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훈 Jan 01. 2024

탄원서

이재수실긔, 夜月의 한라산

탄원서⁰

어리석고 미혹한 어린 기집아헤가 각하젼에 활달스럽게 무슨 말삼을 올니리가 만은 원통한 마음으로 목슴을 앗기지 안이하야 생전에 슯흐고 애달분 말삼을 소녀의 둔필로 입을 대신하와 원정¹을 올니오니 각하께옵서 빗날갓치² 인간을 하찰³하시와 어름이 녹는 것과 가치 해결하야 쥬시옵소서.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에 집은 본래 가난하야 생활이 겨우 면사⁴할 따람이오나 부친님은 일즉 쥭어 업슴으로 다만 엄마님과 오라버님과 소녀 등 삼인이 질겁게 거생⁵하는 즁 지난 신츅년 셩교도란⁶에 인민이 교도에게 압박을 바다 한시라도 유쾌한 생활을 할 수가 업스며 크게 소동이 되얏난 쳐에 소녀의 오라바님은 당년이 이십오 새인데 민정⁷을 패이기⁸ 위하야 도내의 인민을 린솔하고 스사로 선봉장이 되야 왕성한 셩교도 폭도를 쳐 팽졍할 때에 모든 인민의 철쳔지 원통과 인정을 패여 해결식히며 함셩⁹하야 주려쥭는 백성을 구원하야 잇난 후 수일이 못되야 리왕¹⁰ 전하 어전에서 호츌하야 상경한 후에는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업난고로 엇더한 사실에 사형을 바다 쥭엇는가 의심하야 집을 떠난 날로 긔일¹¹을 정하고 제사를 시행하나 남녀간 후¹²가 업난고로 모친님이 풍속을 좃차 향제¹³하옵난대 긔제일¹⁴ 당하면 수삼 일 전부터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잇치지 못하야 쥬야를 물론하고 나는 것은 한숨이요 흘으는 것은 눈물이요 들니는 것은 울음소래 뿐이온대 항상 듯는 바 그- 슲흔 소래에 잇스되     


"유명무실한 제쥬목사의 비석은 곳곳마다 세워 잇것만은 엇지 하야 도탄 즁 들어잇는 일반벡셩의 원을 풀며 인졍 패여쥬든 내의 아달의 비석은 읍스며 리제수전¹⁵이라 하야 내 아달의 행적잡지난 사람마다 바다 읽는 말이 잇지만은 그 사람들이 엇지하야 나의 귀밋해서는 읽어 알으커쥬지 안이하느냐 지금 나의 사랑하난 내 아달이 이 세상에 사라잇나 쥭어잇나 내 아달을 내가 쥭어 하늘나라로 돌아가면 맛나볼 수 잇슬가 답답하다 이 세상 사람들 나의 아달을 아모 죄도 업시 어대로 보내여 나의 간장을 끈난고" 하며


반생반사라 온 정신이 혼혼하야¹⁶ 생사를 분별키 어려운 때마다 소녀가 항상 간유하며¹⁷ 말유하다¹⁸가 지금은 칠십 당년이라 금일명일 일생사가 알 수 없난고로 소녀의 늘근 모친님 일생의 철쳔지 원통을 해결하야 쥬시기를 업대여 살외오니      


각하께옵서 하감¹⁹하시와 후업고 애무한²⁰ 소녀의 오라바님의게 인정을 표하시와 늘근 모친의 마음을 만분지일이라도 위로되게 하야 주시옵소서.     


소화삼년²¹ 이월 이십륙일


제주도 대정면 인셩리

리슌옥    

 

조선총독²² 각하   

1931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夜月의 한라산' 출간비용을 모우던 시절의 이순옥 여사
신축년 제주민중항쟁의 장두 손아래 누이 이순옥은 오빠의 의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재수의 실기 ’야월(夜月)의 한라산‘을 준비했다. 그녀는 국내에서 자신의 책을 출간할 방법이 없자 오사카로 건너가 바느질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은 후 한경면 낙천리 훈장 출신 조무빈(趙武彬) 선생을 찾아갔다. 그녀의 구술원고를 다듬은 조무빈 선생은 1931년 오사카에 있는 중도문화당(中島文華堂)에서 <야월의 한라산-이재수의 실기>를 출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옮긴이  註>

