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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22. 2023

[소설] 나의 시댁 탈출기

수희 언니께 (두 번째 편지)

 제가 시부모님께 저를 존중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앞으로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발길을 끊은 것은 들어서 아실 줄 압니다. 어머니께서 친척분들을 만나실 때마다 그 애가 싸가지 없이 어른한테 그렇게 통보를 하더라고 화를 내실 때 너무 분한 마음에 항상 눈물을 보이신다는 말씀도 동서에게 전해 들었어요. 그때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제가 그만 좀 하라고 말리는 남편한테는 그 입 다물라고, 네가 제일 나쁜 놈이라고 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찬란한 태양이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신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으셔서 그 부분만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시는 법이 없으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남편은 시댁에 가지 않으려는 저를 이해하지 못해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저를 그곳에 다시 데려다 놓으려는 남편과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 같고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편과의 다툼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어느 날 식탁에 놓인 남편 핸드폰 카톡 메시지 미리보기 알림창에 “이제 그만 애써도 된다. 아들아, 내가 양보하마.”로 시작되는 어떤 메시지가 들어온 것을 무심코 보았어요. 그 뒤에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당분간 시댁의 압박은 덜해지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피와 살을 나눈 자식만을 걱정하시는 어머님의 애끓는 모정에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그래서 그 후에는 남편과 정호만 시댁에 가게 된 거예요.     


 언니께서 보내신 편지에서 시어머니께서 너희에게 얼마나 헌신하셨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문장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네, 맞아요. 언니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저희 시어머니는 정말 사랑이 넘치는 분이시죠. 어머니께는 아들만 둘이 있어서 늘 딸이 있었으면 했는데 제가 며느리로 들어와서 이제 딸이 생긴 거라고 정말 기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자랑 같지만 저에게 당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셨다니까요. 저는 시댁 식구의 일원이 돼서 행복했어요. 물론 언제나 기분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요.      


 어머니께서는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시고, 삼촌네와 우리 집까지 꼼꼼하게 챙기시느라 언제나 많이 힘드셨죠. 동서와 제가 결혼하지 벌써 10년도 넘었는데도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아들 가족들 생각만 하시면서, 최선을 다해서 언제나 헌신해 오셨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다 먹지 못할 양의 반찬도 해주셨고, (손이 얼마나 크신지 거의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는 게 안타깝죠.) 저희를 자주 시댁에 초대하셔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날도 많았어요. 참, 음식 준비는 거의 다 어머니께서 하셨어요. 저희가 요리를 하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들을 고생시키지 않으시려는 어머니의 배려가 있으신 거죠.     


  만삭이라 걸음이 불편해 보이는 동서의 안색이 시커메 마음이 무거웠던 날을 떠올려보면, 초대받기를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대식구의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심하게 짜증을 내셨어요. 체력이 좋지 않으신데 너무 많은 사람을 챙기시려다 보니 좀 신경질이 나셨던 것 같아요. 그럴 때 큰소리 낼 필요 있나요? 예의 바르게 어머니께 말씀드렸어요. ‘다른 가족들도 다 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그러시면 저는 정말 민망하고 속상해요.’라고 배운 사람답게 ‘나-전달법’을 사용해서 말씀드리면 한동안은 좀 덜 하시기도 했어요. 저는 시댁에서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을 견디면서 그냥 서 있다가, 혼내시면 혼나고 걸리적거리면 밀쳐지고 그냥 그런 일들을 담당했어요. 제가 해놓은 일에 대해서 한숨을 쉬시면서 “이걸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니?”라고 짜증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나 부엌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거칠고 높아지시는 목소리를 참아내는 것, 굳이 말하자면 모욕을 견디는 것? 감정노동이랄까요? 그런 것이 제가 시댁에 가서 주로 했던 일인 것 같네요.


                                                                                                            2019. 4.7. 윤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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