염라대왕이 다스리는 나라, 저승

¹⁷여간(如干)-어지간히 생각할 정도로

¹⁸가졍방약(家庭方藥)-민간의 한방처방

¹⁹동구(東區)-오사카 히로시구, 지금의 오사카성 남단부에 위치하는 지역

²⁰삼십정(町)-약 3.3km(1町=0.109091)

²¹솔니여=쏠리어-끌리어 집중되어

²²숙증(宿症)-오랫동안 앓은 병

²³실진(失眞)=실성(失性)

²⁴계후(繼後)=계사(繼嗣)-양자로 대를 잇게 함

²⁵단지(斷指)-가족의 병이 위중할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이는 일

²⁶종사(從死)-죽은 사람의 뒤를 따라서 죽음

²⁷한갈갓치=한결같이

²⁸암축(暗祝)-남의 행복을 참된 마음으로 빎       

이명복 화백이 그린 이재수 장두의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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