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 Oct 22. 2023

[소설] 나의 시댁 탈출기

수희 언니께 (세 번째 편지)

 그래도 저희 어머니께서는 매우 공정하신 분이세요. 며느리들을 아주 공평하게 대하세요. 명절에도 누가 늦게 오고 어쩌고 그런 것 없이 저희는 똑같이 시댁에 도착해요. 전도 꼭 같이 부치고, 설거지도 돌아가면서 한 번씩, 친정에 보내주시는 시간도 같고요. 가끔 명절에 동서랑 밤에 둘이 잘 때 어머니께서 저희를 얼마나 살뜰하게 보살펴 주시고 또 공평하게 대해주시는지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역시 “형님도 그러셨어요?”, “동서도 그랬어?”하면서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나고, 우리는 너무 웃어서 그 끝에 약간 눈물이 맺힌 채로 잠을 청하게 되는 거지요.     


 그때 친정언니한테 전화해서 우느라고 아직도 왼쪽 팔꿈치를 성치 못하고, 엄청나게 울어서 시력이 많이 나빠지긴 했지만 어머니께서 제 산후조리를 극진하게 해 주신 이야기도 빼놓으면 안 되겠죠. 아기를 낳으면 조리원에 가려고 저를 돌봐주시겠다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산후조리를 잘 몰라서 꼭 어머니께서 해주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또 어머니께서는 제 남편과 함께 정호를 사랑으로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어요. 아이가 실수로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면 어찌나 기뻐하셨던지 멀리서 지켜보는 저도 미소가 지어지곤 했지요. 아이와 제 사이를 심하게 질투하셔서, 정호를 완전히 우리 집에 데려온 뒤 저는 아이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심리 치료를 오래 받아야 했지만요.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보여주시는 지극한 헌신에 비하면 이런 것은 너무나 사소한 부작용이라는 거 압니다.      

  제 실수로 아이가 조금 다쳤던 날, ‘누가 우리 손자를 이렇게 했느냐’고 온 집 안이 떠나가라 호통을 치시면서, 무안해서 한옆에 서 있는 제게 오셔서는 “울지 마라. 할미가 너희 엄마 혼내줄게.”라고 하시면서 정호가 보고 있는데 “때찌때찌!”하시며 제 허벅다리를 내려치셨던 그날, 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어요. 모욕감 때문에 방으로 들어와 엉엉 울고 있는 저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에게 그때 어머니께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세게 때리지는 않았는데…….”라는 말씀만 반복하셨던 기억이 나요. 어른 보는데 아이 예뻐하는 거 아니라고, 너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정호를 맡기고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는, 뭐 그런 말씀들을 하셔서 가끔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이런 것도 큰 문제는 아니지요.     


 결혼 초에 저를 부르셔서는 이런 걱정을 해주신 적도 있어요.

“네가 이제 결혼을 해서 남편이 너의 남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걔는 그 이전에 엄마랑 3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온 내 아들이야. 내 애인이고 딸인 그런 관계야. 그러니 그렇게 금방 네 남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니거든. 걔는 옛날부터 엄마 생각을 끔찍하게 했다니까.”  

10년 남짓한 결혼 생활 동안 어머니께서는 그 말씀이 틀리지 않으셨음을 몸소 보여주셨어요. 제 남편도 늘 다정하고 듬직한 아들인 거는 이미 아실 테고요.  


                                                                                                          2019. 4.9. 윤정 올림        

이전 02화 [소설] 나의 시댁 탈출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