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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입사일이 곧 퇴사일이 될지도...

by 아크하드

점심식사 후 다들 잠깐의 휴식 시간을 취할 동안

경리부의 특권(?)을 좀 남용해서 재직자 현황철부터 훑어봤다.

캣맘 여직원 분은 정말 20대가 맞았고

120kg 여직원 분은 애연가인건 알았는데 신용불량자일 줄이야~~

급여대장에 첨부된 서류마다 가불계약서가 나오는데 사유는 '생활비 부족'

(결혼도 안 하셔서 먹일 군식구도 없을 텐데 왜 매달 생활비가 부족한 건지)

저 언니도

(언니가 아닌데 자꾸 언니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참으로 힘든 삶을 사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드디어 뵙고 싶었던 차장님이 오셨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밀린 일이 많으신지

컴퓨터에 코를 박고 바로 본인 업무를 시작하시는 차장님.

경리부는 다시 독서실 분위기로 돌입하고

영업부는 빗발치는 콜과 보이쉬 이사님의 채찍질로

또 다시 전쟁터 분위기로 변해갔다.


오후 3시경 차장님의 부름.

"**씨 잠깐 오세요!!"

"네!!"

호기롭게 펜과 노트를 챙겨서 업무를 배우기 위해 차장님 옆 자리로 착석!!

모니터 두 개도 눈이 돌아갈 것 같은데

회계프로그램 포함 3개의 프로그램을 모니터에 기본으로 활성화시킨 후

신의 경지와 가까운 빠른 일처리를 보여주시는데

2개의 모니터 화면을 종횡무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무슨 말인지 알겠죠?"

하고 자리로 돌아가라는 차장님.

결국 꼬부랑 글씨 몇 줄만 적힌 내 노트를 보며 복습을 해보자 하는데

처음 보는 프로그램인데 내가 기능키를 알리가 없고

오전에 인수인계파일을 한 줄도 독해하지 못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업무 자체가 하드코어였다는 것을~~


퇴근시간이 다 돼 갈 때쯤 차장님의 2차 부름.

선임이 공석으로 있는 동안 회사 앞으로 온 우편물을 처리하라고

한 뭉치를 주시는데 그중 모르는 차량번호 과태료가 나와서 차장님께 여쭤 봤다.

"그 차는 임원 차예요. 그러니깐 과태료를 날짜에 맞춰 내시면 되고~~"

"어느 임원 분이요? 사장님이요? 이사님이요? "

"두 분 거죠. 뭐~~. 두 분이 부부인데 몰랐어요?"

"헉!!!"

(진심 몰랐어요!! 보이쉬와 트레이너가 부부인 줄~~~ 그 둘의 조합이 선뜻 납득이 가야죠. ㅠㅠ)


점심시간에 신나서 떠들었던 보이쉬 이사님과의 대화를 곱씹어봤다.

이사님의 외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인데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공부는 안 하고 하루 종일 에너지 발산하는데 걱정이다란 말에

평소 학부모 엄마들과 하하 호호 떠들어 댔던 잡담 습관이 있었던 난

"맞아요!! 초등학교 들어가면 얘가 공부로 갈 아이인지 싹이 보이더라고요"

이 회사의 안주인인 줄도 모르고

사장님의 하나뿐인 귀한 왕세자 싹을 논하다니....ㅠㅠ

12년만에 전업주부를 탈출해서 어렵사리 잡은 첫 직장,

이러다 입사일이 퇴사일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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