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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Aug 08. 2024

부고장을 받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년 푸파파의 돈사고로 시원하게 신카 긁고 딸내미와 갔다 온 여행.

(돈사고의 연유는 아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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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엄포를 놓았었다.

 자기도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깐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여행 눈치 안 보고 갔다 오겠다


올해의 타깃은 엔저현상 뿜뿜인 일본이었다.


푸파파도 본인이 저질러 놓은 일도 있고

각서도 있으니 아무 말 못 함.

(사죄의 뜻인지 최저가 비행기 일정을 조회해서 내게 보여주기까지.)

그렇게 하루하루 딸과의 일본여행 계획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둘째 강아지와 같은 어린이집 친구 엄마 S의 전화,

(어린이집에서 우리 둘째와 S 그리고 H는 삼총사이다.

 덕분에 같은 동네라 엄마끼리도 왕래하고 친하다.)


언니~~ 주말인데 어디세요?

응!! 지금 시댁에 왔지.
근데 무슨 일 있어?

언니 어떻게 해요. H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왜? 무슨 일인데 너 목소리가 울먹거려~~

H아빠가 어제 새벽녘에 교통사고가 났대요.

그런데 세상을 떠났다고 지금 부고장이 왔어요.


"뭐?"

평소 고강도 일을 하고 계셨던 H아빠.

그날도 새벽녘에 귀가 중이었는데 졸음운전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차가 전복돼서 구급차가 오기 전에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어제 새벽녘에 교통사고가 났대요'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는

다치셨나보다 라고만 생각했고 병문안을 가야 하나

짧은 찰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병원이 아니라 장례식장을 찾아가야 한다니......

귀로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다음 날 일요일, 푸파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차마 둘째에게 친구 아빠의 부고를 말해줄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에 다녀왔고 거기서 울면서 다른 방문객을 맞이하는 H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장례식 식당에 한편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어!! J 엄마다. S 엄마도 오셨네


여기가 어디인지

무슨 까닭인지 분위기를 감지 못하고 여다섯 살 아이처럼

해맑게 친구 엄마들을 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데

거기서 엄마들의 눈물샘이 터졌다.


이 생때같은 이쁜 아들을 두고 발길이 떨어졌을까 싶어서 말이다.

누구보다 아들 바보였던 H아빠.

만난 적은 없었지만 장례식장에 걸린 사진을 보는데

정말 얼굴에서 선함이 그냥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고인들 중에서도 가장 젊었던 H아빠.


신혼 때인 7년 전부터 회사인 수원까지 왕복 4시간 운전을 했던 H아빠.

말만 들어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토요일, 일요일도 가끔 회사의 부름을 받고

쉬는 날 없이 그렇게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았던 H아빠.

(푸파파보다 일의 강도와 시간이 높은 지인은 처음 봤다)

그리고 본인에게는 돈 쓰는 건 아까워하면서도

가족들에게는 모든 걸 사주고 내주었던 아들바보 H아빠의 삶에 H엄마도 울고 나도 울고.




우울은 전염이 되는 건가 내 마음이 한동안 그랬다.

며칠이 지났다. 장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부랴부랴 친정 본가로 간 H 모자.

그런데 우울은 전염이 되는 건가 보다 마음이 한동안 그랬다.

어린이집 하원 후 같은 시간대 같은 태권도장을 다녀서

H엄마랑 매일같이 태권도장 하원을 기다리면서

같이 소소한 일상을 나눴었는데

그날 이후로 나 혼자 태권도장에서 둘째 하원을 기다리면서

H와 H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이제는 고인이 된 H아빠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한동안 나는 우울에 휩싸여 수시로 멍해져

한 번은 둘째 태권도 끝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내가 가스레인지 껐나 안 껐나 생각이 안 나

부랴부랴 둘째 손을 끌고 집으로 급히 귀가한 적도 있다.

그렇게 멍하니 넋 놓고 살았던 것 같다.


나의 이런 우울감과 사연을 나의 지인이랑 친언니에게 말하니

H엄마를 모르는 제 3자마저 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와 아이아빠가 있는 엄마들은 모두 남의 일 같지 않고

얘기만 들어도 그 슬픔의 깊이를 느끼게 되나 보다.

 

하지만 그 슬픔의 깊이가 아무리 깊다한들

당사장의 감정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H엄마가 장례식 끝나고

친정으로 가기 전에 나에게 보낸 카톡.



H아빠 가방을 정리하는데 정육점 쿠폰이 엄청 많이 나왔어요.

쿠폰을 보는데 눈물이 쏟아졌어요. 매일 우리가 고기 사러 가는 집인데 그 집은 고기사면 쿠폰을 주거든요.

제가 매번 피곤한 사람한테 퇴근길이던 주말이던 고기 좀 사 오라고 하면 힘들단 소리 한번 안 하고 다 사다 줬었는데 내가 힘들고 피곤한 사람을 더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었어요. 편안하게 쉬게 해주지 못했어요.

진작 제가 좀 쉬게 해 줬더라면 나만 자꾸 힘들다고 하지 말고 H아빠 가여워 죽겠어요.

어제 H아빠 추모공원에 시부모님이랑 같이 갔다 왔는데 H가 자기는 가기 싫대요.

왜 가기 싫으냐고 물어보니 아빠가 인사도 안 하고 하늘나라 갔다고 아빠가 이제 옆에 있어줄 수 없다는 거 아는 것 같아요. 아빠를 다시 살릴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도 문을 열고 집에 올 것만 같아요.

옆에 있을 때 잘해줄걸. 언니도 형부에게 잘해주세요.


그 카톡을 받고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과

신랑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가족의 가장에 두 딸의 아빠인데

있을 때 잘해주고 평소 마음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푸파파가 나를 재촉했다.


여보!! 저번에 말한 최저가 비행기표
오늘이나 내일까지 예약해야 돼.
빨리 예약해봐.

한 달 있다가 자기 여름휴가 때 같이 가자!!


그땐 성수기라 비쌀 텐데~
그리고 내 여름휴가 날짜는 항상 미정이라
나 빼고 가기로 한 거잖아.

휴가날짜 미리 한번 받아봐.
안되면 토일 껴서 하루만 어떻게 회사에다가 잘 얘기해서
월차를 받아봐.
일본 가까우니깐 2박 3일 우리 가족 다 같이 가자.

진짜? 나도 같이 가는 거야?
나도 일본 한 번도 안 가봐서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찐으로 웃음 짓는 푸파파.

그도 그럴 것이 돈사고 이후에도 우리 부부의 냉기는 남아있어서

나의 눈치를 한참 보던 중이었다.


그리고 입사한 지 처음으로 3주 전에 여름휴가를 받아온 푸파파.

(항상 정확한 휴가날짜를 며칠 전에 정해준 회사)

안되면 비싸더라도 토,일 껴서 2박 3일로 가려고 했던 일본 여행이

6월 말 평일로 편하게 4박 5일 자유여행일정으로 업데이트 됐다.


하지만 큰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다음 편에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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