⁰군국주의 시대, 일제의 조선총독은 육군과 해군 대장 중에서 임명되었다. 일왕 직속이라 일본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모든 정무를 통괄하는 행정권을 비롯해 군사통수권, 입법권, 사법권도 장악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왕직과 조선귀족 감독권도 갖고 있어 명실공히 한반도에서 ‘왕’과 같은 존재였다. 이순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총독에게 탄원서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총독 각하는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식민지 시절 내내 일제와 천주교는 정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했다는 걸 변방의 스물두 살 섬처녀 슌옥 씨가 알 리 없었다.

¹원정(原情)-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함. 또는 억울한 사정.

²빗날갓치=햇빛같이

³하찰(下察)-아래를 두루 살핌.

⁴면사(免死)-간신히 죽음을 면함.

⁵거생 (居生)-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아감.

⁶신축년 셩교도란(辛丑年 聖敎徒亂)-대한제국 광무 5년인 1901년 신축년, 조세 수탈과 프랑스 선교사를 앞세운 천주교회의 폐단에 맞서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⁷민정(民情)-①국민들의 사정과 생활 형편 ②인민의 마음.

⁸패다-'펴다'의 방언

⁹함셩(陷城)-성을 쳐서 함락함.

¹⁰리왕(李王)=순종(純宗)-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된 이후에는 일본 군주의 신하로서 왕공족 중 이왕가의 수장인 이왕(李王)으로 불렸다. 순종은 고종의 유일한 적자(嫡子)로 명성황후 여흥 민씨 소생이다. 단, 탄원서의 리왕은 고종을 말함.

¹¹긔일(忌日)=제삿날.

¹²후(後)=후사(後嗣)-대를 잇는 자식.

¹³향제(香祭)-향을 살라 제사를 지냄.

¹⁴긔제일(祈祭日)=제삿날.

¹⁵리제수전-이재수전(李在秀傳)

¹⁶혼혼(昏昏)하다-정신이 가물가물하고 희미하다.

¹⁷간유(懇諭)하다-깨닫도록 간절하게 타이르다.

¹⁸말유하다=만류(挽留)하다-붙들고 못 하게 말리다.

¹⁹하감(下瞰)-위에서 내려다봄.

²⁰애무한=애매한-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한

²¹소화삼년(昭和3年)=1928년

야마시나 한조 총독

²²제4대 조선총독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로 재임기간은 1927년 12월 10일부터 1929년 8월 16일까지였다. 야마나시 한조 총독은 예비역 육군대장 출신으로 평소 돈을 밝혀 ‘배금장군’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부임 전부터 조선총독 임명에 대한 배척운동이 일었으며, 육사시절 그의 단짝이었던 다나카의 도움으로 겨우 임명됐다. 그 후 부산 미두거래소(米豆取引所) 설립허가를 둘러싼 5만 원 뇌물수취 사건인 소위 ‘야마나시 총독 독직(瀆職)사건’에 연루되어 사임하였는데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석방되었다. 총독 재임시절 본국과의 왕래 때 ‘배 타기가 싫다’며 울산과 여의도에 비행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특이한 외모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참고>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한국통감으로 임명했다. 이토는 소위 ‘보호정치’를 표방했으나 사실은 전면 통치의 전초단계였으며, 1910년 마침내 한반도를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대한제국을 ‘조선’으로 개칭한 후 통감부 대신 총독부를 설치해 영구통치에 나섰다. 조선총독부의 수장인 총독은 일왕이 임명한 친임관으로 일왕의 대리권자였으며, 본국의 내각총리대신과 동급이었다.    

 역대 조선총독 출신 가운데는 본국으로 귀환 후 내각총리대신으로 대개 승진할 정도로 조선총독 자리는 당시 일본 정계에서도 그 위상이 높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의열단에서는 조선총독을 7가살(七可殺)의 제1호로 삼았다.


이전 08화 이재수 등 삼의사의 상경 담판사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