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도,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산다.

by 별빛간호사

수용

말기암 환자분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결국 사람은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병원은
죽음을 피하는 곳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곳이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죽음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환자분들도 있었다.

준비된 사람은
대체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속도

젊은 환자들보다
노인 환자분들이
죽음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의 질병을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얼마나 남았을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요즘 꿈에 아버지가 자꾸 나오신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생각도 담담하게 꺼내놓았다.

반면
젊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가족과 의료진 외에는
접촉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 있으려 했고,
자신의 상황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삶의결과 비례했다.



유머

호스피스 병동에는
웃음과 눈물이
자주 함께 머문다.

불과 물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감정들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유머다.

“문제를 너무 문제로 보지 말자.”

한 말기암 환자분이
내게 생전에 해주신 말이다.

그분은
농담을 참 좋아하셨다.

드셔야 할 약이 많아
약을 가져다드리면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밥 안 먹어도 배부르네.”

내가 장난으로
“그럼 다시 가져갈까요?” 하고 물으면,

“가지고 가면 사람 성의가 있지~
우리 간호사쌤
두 번 일하게 하면 안 되지~
거기 둬~”

능청스럽게 웃으셨다.

그분의 유머 덕분에
그 병실은 늘 밝았다.

환자도, 보호자도 잠시나마 통증을 잊고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켜보며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겪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겪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pexels-timothy-huliselan-205951426-12081338.jpg “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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