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가 12년 만에 출근한 지 3일이 지났고 첫 주말이 왔다.
평일엔 그렇게 일찍 일어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안 일어나던 아이들이
주말엔 왜 7시에 알아서들 일어나는지~~
거실에서 아이들의 시끌시끌한 알람소리가 들린다.
얼른 일어나 아침을 차려 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회사 생활로 얻은 게 있다면 자동적으로 불면증이 치료됐다는 점!!
(실제로 푸파파가 회사에 잘린 후 쭈마마에게 불면증이 생겼다.)
지난달 건강검진받을 때 전문의에게
"수면제 처방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문의에게 문의할 정도였는데
전업주부에서 워킹맘으로 바뀐 지 3일 만에 불면증이 싹 사라졌다.
첫째 날은 회사 직원의 범상치 않음을 가족들과 저녁식사시간에 쉴 새 없이 웃고 떠들고 하더니
둘째 날부터는 말이 급격히 없어졌다.
삼일째 되는 날부터는 현타가 오기 시작하는 게
3일 내내 점심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종일 일만 하다 와서 진 빠진 채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핸드폰 보다가 3분 만에 잠에 로그인!
12년의 공백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여파가 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무실에 복귀하니 모니터가 두 개씩인 그것도 적응이 안 되는데
바뀐 프로그램 3개를 익혀야 하고
사무실 전화 1개, 업무폰 전화 1개 번갈아 대며 울어대고
'카카오톡 사무실 단체 채팅 방에 차장님의 지시사항
PC에 깔린 채팅 플러스에서는 하청 직원 문의사항
회사 메일에는 처리해야 할 거래처 협의사항이 10건씩 넘게 올라오는데
이건 멀티를 넘어서 한번에 네다섯 가지 일을 하려니 정신머리가 나갈 수밖에...
문제는 다들 본인 과업무량을 소화해 내느라 바빠서 물어볼 사람도 없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대화도 없이 업무만 하는지
정말 재미라곤 1도 찾아볼 수없고
직원들 중 평범한 이 1명도 없고
여기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저울질 때문에 주말 내내 머리가 아팠다.
안 되겠다.
결정장애인 나에게 항상 명확한 해답을 주는 작은언니에게 바로 S.O.S.
오전 10시쯤 전화를 했더니
자다 일어난 목소리
"언니, 아직도 자?"
"응 이제 일어나야지~"
나처럼 10년 넘게 전업 주부로 있다가
40대에 직장을 구해 벌써 6년째 다니고 있는 작은언니는
아이들 케어에 살림에 회사 일에 주말 되면 넉다운이 돼서 주말엔 12시까지 잔다고 한다.
역시 범접할 수 없는 작은언니 아우라와 생활력!!
언니에게 취업한 지 3일째 됐다고 커밍아웃을 하고 내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일전에 취업 의사를 밝혔을 땐 둘째가 아직 어리니
초등학교 들어가고 취업시장에 뛰어들라고 할 땐 언제고
막상 취업이 됐다고 하니 취업 어떻게 됐대.
오오.. 잘했어. 이제 회사에 뼈를 묻으라는 언니ㅠㅠ
"막내야 너도 이제 40대 중반인데 한 살 한 살 더 먹으면 받아 줄 회사가 없어
언니도 여기 그만두게 되면 식당에서 일해야 할 나이야~"
너무 일만 하고 바쁘고 직원들도 이상하다 하니
본인도 일이 엄청 많아서 아직까지도 상사에게 혼나고 있고 야근도 가끔 한다며
1. 경영진이 이상하거나 의도적으로 나쁘지 않고
2. 월급이 안 밀리고
3. 사무직이면
무조건 다니라는 작은언니!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게 돼있다며
선임은 없지만 사수도 있고 거기다 회사가 걸어서 15분이라니 무조건 다니란다.
"간 지 며칠 됐다 했지?"
"3일!!"
"푸하하하하하!! 가장 힘들 때지~~ 하지만 무조건 버텨!!
너 지금 힘든 게 나아~~ 나중에 애들이 학원 보내 달라고 하는데 돈 없어서 못 보내는 마음이 더 힘들어!!
언니 월급 애들 학원비로 다 나가잖아~"
그렇게 통화하면서 새삼 작은 언니가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고 엄마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이 나이에 사무직으로 재취업 성공이라니 거기다 걸어서 15분 직장이라니~~
다시 이런 기회는 안 올지도 몰라!
이 회사에 뼈를 묻자!!
하지만 큰 마음 먹은 나를 또 뒤흔드는 사건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