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단지 내에 야시장이 열렸다.
저녁이 되자 하나 둘 가족 단위로 몰려와
아는 얼굴 만나 반가워 인사하는데
애 둘에 엄마 혼자 온 집은 극히 드문 듯했다.
그 와중에
우리 첫째 망아지 어찌나 대단하신지~~
야시장 입성하자마자
바이킹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시작!!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차하는데
바이킹 대기줄에 학교 친구가
서 있는 걸 보고 또 태워달란다.
1회에 5천 원이나 해. 그리고 방금 탔잖아!
라고 안된다 했더니
아까 그건 혼자 탄 거고
친구랑 같이 타는 거는 다르단다. ㅠㅠ
첫째는 또 태워달라!
둘째는 다른 곳 가고 싶다!!
양쪽에서 조르니 혼이 나갈 듯하여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재승차 탑승권과
친구들이랑 더 어울려 놀고 싶다고
만원을 타가신 첫째는
엄마랑 둘째를 버리고 유유히 떠났다.
그제야 붕어잡기체험을 하고 싶다고
입 속에서 웅얼거리기만 하는
순둥이 둘째가 보였다.
마침 아는 어린이집 엄마를 만나
같은 어린이집 친구랑 시켜주었다.
(그 엄마도 아빠랑 같이 옴 ㅠㅠ)
그토록 원해서 신나게 체험할 줄 알았는데
붕어가 너무 빠르다고
두세 번 헛발질 체험 후 바로 채를 던지듯
나에게 건네주는 둘째.
(이럼 왜 시켜달라고 나를 그리 아련하게 바라본 거임?)
생후 40년 산 자연산 엄마가
4일도 안된 인공산 붕어새끼 잡기에
흥미가 있을 리가 없지~
'나도 하기 싫은데 오천 원 버렸네'
고민하고 있을 때
눈앞에 지나가는 첫째 망나니
첫째야!! 이거 둘째 안 한대. 네가 해!!
채를 토스받은 첫째는 어장을 스무 바퀴를 돌면서
그리 안 잡히던 날쌘 붕어를 퍼담을 정도로 낚아채심
제발~~ 설치다 물에 빠지지만 말아라.
대어를 잡는듯한 소란스러운 제스처에
나에게 말로만 들었지 실물은 처음 본 어린이집동기 엄마가
아! 얘가 첫째군요. 와~~
왜 평소 내가 망아지라고 했는지
뒤에 감탄사로 말을 아끼는 지인
ㅋㅋㅋㅋㅋㅋㅋ
이제 그만 잡아라.
붕어 씨를 다 말려야 끝나겠니?
엄마의 채근에
환공포증 있는 내게
주황색붕어새끼 수십 마리가
바글바글한 바가지를 안기고
쿨하게 떠나신 첫째 망아지.
그 뒤로도 첫째 망아지와
뒷골이 서늘해지는
재회는 계속 됐으니
친구들이랑 야시장 체험 중 돈 떨어지면
귀신같이 엄마를 찾아내어
' 얼마 달라, 뭐 해 달라 '
이건 일진을 복도에서 하루 열두 번은
마주치는 것 같은 공포감.
결국 놀이기구에 회오리 감자에
기타 등등....
이만 원 넘게 엄마 삥 뜯으심.
아~ 이만 원 넘는 돈이면
야시장의 꽃!
야장에서 막걸리랑 파전을 먹을 수가 있을 텐데
자꾸만 삼삼오오 와글와글
가족단위로 앉아있는 야장으로 눈이 갔다.
다들 살기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나만 출근하면 퇴근시간이 함흥차사인
한국사람과 결혼하고
다들 완벽한 워라밸을 갖춘 외국계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결혼한 것 같은
이 괴리감은 뭔지
얼른 신랑이 퇴근해서 네 가족 같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처량한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그날 결국 10시에 귀가하신 신랑은
야시장 아직 안 끝났냐고 전화 와서는
종료시간 1시간 남는 동안 혼자 둘러보겠단다.
애 둘은 이미 재웠지 그러라고 했더니
삼십 분 후 검은 봉지를 들고 귀가하신 서방님.
한 마리에 9000원인데 마감 때라
두 마리에 15,000원에
통닭을 싸게 샀다고 신나신 서방님.
(저녁도 먹고 오셨다면서요?)
우리 애들은 이미 자고 있고
나도 이빨 닦고 있던 중이라
많다고 같이 먹자는 서방님 청을 뒤로하고
다둥이 동행 야시장 나들이에
만성 피로, 만사 귀찮음이 도진
나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술상에 남은
뼈만 앙상해진 두 마리의 닭 잔해들과 맥주캔들
(두 마리를 다 드신 거 실화? 많다면서요?)
어지르기만 하고 치우진 않고
이미 출근하신 신랑님
나의 잔소리는 이리도 허망하게
대나무 숲에 묻히는구나~~~
신랑은 정말이지~
우리 집에 딸이 태어난 걸
고맙게 여겨야 할 듯하다.
체력 좋은 아들은
아빠가 몸으로 놀아줘야 한다던데
딸 둘 덕분에 주말에도
낮잠 타임이 가능하니 말이다.
네가 달라지기보다
내가 도를 닦는 게 빠르겠지!!
고맙습니다.
머리도 안 깎고 이렇게 큰 원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