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희 언니께 (네 번째 편지)
한 번은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어머니께서는 저희가 너무 힘들까 봐 우리 집에 살림을 도와주러 오셨어요. 남편을 통해 여러 번 거절의 의사를 전했는데도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꼭 도와주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리고 수술 후에 회복이 더뎌서 침대에 누워 꼼짝도 못 하던 제게 살림을 가르치고 싶어 하셨어요. 그땐 약간 힘들더라고요.
“아니야, 얘는 병원만 왔다 갔다 하고 노상 침대에 누워만 있는데 뭐가 힘들어? 회사 다니랴, 옆에서 안사람 아픈 거 돌보랴, 애들 챙기랴 큰애가 힘들지. 집에 환자가 생기면 원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잖아. 그러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애가 얼굴색이 시커멓고 엄청 야위었어. 정말 속상해서 죽겠다니까. 근데 정말 얘는 왜 이렇게 회복이 더딘 거야? 원래 결혼하기 전부터 몸이 약했던 것 같아.”
어머니께서 이모님이랑 저에 대해 말씀하시는 전화통화 내용을 듣게 된 것은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고등어를 손질해서 조림을 준비를 하시다가 막 조리한 뜨거운 그 음식을 오빠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가 떠오르셨던 것 같아요. 제 산후조리 때 그러셨던 것처럼요. 밥 때는 벌써 지났고 기운이 없어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제게 오셔서는 남편이 오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하시면서 “기다릴 수 있지?” 하고 물으시던 어머니의 표정과 그날따라 퇴근이 늦어지던 남편, 할머니가 무서워서 차마 말도 못 하고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있던 제 옆에 와서 잉잉거리며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리던 정호와 민호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불길하게도 점점 검푸르게 변하고 있는 수술 자리를 살펴보고, 붕대 안쪽에 피와 진물로 더러워진 거즈를 교체하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들어오셨다가 깜짝 놀라서 도로 나가셨어요.
“얘야, 애들이 너 아픈 거 모르게 신경 좀 써라. 응? 거즈를 갈려면 문을 잠가야지. 정호가 너 수술 부위 보면 얼마나 충격받고 힘들겠니? 걔가 상처받으면 너 어떡할래? 그리고 집 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애들이 그늘이 진다니까. 네가 힘들고 아플수록 더 웃고 집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기 위해서 애써야 돼. 정호하고 민호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거라. 그리고 애들이 주눅이 들 수도 있으니까 동네에 소문나지 않게 조심하고, 이웃이나 애들 친구 엄마가 너 아픈 거 알지 못하게 꼭 신경 쓰거라. 알겠니?”
저는 그때 시어머니께서는 한 번도 “우리 엄마”였던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싶더라고요. 오랫동안 의심만 해 온 남편의 외도 사실을 제 눈으로 확인하면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어요. 미련 없이 이렇게 힘든 일은 그만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차분한 목소리로 어머니께 앞으로 그만 도와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께서 힘이 드셔서 그러실 테지만 심하게 짜증내시고 화내셔서 제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사무적으로 단정하게 말씀드리는 일 따위는, 이제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난 이제 시댁에 가지 않을 거야. 시부모님을 뵙고 싶지 않아.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
“여보, 당신이 우리 부모님 좀 봐드리면 안 돼? 저번에도 봤잖아. 그래도 어머니는 당신을 참 좋아하셔. 알잖아. 당신도 알지? 우리 부모님께서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어? 그리고 며칠 지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그때 얘기해.”
저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잠깐 내 귀를 의심했다가 한숨을 쉬고는 남편에게 말했어요.
“진짜 개좆같다.”
“뭐라고?”
“개좆같다는 말 몰라? 사전 찾아봐. 표준어니까.”
저는 언제나 침착하고 다정하고 순한 며느리의 가면을 벗어서 발로 쾅쾅 짓밟고 불에 태운 다음 잘 모아서 카페모카 위에 휘핑크림 대신 얹어서 마셨어요. 포기라는 것을 모르는 시부모님들은 어떻게든 나를 다시 그 틀 안으로 구겨 넣으려고 하실 테지만 그렇지만 저는 이제 안 져 드릴 거예요.
마침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와 천둥이 치는 밤이었어요. 간식을 먹다 말고 제가 베란다로 천천히 걸어 나갔어요. 연장전 지나 승부차기로 간신히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쥔 선수처럼 너덜너덜해져서는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굵고 우렁찬 목소리로 “나는 이제 시댁에 다시는 안 간다! 이제 나는 자유다! 자유인이다!” 하고 외쳤죠. 그리고 “으하하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었어요.
저 멀리서 우리 남편은 “어휴!” 하면서 한숨을 쉬고 아이들은 낄낄거리더군요. 저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이 제 외침에 맞춰서 눈부시게 번개가 번쩍번쩍거렸고 제 말이 끝나자 우르르 꽝꽝하는 천둥은 ‘그래, 네 말이 맞아! 맞아!’ 하는 것 같았어요.
2019. 4. 11. 윤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